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그 안에서 찾은 나의 건강 이야기
"뭐 먹지, 먹을 게 없네."
지난 주말이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먹을 것이라고는 양파, 버섯, 당근, 애호박 등 자투리 채소들 뿐이었다. 마침 동네 마트도 문을 닫는 날이었다. 내 말을 듣던 남편은 이때다 싶었는지 배달 음식을 시켜 먹자고 한다.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길었던 하루 끝에, 도마와 칼을 꺼내는 일은 귀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이미 점심도 외식을 하고 온 터였다.
"아니, 오늘 저녁은 냉장고 털어서 채소 비빔밥 먹자."
나도 참 많이 변했다. 예전 같았으면 귀찮다는 이유로 주저 없이 배달 음식을 시켰을 거다.
나는 의사지만 내 건강은 뒤전이 었다. 17년 전, 의사가 되자마자 동시에 궤양성 대장염을 진단받았다. 하지만 의사로만 살았던 10년 동안 나는 나를 방치했다. 무리해서 일했고, 처방한 약은 제때 챙겨 먹지 않았다. 끼니는 늘 대충이었다. 먹고사는데 바빠서 잘 먹는 방법을 몰랐다. 주치의 선생님으로부터 '이제 더 이상 쓸 약이 없다'는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제야 내가 환자임을 자각했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건강은 잃어본 사람만이 소중함을 아는 법이다. 내가 환자들에게 약을 처방하는 것처럼, 그때부터 나는 내 삶에도 건강한 습관을 처방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하루 한 끼 집밥'이었다.
집에서 차린 밥상은 단순히 먹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내 몸에 맞는 재료를 고르고, 손질하며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것들이 내 몸속에 들어와 각종 화학반응을 일으켜 나를 건강하게 해 줄 것을 생각하면 감사했다. 특히 장이 예민한 나에게는 기름지고 자극적인 외식보다 채소와 발효식품, 균형 잡힌 단백질이 훨씬 안전했다.
냉장고 털어 만든 채소 비빔밥
재료 (1인분)
잡곡밥 1 공기 150 g (현미·귀리·보리)
당근 30g (채 썬 것)
양파 30g (채 썬 것)
느타리버섯 30 g
녹색 잎채소 한 줌(로메인, 깻잎 등) 40G
양배추 사워크라우트 1큰술
구운 두부 적당량
계란 1개 (반숙 프라이)
양념장: 대파·마늘 다진 것, 간장 1큰술, 화이트 발사믹 식초 1작은술, 들기름 1큰술
햄프시드, 아마씨 가루 1큰술
만드는 법
1. 엑스트라버진 올리브 오일에 당근, 양파, 느타리버섯을 볶아 단맛을 살린다.
채소는 볶을 때 소금을 조금 더 하면, 각 재료가 가진 맛을 살릴 수 있고, 감칠맛이 증가한다.
특히 당근의 풍부한 베타카로틴은 기름에 볶으면 흡수율이 더 높아진다.
기름에 볶아 쫄깃해진 버섯은 고기 역할을 대신해 준다.
2. 잡곡밥 위에 볶은 채소, 생채소, 양배추 사워크라우트를 올린다.
3. 계란 프라이, 구운 두부를 토핑으로 선택한다.
4. 양념장을 뿌리고, 햄프시드와 아마씨 가루를 더한다.
5. 골고루 비벼서 맛있게 먹는다.
요리 의학적 관점에서 본 채소 비빔밥
장 건강 → 사워크라우트의 유산균과 식이섬유가 장 내 환경 개선, 장점막 보호
항염·항산화 → 베타카로틴·폴리페놀·오메가-3 지방산이 염증 완화
혈당 안정 → 잡곡밥+채소+단백질+건강한 지방의 균형이 혈당 급상승 억제
포만감 지속 → 식이섬유와 단백질이 오래 유지시켜 과식 방지
오늘 내과 의사의 셀프 음식 처방전
건강은 멀리 있지 않다. 화려한 슈퍼푸드도, 값비싼 보양식을 찾으러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냉장고 속 자투리 채소들은 오늘의 나를 지키는 최고의 약이다. 오늘 저녁, 먹을 게 없다면 냉장고 털어 맛있는 비빔밥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약보다 더 중요한 음식 처방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