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사장에서 놀다가 어느덧 물이 차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때가 되어 물이 찬 것이지만, 발목이 젖었을 때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환자가 되는 건 이와 같은 일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물이 찼던 것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환자가 된다.
바다에 거센 파도가 들이치는 것이 흔한 일이듯, 환자에게 격랑은 자주 찾아온다.
폐암 환자였던 아버님이 하루아침에 뇌졸중 환자가 되어 버렸다. 5일. 평범한 이들에겐 보통의 일주일이었겠지만, 우리에겐 짧고도 긴 시간이었다. 아버님에게는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그 변화는 시나브로였지만, 아버님이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올라왔을 때에서 야 알게 되었으므로 가족에겐 별안간 발생한 일이 되었다.
눈에 띄는 가장 큰 변화는 콧줄이었다. 한껏 늘어난 약을 복용해야 했으나 자꾸만 사레에 들렸다. 약뿐만이 아니라 음식의 섭취도 힘들어졌다. 콧줄은 아버님에게 영양 공급과 약을 복용하기 위한 줄이었다. 잡채를 좋아하던 아버님이 더 이상 잡채를 드시지 못하게 되었다.
어머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중환자실에 입실 직전까지만 해도 어머니에게 함께 들어가자고 했던 아버님이었지만, 이제는 옆에 있는 그녀가 아내인지 말하지 못했다.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일어서기는커녕 그 어떤 의지도 보이지 않는 다리로 인해 아버님은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는 침대가 아버님의 주 생활 무대가 될 것이다.
최우선이었던 항암 치료는 뒤로 물러나고, 뇌졸중에 대한 치료와 재활이 우선이 되었다.
아버님의 모습을 직접 확인한 어머니는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짧은 시간에 일어난 큰 변화였다. 무엇하나 이해되지 않았으며,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에게는 다양한 일들이 펼쳐질 것이므로, 모든 것은 그때그때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갑자기 일어난 일이 된다. 당장에 침상 생활이 주가 된 환자를 돌보는 이 일을 시작해야 했다.
모든 시작은 서투르기 마련이지만, 새로운 세계는 신참 보호자를 배려하지 않는다. 그곳은 어머니를 제외한 모두- 의료진 전부와 옆 자리의 환자, 간병인에게 일상인 환경이었다. 심지어 아버님조차 완벽하게 환자가 되어버린 병실의 세계에서 어머니에게 고독과 절망감이 찾아왔다. 콧줄로 어떻게 식사를 줘야 하는지, 패드 교환을 어떻게 하는지. 아버님의 간병을 도맡게 된 어머니는 모든 것이 미숙하고 막막했다. 능숙하지 않은 자신을 탓하는 이에게 서운하여 눈물을 훔쳤고, 반대로 친절하고 자상하게 알려주는 이에게는 고마운 마음이 들어 또 다른 의미의 눈물이 맺혔다.
고독감은 이길 수 있을 것이지만, 틈틈이 지금 상태에서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절망감이 찾아왔다. 여전히 오락가락한 아버님의 새로운 세계가 문제였다.
" 본인 이름 말해보세요."
회진 시간 주치의가 물었다. 큰 아들이 어디에 살고 있냐는 물음에 미국이라고 했고, 자신의 집이 어디냐는 질문에는 오송이라고 정확하게 대답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아버님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실망과 절망. 그 어디쯤에서 서성였을 것이다. 마스크에 가려진 어머니의 표정을 읽은 주치의는 새로운 질문을 해보았다. 그는 어머니를 가리키며,
"그럼, 여기 옆에 있는 분, 이분 누구세요?라고 물었다.
"예쁜 사람"
좁은 병실 전체에 웃음이 일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나는 나도 모르게 코 끝이 찡해졌다. 아버님이 예쁜 어머님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절망을 헤매던 가족에게는 희망이었다.
아버님의 새로운 세계에서도 어머니는 변함없이 예쁜 사람이었다. 새로운 세계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족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