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 하얀 변기에 새빨간 피가 붉게 물들었다. 병원 생활에 적응한 지 딱 한 달이 되던 날이었다. 흠칫 놀랐지만, 차분하게 머릿속으로 소화기내과 3강을 펼쳤다. 하부 위장관 출혈 중 가장 흔한 것은 치질이다. '그래, 치질이겠지.'
며칠째 배를 쥐어뜯는 복통이었다. 복통. 교과서에 한 단어로 표현된 그 단어는 너무 가벼웠다. 나에게 복통은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시도 때도 없이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한번 들어만 가면 쉽게 나오지 못했다. 의사들은 가능한 환자의 화장실은 이용하지 않음에도 응급 상황이 자꾸 발생했다. 실례를 무릅쓰고 그들의 공간을 침범했다. 모두 잠든 밤이면 당직실에서 화장실을 오가느라 밤을 지새우곤 했다.
초보 의사는 눈치가 없었다. 자기 몸에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조차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가 보는 환자는 언제나 생사를 넘나드는 중환이었기에 젊음으로 무장한 스스로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했다.
(출간 준비중입니다.)
'다들 꼴깍 넘어가는데, 그깟 치질쯤이야.'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참는 건 내 주특기였다. 고통은 시간이 해결해주길 바랐다. 그럼에도 나의 복통과 혈변은 점점 더 심해졌다. 어디를 가든 화장실 근처를 벗어나지 못했다. 주말에 오프를 받으면 가끔 홍대를 가곤 했는데, 20대 청춘은 홍대 젊음의 거리를 거닐면서도 화장실만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5개월을 버텨 녹음이 우거질 무렵 인턴의 꽃이라는 응급실 인턴이 되었다. 병원에서 24시간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밤이 존재할 수 없는 응급실을 사수했다. 12시간을 연속으로 근무하고 12시간을 쉬었다.
응급실 근무의 장점은 낮 시간에도 병원이 아닌 곳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밤 근무를 하고 낮에는 집에서 밤에 취하지 못한 수면을 취했다. 퇴직을 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아빠는 낮에 죽은 듯이 자는 나를 위해 식사를 차려주곤 했다. 움푹 파인 볼, 창백한 얼굴. 식사 때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는 내 모습을 수상하게 여겼다. 정상 생활을 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던 아빠는 내 손을 이끌고 동네 내과를 찾아갔다. 아빠는 의사인 딸보다 감이 더 좋았다.
주증상 복통과 하부 위장관 출혈. 교과서에서 쓰인 대로 동네 의사는 대장내시경을 권했다. 대장 내시경을 받는 것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웠다. 미끌거리는 레몬맛의 장 청결제. 대장 내시경을 받으려면 깨끗하게 장을 비워야 하기에 이걸 꼭 먹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끝까지 먹지 못했다. 도대체 누가 이런 걸 만들었는지 원망했다. 한 번은 멋모르고 했어도 두 번 다시는 못할 검사라고 생각했다.
검사 직후 의사와 함께 대장 내시경 사진을 보았다. 내시경이 지나간 대장의 점막은 붉어져 있었고 살짝 건드려도 피가 나고 있었다. 몇 가지 의심되는 병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정확한 병명 확인을 위해 조직 검사를 진행했다. 검사 결과는 일주일 뒤에나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일주일 뒤, 나를 대신해 아빠가 검사 결과를 받아왔다. 응급실 낮 근무가 예정되어 있어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갈 시간이 없었다.
조직학적 소견
Inflammation 염증
Crypt abscesses, cryptitis
온갖 의학용어가 난무한 검사 결과지였다. 나는 알아볼 수 있었다. 심각한 것이냐고 묻는 아빠의 말에 괜찮을 거라고 답했다. 고통스럽던 통증이 실체를 드러냈다. 나를 불안하게 했던 복통과 혈변의 이유가 명확해졌다. 괜찮지 않았다.
'나 그동안 많이 아팠던 거 맞는구나. 그냥 참을 수 있을 정도의 통증 아니었구나.' 힘든 게 아니라고 스스로를 속이고, 애쓰며 살았던 내가 안쓰러웠다.
방으로 들어와 검사 결과지를 받아 들고 눈이 시뻘게지도록 울었다. 콧물까지 흘리는 서러움이었다. 꺽꺽 나는 소리를 참아야 했다. 아빠 몰래 울음소리를 감추기 위해 입을 굳게 다물었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미련했다. 참는 것이 내 주특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저 미련하기만 한 사람이었다. 의심되는 병이 있었지만,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아니길 바랬다.
많은 환자들이 병을 진단받을까 봐 병원에 오기를 꺼려한다. '괜찮겠지' 하는 마음과 '아니겠지' 하는 생각에 스스로를 가둔다. 병원에 오지 않는 사람들은 말한다. "시간이 없다고." 나도 마찬 가지였다. 정말이지 의사는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함부로 낼 수 없다. 직장인들이 흔하게 사용한다는 연차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인턴 중 연차를 내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알 필요가 없었다. 의사는 절대 그럴 일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의사는 아프면 안 되는 사람. 의사가 아프다고 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의아해한다. 하지만 의사 역시 많이 안다고 해서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며, 병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스스로 환자이자, 치료자가 되는 것은 쉽지가 않다. 본인의 상황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생각하여 진단이 늦어지기도 하고, 중간에 치료를 포기하기도 쉽다. 쉽게 약물을 구할 수 있어서 약물을 오남용 하기도 한다.
나는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진료받으러 갈 시간이 없었다. 아니, 내가 진료를 받으러 갈 시간이 없었던 것은 내가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모두 핑계였다. '시간이 없어서'라는 건 모든 환자들이 한 번쯤 하게 되는 한낱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고백해야겠다. 이 모든 건, 자만했던 초보 의사의 실수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