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약속이 있을 때는 지하철을 선호한다. 역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으며 최단거리와 최소 환승을 검색한다. 지상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는 좀 더 서두르며 지하철이 끌고 들어오는 세찬 바람에 머리를 가르며 문틈에 몸을 집어넣는다. 'Okay, safe'
휴, 한숨 돌리고 문에 비친 모습에 얼른 머리카락을 정돈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이어폰이 빠지지 않게 적당히 고막에 쑤셔 넣고, 아무렇지 않은 척, 갈아탈 노선을 살핀다. 이게 뭐라고 딱딱 들어맞게 탈 때면 일이 술술 풀리는 희열감에 휩싸여 기분 좋은 안도감이 드는지. '늦지 않고 도착했네. 역시 효율적이야.'
어렸을 적부터 약속 시간보다 10분 정도 미리 도착했다.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과 버스 배차 간격을 생각하고, 혹시나 해 몇 분을 추가하다 보면 적어도 10분~15정도 미리 도착했다. 성격상 여유롭게 도착해 기다리는 게 마음 편했다. 학창 시절 매번 늦는 친구의 지각에 때론 얄궂은 말을 건네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어 그런가 이제는 그 친구의 시간은 나와 다르게 흘러간다며 웃으며 넘긴다. '그러면 그렇지.' 그러다 상대가 제시간에 도착하면 오히려 더 반갑기까지 했다. 약속 시간에 왔는데 일찍 만난 기분. 친구를 향한 인정과 여유가 나이에 스며 들었나.
하지만 내가 늦는 것에는 여전히 불편함을 느낀다. 아이 치과 진료 시간에 미리 도착하지 못하면 10분 정도 늦어질 듯하다고 문자를 보내야 하고, 공연 시작 10분 전 도착은 여전히 다급하기만 하다. 여유롭게 걸어가는 시간과 화장실을 한 번 들려야 하고, 옆 사람 다리 생각지 않고 자리에 앉아 엉덩이도 몇 번 들썩여야 한다. 이런 성격을 알기에 운전하는 남편은 종종 엑셀과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초조함을 함께 느낀다. "조금 늦으면 어때."라는 말을 전하는 그의 말이 내게 와닿지 않음을 지난 시간으로 느낀 그로서는 최대한 요리조리 운전할 뿐. 그 시간에 1분이라도 일찍 도착하는 게 아내의 미간을 펴는 일이란 걸 체득한 것이다.
아이 학원 차량의 경우도 10분 전에 미리 도착해 기다린다. 간혹 차량이 일찍 와 있으면, 눈치를 보며 꼭 내가 늦은 것처럼 고개를 굽힌다. 반대로 다른 여러 이유로 차량이 늦을 경우에는 "뭐 그럴 수도 있죠."라는 관대함이 발동하니, 이게 좋다고만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는 일들에 관해서는 딱딱 들어맞고, 최대치 효율을 짜내면서 타인에겐 사람 사는 인생, 여유 좀 있어야지 하며 도포 자락 휘날리니 말이다.
이런 내가 낭만을 찾을 때는 버스를 탄다. 이어폰과 읽을 책, 넉넉한 시간이면 차창 밖 흘러가는 것들에 여유로운 시선을 남길 수 있다. 적당한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과 지상에 비치는 햇빛,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지루하기보단 순간 마주친 다른 사람의 삶에 들어가는 상상도 하며 흘려보낸다.
버스가 여닫으며 들리는 칙-거리는 소음이 묘하게 안정감이 들며, 가끔 창문에 머리를 기대 생각을 떨어트릴 때는 초점 맞지 않는 시간이 얼마 만에 드는 쉼인가 싶어 일부러 버스를 타기도 한다. 가져온 책은 한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기도 하고, 끊임없이 울리는 카톡은 부러 내버려두기도 한다. 그저 멍하니 떨어지는 은행잎과 여민 목도리에 시선을 옮기고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들을 뿐. 내게 떨어지는 낭만의 잎을 묵묵히 받는 시간이다.
일정을 마치고 소란한 시간에서 다시 홀로 집을 향할 때도 비슷하다. 툴레툴레 걷다가, 슬렁슬렁 끌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날카로운 입매의 초승달을 바라본다. 아늑한 집에 간다면 엘리베이터에서부터 효율적인 태세로 변하겠지만 집까지 여남은 500미터는 그저 검은 봉지를 앞뒤로 흔들고 시원한 칼바람을 맞는다.
'이게 인생이지 뭐.' 하는 생각과 함께.
효율적일 땐 고개를 숙일 때가 많았다. 핸드폰 화면을 보고, 책을 보고, 스케줄러를 그으며 자꾸만 아래로 향했던 시선이 낭만을 찾을 땐 수평보다 조금 위였다. 먼 산등성이 속 앙상해진 나뭇가지를 보고 드넓게 펼쳐진 논밭의 풍경을 봤다. 조금 더 높은 하늘을 향할 땐 잘 모르는 별자리를 찾아봤고, 달의 밝음에 입을 살짝 벌리기도 했다.
인생에 있어 좁다란 시선은 해치워야 할 일들만 보게 했고 더더욱 좁은 식견을 갖게 했다. 앞사람의 속도, 옆집 아이들의 성과, 뛰어난 사람들의 냉정한 잔소리. 그 안에 둘러싸이면 나란 사람의 정체성과 방향성은 길을 잃고 더듬거리기 바빴고 내가 선 위치만 계속 맴돌 뿐이었다.
이럴 때 고개 들어 시선을 옮겨본 사람은 다시 하늘을 쳐다볼 여유를 갖게 된다. 달의 모습이 바뀌었고, 하늘은 좀 더 짙은 파랑으로 물들었으며, 눈에 익지 않던 수많은 별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 인생은 좀 더 낭만적이구나 안도한다. 낭만이 이곳을 벗어나게 해주진 못하겠지만, 잠시 숨돌리고 멀리 볼 시야를 갖게 해주는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므로 우린 의무적으로 고개 들어야 한다. 그곳에서 여유 한 줌을 끌고 와 크게 들이마시고 다시 현재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게 인생이지 뭐.'라는 끄덕임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