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터 키드니 May 15. 2022

삼 형제의 인계장

갑자기 시작된 간병이었다. 여든 살 아버님을 일흔네 살의 부인이 간병하게 되었다. 노인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74세의 어머니는 노인이 맞다. 젊은 사람도 힘든데, 노인이 누군가를 간병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게다가 어머니는 시기를 놓쳐 코로나 예방 접종도 하지 못했고, 여러 질병으로 먹어야 하는 약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버님을 간병하는 어머니의 안녕도 장담하기 힘들었다.


간병인을 써야 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지만, 남을 믿지 못하는 식구들에게 그 관문을 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때 남편의 추진력으로 간병인을 구했던 적이 있다. 믿었던 간병인은 하루 종일 패드 한 번을 갈아주지 않은 것으로 두 번은 어림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섬망이 온 아버님에게 익숙한 사람의 간호가 요구되었으므로 가족 간병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되었다. 일주일중 단 며칠만이라도 어머님을 간병에서 제외시켜야 했다. 


“ 이번 주 주말. 당신이 병원에 들어가는 게 어때? ”


일주일에 6일 일하는 남편에게 주말 간병을 권했다. 막막함과 부담스러움이 느껴졌다. 그의 목소리엔 이유가 있었다. 쓰러진 후 처음 마주하는 아버지였다. 그는 아버지 상태가 궁금하면서도 두려웠을 것이다. 두 손으로 번쩍 들 수 있는 딸의 기저귀는 수없이 교체해봤어도 아버지의 것은 좀처럼 상상하기 힘들었을 터였다.


남편은 살면서 아버지 말씀을 한 번도 거부해본 적 없다고 했다. 콧줄과 주사 라인을 자꾸 뽑는 바람에 손목을 결박해 놓은 아버지 손목. 아버지가 결박을 풀어달라고 말하면 자신이 아버지 말을 거역할 수 있을까. 못하는 것을 돕는 것뿐 아니라, 하려는 것을 저지해야 하는 것도 간병이다. 하지만 효자 아들에게 그것은 너무 가혹한 일인 것이다. 무엇보다 평소 자식들에게 약한 모습 보이기를 극도로 꺼려했던 아버님이기에, 그 모습을 자신이 보는 것만으로도 죄송스러워했다.


그럼에도 남편은 용기를 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위해서.


아버지를 마주할 날을 앞두고 남편은 분주해 보였다. 병원 입실 이틀 전엔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코로나 시대에 병원 간병을 위해서는 입실 전 72시간 이내 코로나 검사 결과가 필요하다.


틈틈이 간병 간호 가이드를 읽고, 동영상으로 휠체어 옮기는 법을 찾았다. 콧줄로 식사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를 검색했다. 동시에 한숨을 푹푹 쉬어댔다. 나는 조용히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응원했다.


토요일 오후. 병원 입실을 앞두고 있는 남편의 얼굴은 수심이 그득한 표정이었다. 그가 좋아할 만한 것으로 밥을 차렸다. 입맛이 없다며 손사래를 치던 남편은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역시 그의 식욕은 좀처럼 사라지기 힘든 것이다.


어머니와 바통 터치를 한 지 3시간이 지나서 남편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힘들지?]

[기저귀 교체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군. 어머니 힘으로는 절대 못하실 일이네.]


그날 밤 남편은 두 시간 정도 잠을 잤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의 짜증을 이해하게 되었다. 주말 첫 간병을 마친 남편은 몸은 피곤해 보였지만, 마음은 편해 보였다. 아버지를 직접 뵙고 나니,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이다. 


남편의 간병을 필두로 주말마다 형제의 간병이 시작되었다. 다음 주말 간병은 작은 아주버님이 차례가 되었다. 작은 아주버님은 간병 전날 한숨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아마도 남편이 느꼈을 모든 것들을 겪었을 것이다.


그다음 차례는 미국에서 귀국한 큰 아주버님이 되었다. 코로나 시대에 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그 누구도 만날 수 없다. 간병인만 예외였다. 태평양 건너온 큰 아주버님이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병원 입실 간병이 유일했다.


수년 만에 만난 삼 형제는 제대로 회포를 풀지도 못한 채 아버지를 인수인계하기 시작했다.


· 인계 대상 : 아버지

· 인계자 : 둘째 아들, 막내아들

· 인수자 : 첫째 아들


개성이 뚜렷한 삼 형제의 아버지를 인계하는 방식은 제각각이었다.


· 둘째 아들 (작은 아주버님)

꼼꼼한 성격의 아주버님은 모든 상황을 글로 남겼다.

1. 환자복과 시트는 침대 옆 사물함에 있음. 사이즈는 110. 필요시 교체

2. 유럽 시간에 맞춰 생활하시는 중. 낮엔 주무시고, 밤에는 깨어 있으심

3. 침대 옆 리모컨 조절하여 식사 시 상체를 세울 것.

코어에 힘이 없으니 자꾸 아래로 치우치는데 환자복 상의나 바지 허리춤을 붙잡고 상방으로 올릴 것.

4. 아버지가 콧줄을 빼려고 하니, 절대로 손이 콧줄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감시.

5. 약은 물에 충분히 녹여서 콧줄로 주입.

6. 주무시기 전에 소독약으로 입안 가글.


· 막내아들 (남편)

큰 아주버님이 귀국한 첫날이었다. 모두가 지켜보는데 갑자기 남편이 소파에 드러누웠다. 본인 엉덩이를 치켜들고 스스로 기저귀 패드를 깔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아니 저 양반. 설마. 뭐 하는 중이지?'


" 이렇게 아버지를 반쯤 옆으로 뉘어서 이 패드를 아래로 깔면 돼. 힘은 전혀 못 쓰시니까. 몸을 난간에 살짝 기대고. 처음에 침대를 높이고 시작해. 안 그럼 허리 나가."


남편은 직접 몸으로 시연하는 걸로 인계 중이었다. 말로 때우는 걸 좋아하는 남편 다운 인계 방식이다.


동생들의 각양각색 인계를 받으면서도 큰 아주버님의 어두운 표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근심, 걱정, 두려움. 며칠 전 남편이 그리고 다녔던 얼굴이었고, 작은 아주버님의 표정이었다. 똑같은 표정을 지었던 동생들이 이젠 형을 위로한다.


"형. 병원에 들어가면, 괜찮아. 아버지가 반가워하실 거야. 미국서 큰 형이 왔으니 말이야. 보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질거야."



이전 13화 아버님의 새로운 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