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개거나 설거지를 하다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잡다한 느낌이 사라질라 어딘가에 휘갈겨 메모한다. 대여섯 줄의 독백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단어와 단어만으로 남기도 하며, 물음표가 가득 쌓이기도 한다. 정확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는 비슷한 느낌의 낱말을 두서없이 끄적인다. 때론 정체 모를 낙서의 흔적이 글의 물꼬를 트여주기도 하기에 갑자기 찾아온 감정을 놓칠까 부랴부랴 적는다.
빨래를 널 때는 나름 체계적으로 너는지라 양말, 속옷, 수건의 위치를 살피고 옷걸이에 걸어 건조하는 것과 눕혀서 말리는 것 등을 생각하며 최대한 효율을 챙긴다. 때론 짝을 맞춰 같은 위치에 양말을 너는데, 이는 건조 후 수납할 때의 편의성을 위해서다. 베란다 건조대에 선 채로 양말을 갠 후 방바닥으로 톡 던질 때, 또 나름의 소소한 쾌감이 있단 말이지. '뭐야, 나 빨랫감 걷으면서 개기까지 한 거야? 이런 효율 덩어리 같으니라고.'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체계적으로 진행됐을 때 효능감이 올라가면서 한사코 허투루 하지 않는 자신이 기특하다. 이상하게 하기 싫은 자투리 일들을 해치웠을 때 '나이스, 해냈어!'라는 성취감이 몰려오는데, 가끔 이게 이럴 일인가 싶기도 하고.
반대로 빨래를 갤 때는 단순 동작의 반복인지라 딴생각이 많아진다. '난 지금 빨래 공장의 사원이다.'라는 자기 암시를 걸고 로봇 같은 효율 감을 찾다가도 어느새 눈은 풀리고, 머리에 작은 돌멩이 하나가 또르르 떨어질 때가 있다. 쌀을 씻을 때도 비슷하다. 1분 정도 소요 되려나. 쌀을 휘젓고 뜬 물을 버리길 몇 차례, 수많은 감정이 다녀간다. '또, 밥을 짓는다'라는 행위가 벗어날 수 없는 아틀라스의 형벌 같다. 마치 밥솥을 이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쌀을 씻으며 뜬 물의 소용돌이 속 한없이 작은 쌀알이 나로 보일 때가 종종 있다.
음식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해야만 하는 일은 최대한 체계적으로 빨리해 버리는 쪽을 택한다. 냉장고를 스캔하며 한 번에 식재료들을 꺼내고 스테인리스 바트를 착착 나열한다. 양파 껍질을 깔 때도 요리당 몇 개가 필요한지, 채썰기용, 국물용, 다진 용으로 나눠 바트에 좌르르 놀 때의 쾌감도 나를 부엌에 잡아두는 요소다. 집안일, 특히 요리는 효율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하는 분야다. 불리거나 핏물을 빼는 등 시간이 걸리는 일을 먼저하고, 데쳐야 할 때도 불순물이 가장 없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팬을 쓸 때도 반찬을 먼저 만들고 키친타월로 가볍게 닦은 뒤 냄새나는 생선이나 고기를 요리하면 원 팬으로 요리가 되기에 정신 사나운 주방으로부터 빨리 탈출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요리는 사진첩 속 한 장으로 남는다. 지난한 흔적이 모두 담기진 않지만, 오늘치 수고가 남아 어깨를 토닥인다. 심신이 지쳐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나란 사람에 대해 회의가 몰려오고 지난 시간이 무의미하게 다가올 때, 그때마다 사진첩의 요리 사진을 꺼낸다.
뭐든 꾸준히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금이 간 경력은 먼지만 수북이 쌓여가고 있었다. 침대에 모로 누워 핸드폰 속 몇백 장의 사진을 보자 눈물이 울컥 차올랐다. 예쁘게 스타일링 된 사진이 아니다. 밥풀이 여기저기 붙어있고, 음식은 말라가고, 국물은 반찬 칸으로 흘러넘쳤다. 밥알은 윤기가 없고, 소담히 담긴 반찬도 아니건만, 이게 뭐라고 사진으로 남겼을까. 후다닥 옮겨 담은 음식을 간신히 한 장 남기고, 또 부랴부랴 생선 가시를 바르고 고기를 자르고 김칫소를 골라주고 있었을 보이지 않는 내가 유난히 마음에 걸려 눈물샘을 콕콕 찌르고 있었다.
보란 듯한 사진으로 남겼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명색이 전직이 있거늘 대충 식판에 담아 먹였다니'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몇 년이 쌓인 사진이 이렇게라도 남아있음에 감사했다. 연년생 아이를 키우고 먹이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내가 보이며 사진이 마치 탯줄 같았다. 과거와 현재의 나를 잇는 그 무언가.
사진에는 외롭고도 긴박한 시간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한 분야에 정점을 찍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늘 있었다. 10년 이상의 내세울 만한 경력은 됐었어야 한다고, 힘들어도 참고 버텨내야 했다는 채찍이 계속 나를 짓눌렀다. 그래서일까. 모르는 사람들 앞, 내 작은 경험은 늘 위축되고 초라했다. 없었던 일도 아닌데 자꾸 살을 보태고 기억을 조작해 부풀려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과연 이걸 내세울 수가 있는 건가.
하지만 4년의 세월이 없던 일은 아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치열했다. 밀도 있게 꾹꾹 눌러 담아 보낸 시간을 오로지 나만 부인했다. 과거의 나를 인정하고 아껴주고 떳떳해야 했음에도 왜 난 자꾸만 없던 일로 만들어 버렸을까. 가위로 싹둑 잘라내 마주하고 싶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넘쳐흘렀을 때, 폴더 속 수많은 식판 사진이 위로 해줬다. 두 아이 입맛이 달랐기에 한 반찬은 첫째를 위해, 다른 반찬은 둘째를 위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더욱 탄단지가 맞지 않아 보였고, 색감, 조리 방법이 겹쳐 보잘것없을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핸드폰을 들이민 그때의 난, 어떤 마음이었을까. 현실을 아등바등 버티며 연년생 아이를 키우던 내가 핸드폰 속 카메라를 놓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스타그램에 올려 자랑할 만한 사진도 아니었고, 그럴 정신도 없었으면서 내 사진첩에만 가득 모아 놓은 이것은 차갑고 시린 겨울을 위한 도토리 모음이었을까.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속 안쓰러운 낭만의 모습을 하고 여전히 그렇게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