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지만 놀라지 않았다.
병원에서 의사가 죽었다. 설 연휴를 앞둔 날이었다. 2019년 2월 인천 가천대 길병원에서 근무하던 소아과 전공의가 당직실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당직 근무 중에 잠시 눈을 붙였을 그는 그렇게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그 소식을 접했을 때에 나는 마음 한편이 쓰라리고 안타까웠지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웬만한 병원에서 수련을 받아본 의사는 충분히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수련 환경은 사람들이 어떤 것을 생각하든 상상 이상이었다.
(출간 준비중입니다.)
의과 대학 6년을 졸업하고 드디어 의사가 되었다. 의사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나의 꿈이었다. 의사들은 의사 자격증을 받고, 원하는 병원에서 일할 수 있다. 그들 대부분은 인턴이 된다. 공식적으로 인턴도 의사이기 때문에 환자를 진료할 수 있지만, 진료의 권한이 바로 주어지지는 않는다. 인턴은 다른 의사들의 조수 역할을 한다. 그들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 중에 가장 바닥에 있다.
인턴은 몸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실전에 바로 투입되어야 하지만 아는 것이 없다. 교과서로 배운 의학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몸빵을 하려면 병원 구석구석 위치한 각종 검사실의 위치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하나 대부분의 인턴은 넓은 대학 병원 속 검사실 위치를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더 발로 뛰며 몸을 쓸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들은 눈치도 없다.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고 세상 밖을 나와보지 않았으니 눈치가 생길 기회가 없었다. 혹시 당신은 눈치가 빠른 사람인가. 그렇다면 3월 초 대학병원에 가보라. 그곳에서 가장 어리바리한 사람. 그들이 바로 인턴이다.
3월의 첫 텀으로 대학병원 심장내과에 배정이 되었다. 병원의 밤과 새벽, 아침은 구분 지을 수 없다. 밤새 응급 콜들을 해결하다 보면 어느새 새벽을 지나 아침 회진을 위한 준비가 이어졌다. 초보 의사. 나의 아침 일상이 시작되는 건 새벽 4시였다. 모든 것이 서툴었던 나는 그쯤 일어나야 제대로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새벽 4시. 중환자실에서 동맥혈 채혈을 하고 심전도를 찍었다. 24시간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중환자실은 낮과 밤이 따로 없다. 인공호흡기, 체외순환기, 혈액투석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대낮같이 밝은 조명 아래 환자들 대부분은 잠들어 있었다. 그들은 서툴고 새벽에 부산 떠는 신참 의사에게 너그러운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반면, 병동 환자들은 능숙하지 않은 인턴이 새벽부터 돌아다니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어두움을 헤치고 병실을 방문할 때마다 날카로운 말들이 날아왔다. 아마도 그들은 내가 의사였는지 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런 환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가능한 아침에 가장 가까운 시간, 동이 틀 무렵 병실 문을 두드렸다.
인턴이 된 나는 일주일에 168시간을 일했다. 하루는 24시간이고, 일주일 7일이니 일주일 내내 병원에 있었다. 일이 서투니 온종일 병원에서 적응하는 기회를 준다는 좋은 취지였다. 기본적으로 의식주는 병원에서 해결했다. 옷은 수술실 스크럽 복과 크록스 신발 한 켤레로 충분했다. 병원 당직실 침대가 내 작은 집이 되었다. 당직실에 주어진 빵과 라면으로 끼니를 대신했다. 눈을 뜨고 있을 때는 주어진 일을 해결하느라 바빴고, 여유가 있을 때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잠을 잘 때에도 전화벨은 끊이지 않았다.
첫 인턴 한 달을 통째로 병원에서 보냈다. 일을 하기 위해 의자에 엉덩이를 잠깐이라도 붙이기만 하면 눈이 감겼다. 졸림은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다. 이렇게 일하다가는 목숨이 끊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악으로 한 달을 버텼다. 한 달간의 병원 생활 끝에 집으로 갈 수 있었다. 3월의 마지막 토요일. 오후 12시부터 일요일 6시까지의 휴식이 주어졌다. 분명 겨울의 끝자락에 인턴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거리는 완연한 봄이었다. 따가운 햇살과 눈 부심도 귀찮지 않았다. 다만 그런 봄의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내 까만색 겨울 패딩이 부끄러웠을 뿐이다. 나를 찾지 않는 곳, 전화벨 소리 없이 잘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집으로 향했다.
일부 사람들은 의사의 과도한 업무 시간을 이야기하면 너도 나도 다 그렇게 일한다고 한다. 의사들이 일하는 노동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멀쩡했던 환자가 갑자기 중환이 될 수 있기에 일하는 내내 응급이다. 나의 작은 실수로 인해 환자의 생사가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에 마음이 항상 조급하고 불안하다. 내 명줄의 일부를 끊어다 그들에게 바치고 싶은 순간도 여러 번이었다. 그들이 살아야 내가 살 수 있었다.
내가 다른 의사보다 사명감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는 순간 모두가 그렇게 된다. 환자가 눈앞에서 넘어가는 걸 보면 누구나 밤을 새우고, 그들과 함께 생사를 넘나 든다. 환자가 한고비 한고비 넘길 때마다 의사의 수명도 닳는다.
의사가 병원에서 환자를 살리는 것은 당연하다. 당연한 일을 하는 의사의 배터리는 충전되지 못했다. 충전되지 못하고 방전된 상태에서는 일하던 의사는 결국 일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