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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키드니 Oct 24. 2021

프롤로그. 어쩌다가

우연히, 뜻밖에 생긴 일을 우리는 '어쩌다'라고 표현한다.


나는 의사면허증의 햇수는 13년, 6년 차 내과 전문의이다. 집에서는 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매달 25일이면 월급날을 기다리는 봉직의사다. 어쩌다 의사가 된 경우는 아니다. 나에게 ‘어쩌다 의사. 어쩌다 의대.’ 같은 행운은 없었다. 크게 원하지 않았는데도 좋은 결과가 나온 적은 없었다.


(출간 준비중입니다.)


우연히 얻은 기회가 아니었다. 의사가 아닌 그 무엇도 되고 싶지 않았다. 기필코 의사가 되고 싶었다. 특별한 재능 없는 평범한 소녀가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내 몸을 던져야 했다. 서울 강북에 위치한 여고에서 재학생이 의대에 간 것은 몇 년만이라고 했다. 비록 지방에 있는 의대이긴 했지만. 의대에 입학하고 나서도 누구보다 오래 책상에 앉아 있었다. 뛰어난 이해력도 암기력도 없어서 손이 고생했다. 꾹꾹 눌러 암기하는 버릇으로 내 오른손은 성할 날이 없었다. 의대 졸업과 함께 얻게 된 의사면허증은 성실한 삶에 대한 보상이었다. 의사가 되었지만, TV에서만 보던 의사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 했다. TV가 꺼진 뒤 배우들은 휴식을 취했을 테지만, 현실의 나는 뛰어다녀야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치열함의 결과로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지게 되었지만, 동시에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가 되었다. 타인의 고통에 집중해야 하는 직업의 맹점이었다. 기필코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환자도 되어있었다. 의사가 되고, 환자가 된 지 10년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어쩌다'는 결코 우연히 얻어진 행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쩌다'는 환자들에게 더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원하지 않았는데 얻게 된 뜻밖의 일은 환자들에게 더 자주 일어났다. 원해서 환자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의사이자 동시에 환자로 살며 어쩌다 알게 된 깨달음이었다.


기억은 언제나 자기 멋대로이고 실수 투성이다. 의사가 된 첫해. 나를 괴롭힌 증상들이 실제보다 과장해서 내 기억 속에 저장된 것은 아닌지 확인이 필요했다. 나에 대해 객관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나와 같은 의사뿐이다. 13년간의 진료 기록 전부의 발급을 원했다. 의무기록실 직원은 너무 많다며 손사래를 쳤다. 처음의 기록. 초진 기록만 확인해보기로 했다.


초진 기록

2009년 7월 17일.

3~4개월 전부터. 복통. 혈변. 설사. 하루 8~10번

체중감소 없음


의사가 되자마자 시작된 나의 고통들. 그때 나의 증상을 한 단어로 깔끔하게 기록해 높은 교수님의 초진 기록에는 그 어떤 과장도 없다. 그렇게 힘들었으면서도 체중 감소가 없다는 걸 보니, 그때도 다이어트는 실패. 많이도 먹었나 보다. 초진 기록 어디에도 내가 겪었던 고통의 무게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차갑게만 적힌 객관적인 기록에 교수님에게 서운한 감정마저 들었다. 고통은 오롯이 자신의 것이으므로 그에 대한 기록은 경험한 자만이 말할 수 있다.


다시 써보는 그때의 기록

2009년 의사가 된 지 한 달째. 죽지는 않겠지만 죽을 것 같은 복통. 혈변. 설사. 하루 8~10번.

통증으로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어 변기를 옆에 끼고 화장실에서 잠들고 싶음.

아무리 먹어도 살은 찌지 않았지만, 나날이 수척해져 해골 형상이 됨.


혈액과 점액을 함유한 묽은 변 또는 설사가 하루에 수회 나타나는 증상, 복통, 체중 감소, 빈혈을 주소로 젊은 환자가 내원하면 의사는 염증성 장질환을 의심한다. 염증성 장질환은 궤양성 대장염과 크론병을 말한다. 가수 윤종신은 크론병을 고백했고, 지난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궤양성 대장염 악화로 사임했다.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은 이란성쌍둥이 질환으로 나는 궤양성 대장염 환자다. 초진 기록에 나의 증상에 관한 객관적인 문장은 건조하다 못해 불면 날아갈 것 같이 가볍다. 죽지는 않지만 죽을 것 같은 고통과 모욕감을 준 그 질병은 내겐 꽤 버겁고 무거웠던 질병이었다.


오늘도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잘 다려진 하얀 가운을 입고 환자를 맞이한다. 진료실로 환자가 들어온다. 한 순간에 환자가 된 그는 어쩌다가 이런 몹쓸 병에 걸렸는지 모르겠다며 나를 붙잡고 신세 한탄을 한다.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키보드를 두드려 진료 기록을 작성했다. 온기 하나 없는 차가운 진료기록이다. 이 기록으로는 환자가 호소하는 고통의 일부도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아픈 적 없으셨죠?” 


환자의 아픔에 동의를 표할 수도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었다. 침묵으로 답했다. 그 어떤 말로 환자를 위로할 수 있을까. 환자가 된 의사. 존재의 아이러니 속에 모든 걸 감추고 살았다. 괜찮은 척하며 세상을 더 차갑게 만들었다. 당신 앞에 앉아 있는 의사도 환자다라는 고백을 듣게 된다면 위안이 될까. 환자의 아픔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같다. 달리기 하다가 떨어지는 이마에 떨어진 물방울이 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하늘에서 비가 왔던 것이다. 의사가 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흘린 땀방울이라 생각했는데, 하늘에서 내린 비를 맞은 것뿐이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도 무참하게 떨어지는 비를 피할 수 없었다. 


의사의 존재 이유가 미처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에 대해 조언해 주는 사람이라면, 환자이자 의사인 나만 알고 있었던 고통, 의사이자 환자로써 유난했던 나의 경험을 드러내도 괜찮을 것이다. 여전히 진료실과 집에서 고군분투 중인 봉직 여의사의 삶에 대해서도 고백하고 싶다. 


나의 경험과 고백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누군가에게는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이해가 되길 바란다. 위로와 이해, 공감이 세상의 온도를 상승시킨다. 우리 몸의 체온이 1도만 올라가도 면역세포의 활동이 활발해져 건강해지듯. 나의 글들이 세상의 온도를 상승시켜 좀 더 건강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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