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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Jun 11. 2024

류선재, 윤윤제, 최웅 그 여름의 날.

뭘 해야 할까. 사뭇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이대로는 잠들 수 없어 이불을 박차고 나와, 거실 미등만 켠 채로 맥주 한 캔을 집어본다. 시원한 알루미늄을 잡은 손바닥이 먼저 위로받고, 이내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탄산이 올라오자, 귀로 갈증이 채워진다. 아직 본질을 삼키지도 않았건만 전해지는 위로는 무엇인가. 과연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무의미하게 리모컨을 돌려보지만 딱히 멈춰지는 채널이 없다. 넷플릭스의 유명한 드라마를 넘겨봐도 재생 버튼이 눌러지지 않는다. 무심히 보기 시작한 드라마에 홀랑 내 시간의 주도권이 넘어갈까, 일부러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음악을 잔잔히 배경 삼아, 브런치를 연다. 뭐 딱히 쓰고 싶은 주제가 있는 건 아니고. 연재 글도 마땅한 주제가 생각나지 않아 뛰어넘은 지 몇 주째,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고 있다.


김동률 플레이 버튼을 눌러놓고 글을 쓰니, 새삼 설렌다. 이 설레는 감정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카톡이 없던 시절, 썼다 지웠다 수차례 반복하다 보낸 문자의 답장을 기다리던 기분이 비슷할까. 아니면 수화기 너머로 고백을 받던 그 시절의 뜨거웠던 귓볼의 느낌일까. 허용된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메뉴를 고르듯, 오늘의 감정을 골라본다. 지금 나는 어떤 감정을, 어떤 과거를, 어떤 순간을 떠올리고 싶은가. 맥주에 어울리는 안주를 어디서 찾으려는지.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 무엇을 마주하려 하는가.

© unsplash

낮 시간에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불안해했다면 밤, 특히 자정이 가까운 시간엔 과거를 되짚어본다. 내세울 만한 과거를 가지지 못해 보잘 것은 없지만, 콕 찍은 어떤 순간들은 기억을 꺼낼 때마다 촉촉한 감정을 가져온다. 일명 얇은 초록의 계절. 땀을 식힐 정도의 산들바람, 가로등이 켜진 거리의 적당한 소음, 티셔츠가 살짝 달라붙는 습도. 초록이 내어준 조각들이 소환되면 그때로 돌아가 당장이라도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싶다.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미풍이 불어오고, 잔머리가 살랑거리며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한 나른한 주말의 충만함.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 찰나의 계절을 모으고 싶다.




'선재업고튀어'라는 드라마를 보고 아줌마들이 더 새록 새록한 감정을 느끼는 건, 현실은 감정 안에서 허우적거릴 시간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 아닐까. 일에 치이며 기저귀 갈고, 등하교시키고, 밥을 준비하는 현생이 아니라, 풋사과 같은 설익은 감정이 가랑비처럼 전해지는 그 시간이 오로지 그녀들의 감정 배출구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도 한때는 임솔이었고(얼굴이 아니라) 나만의 류선재(이 역시 얼굴이 아니고)를 사랑하며 지낸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 소환되기 때문에 정말 업고 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나만의 선재를 사랑했던, 아니 좋아했던 첫사랑의 시간.

그래서 그럴까. 그해 여름의 웅이도, 응답하라 1997의 윤윤제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터질 것만 같은 정제되지 않은 감정의 폭발선을 보여주며 내 가슴이 아직 살아있단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너도 그랬었어, 잊었겠지만. 너 역시 너만의 영화 속 주인공인 시절이 있었어. 다시 느껴보지 않을래?'

© unsplash

안다. 우리 모두 한때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소녀'였단 걸. 한살 한살 나이가 들고, 각자의 가정을 꾸리며 단념한 듯 살아가고 있지만, 어느 기억의 조각에선 살아 숨 쉬었단 걸. 녹록지 않은 현실에 치여 잠시 망각했을 뿐 없었던 기억은 아니란 걸.

드라마는 이 잊을 수 없는 감정을 수많은 레퍼토리에 환상을 더해 추억을 소환해 주고, 상기시키며, 자꾸 그 시간 안에서 머물도록 하지만, 우리는 깨어나 또 현실을 살아가야 한다. 한낮의 장판에 쩍 달라붙는 불편한 습도가 아닌, 운동장 수돗가의 물장난에 위로받고 다시 그 장판으로 돌아가 현생을 지켜야만 한다. 꿈 같은 시간을 거슬러 좀 더 머물고 맴돌고 싶지만, 허락된 시간 안에서만 가능한 현실이 매섭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허용된 작은 시간을 모아, 각자의 임솔을 만나 나 자신을 위로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속 작은 소녀야, 잘 지냈니.

 너 아직 사라지지 않았지, 내가 종종 보러와도 되겠니.

 우리 가끔 만나 서로를 위로해 주자. 없었던 시간인 듯 살아가는 현실에서 소환해, 잠시라도 눈 감고 미소 지을 수 있는 시간을 갖자."


그렇게 내가 나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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