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나라는 사람에 대해 이실직고하자면, 같이 있으면 혼자 있고 싶고, 혼자 있으면 같이 있고 싶은 청개구리다. 오지 않는 연락을 내심 기다리며 오전 시간을 비워두기도, 오는 연락을 받고 싶지 않아 의도적으로 핸드폰과 거리두기도 한다. 외출복을 바로 갈아입지 않고 쇼파 주변을 서성이기도 하고, 허름하고 어정쩡한 실내복이 살갗에 닿자마자 마음 놓기도 한다.
갑자기 훅 들어온 그녀의 차 마시자는 얘기에 거절 멘트를 찾지 못해 경련난 웃음을 짓는다. 집에 들어와 쇼파에 파묻혀 정신을 못 차리다가도, 나를 부르지 않은 모임 소식을 들으면 괜히 샐쭉해지는 사람, 그 이상한 사람이 바로 나다.
'왜 안 물어보지?'
'왜 안 궁금해하지?'
'이걸 왜 물어보지?'
'왜 자꾸 만나자 하지?'
오늘도 울리지 않는 고요한 핸드폰을 저만치 떨어트리고서 고개만 쭈욱 내밀어본다.
'Anybody here?'
조용한 내향인은 혼자만의 시간에 안도하다가도 고립되기 직전 구조의 손가락을 타이핑한다.
'나 여기 있어요!'
이런 자신을 보고 있자니 롤케익이 생각난다. 프랜차이즈 한구석에 있는 듯 없는 듯 반듯하게 자기 자리를 차지한 그 녀석. 휘황찬란한 맛을 내지도, 지나는 이의 눈길을 끌지도 못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항상 존재하는 적당한 그놈. 화려한 이목구비를 갖지도 못했고 출중한 언변과 뛰어난 실력도 없다. 하지만 커피 한 잔 생각날 때 적당히 연락할 수 있는 사람, 같이 있어도 속 불편하지 않고, 본 모습을 재지 않아도 되는 사람. 딱 그만큼이 되고 싶다.
갑자기 훅 다가오는 인연이 운명처럼 반갑다가도 이내 뒷걸음질 친다. 마음속으로 선을 그어놓고 그 사람이 내어준 마음과 내가 보인 오지랖을 생각한다. 관심을 포장한 선의가 혹시 다른 사람 마음에 상처를 주진 않았는지, 괜히 불필요한 말을 덧붙이진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하며 시간을 돌려본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어찌 이리 복잡하게 사느냐고. 칼로 뚝 자를 수 없는 것을 시시때때로 재려 드는 사이가 무슨 진정한 관계가 되겠냐고.
맞는 말이다. 마음보다 머리가 앞선 관계는 지속하기 힘들 테고, 어느새 상대가 뒤로 물러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여기 속 좁은 인간의 변명을 덧붙여 보자면.
이 모든 것은 우리 사이를 지속하기 위함이다.
자기검열은 타인과 올바른 관계를 위해 초석을 까는 일이다. 내 의도가 상대에게 온전히 가 닿을 수 없기에 진심을 곡해하지 말아 달라는 간청이기도 하고. 불편할 수 있는 상대를 위해 신중히 말의 어순을 생각하고, 의미 또한 되짚는다. 이렇기에 만남이 잦아지면 피로할 수밖에 없다. 보낸 시간의 곱절에 해당하는 시간을 들여 되감기 하기에 적당한 틈이 필요하다.
자그마치 롤케익 같은.
이런 내가 이해되지 않겠지만,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에 딱히 고개 저을 수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 있는 게 편하다.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서너 번 정도 들어야 겨우 연락 한번 한다. 그 마음이 차고 넘쳤을 때 무심하게 툭 얘기하고 다시 나만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좀 정 없기도 하고, 때론 새침하기도 한데, 그것이 너와 나의 적당한, 딱 고마운 마음을 유지하기 위한 거리라고 생각한다. 각자 삶을 충실히 보내다 우연히 한 번 만나 찐한 시간을 보내고 또 흩어지는 게 통풍되고 상쾌하다.
스무 살 언저리 혼자 여행을 떠났다. 그 당시 방학 기간에 열차 탑승권을 끊고 무한대로 탈 수 있는 시스템이었고, 친구와 각자 여행을 시작했다. 한 명은 부산에서, 다른 한 명은 강원도 촛대바위에서 시작해서 영주에서 만났다. 반나절 정도 같이 여행하고 영주역에 세워진 기차에서 각자 숙박했다. 2층 침대서 바라본 달빛이 아직도 마음 한편을 비추는 건, 아마 친한 만큼 각자 시간을 존중해준 여행이라서지 않을까.
그래서 롤케익이 달갑다. 그동안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그 녀석이 주는 적당한 안정감이 오늘따라 묵직하다. 시간이 지나도 묵묵히 자리보전하며 보이는 무심한 기세등등이 귀엽기만 하다. 오늘은 롤케익에 찐한 커피 한잔하며 그 녀석을 만끽해야겠다. 한 입 베어 물며 안도하고 피식 웃고 싶다. 자그마치 롤케익을 내 돈 주고 샀다니 라는 생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