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만약에 좀 더 일찍 발견되었더라면!"
뇌졸중이었다. MRI 결과 여러 군데 혈전이 관찰되었다. 이해되지 못했던 행동들이 이해되고 있었다. 소변보기 힘들어하는 것, 이따금씩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 지남력 장애, 거동하기 어려운 것, 말을 정확하게 하지 못하는 것,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감각이상, 전신 무력감, 아버님이 했던 행동들. 모두 의미가 있는 것들이었다.
중환자실로의 입실을 앞두고 간호사는 몇 가지 물품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 기저귀, 슬리퍼, 평상시 복용하던 약들이었다. 집에 있는 물품을 챙기면서 어머니는 서랍 속에 쓰다 만 손톱 무좀약을 챙겨 오라는 지시도 잊지 않았다. 어머니는 늘 아버지의 손톱에 무좀 칼라 바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방금 진단받은 뇌졸중에 비해 손톱 무좀이란 얼마나 하찮은 질병인가. 이 중한 상황에 어머니의 마음이 손톱에까지 닿을 수 있다니, 남들이 봤을 때 의미 없어 보이는 것에도 마음이 쓰이는 건 그가 환자의 가족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환자실엔 밤과 보호자가 없다. 아버님은 24시간 불빛이 환한 그곳에서 의료진에 의해 관찰될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는 환자 면회가 금지되어 중환자실 앞의 대기조차 의미가 없었다. 모든 건 중환자실에서 견딜 아버님과 의료진의 몫이 되었다. 남은 보호자들이 할 수 있는 건 걱정과 염려뿐이다. 본격적으로 모든 환자 및 보호자들이 한다는 '만약에'가 시작되었다.
MRI 결과가 나왔을 무렵부터 신경과 의사는 집요하게 물었다. 증상의 시작이 대체 언제부터였냐고. 골든아워 (환자의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사고 발생 후 수술과 같은 치료가 이루어져야 하는 최소한의 시간)를 계산하기 위함일 것이다.
"글쎄, 언제부터였을까요?"
5일 전부터 기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소변이 잘 안 나온 건 나흘 전부터 였고, 잘 걷지 못한 건 하루 전부터였다. 최근 아버님 곁에 있던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중엔 명색이 내과 의사인 나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정확한 시점을 짚어내지 못했다. 그것은 시나브로 진행된 일이었다. 서로가 아버님의 이상 소견을 빨리 알아차리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었다.
어머님은 아버님과 24시간 붙어 다니던 사람이었다. 매일 아버님의 얼굴을 다듬어 매끈하게 보이게 했다. 되돌려 생각해 보자면, 닷새 전부터 아버님의 얼굴이 비뚤어 보였다고 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던 어머니만 느낀 비툴림이었다.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쓰러진 뒤 코 뼈가 부러진 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흘 전부터 아버님 곁에는 남편이 늘 동행했다. 이틀 전에는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증상으로 열 시간 넘도록 응급실에 함께 있기도 했다. 지루한 기다림 속에 꾸벅 졸면서도, 이상 신호를 미리 의심해 내지 못했음을 속상해했다. 뒤늦게야 그때 아버님의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었던 생각해 냈다.
의사인 나는 누구보다 빨리 알아챘어야 했다. 말로만 듣고는 아버님의 상태를 짐작할 수 없다며, 직접 눈으로 봐야 한다고 했던 나였다. 하지만 직접 보고도 뇌졸중이라고는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응급실에서의 결과를 바탕으로 요로 감염과 기저 질환으로 인한 기력 없음으로만 여겼다.
나는 환자들이 만약에는 질문이 시작되면, 한숨부터 나왔다. 의미 없는 대화가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만약(萬若) 이었다.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때 만약에' 란 가정으로 시간을 되돌리길 바란다. 만약에란 환자가 된 사람에 대한 연민이오. 지금보다 좀 더 나은 결과를 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 자책이다. '만약에'는 환자를 먼 미래로 데려가기도 한다. 만약에 새로운 치료가 개발된다면. 라며 은근한 희망을 기대한다. 환자는 만 번 중에 한 번이라는 희박한 확률에 기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환자들 주변에는 늘 '만약에'가 따라다닌다. 환자를 이리 저리. 과거에서 미래로. 그것은 현재를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