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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Nov 14. 2024

효율과 낭만 # SCENE에 대하여

기상이다. 침대에서 두 눈만 끔뻑이던 그녀는 생각한다.


'오늘에 어울리는 자아는 뭐지?'


선택된 이미지에 따라 효율과 낭만을 저울질하며 분위기를 만든다. 기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편견을 깨고 종이 인형처럼 성격을 갈아입는다. 심지어 하루에도 무궁무진하게 바뀔 수 있단 점에서 난, 자발적 다중인격자다.

그동안 뭉텅 그려진 색으로 자신을 바라봤다면 이젠 내면의 다양한 자아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원하는 삶의 목표에 따라 이번 해의 성격을 만들고, 목표치에 달성하려는 또 다른 나를 설정하는 것. 낯선 변주에 더 이상 무서울 것은 없다.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있냐에 따라 그날의 인격이 정해진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엄마로서의 자아는 일주일 단위로 계획을 짠다. 주말이면 다음 주 요일별 메인 음식과 간식을 생각하며 장을 본다. 요리할 시간이 충분치 않은 날에는 배달시킬 것을 대비해 간식이라도 건강한 것으로 준비하며, 금요일은 남편과 야식을 먹을 테니 아이들 저녁거리만 준비한다. 주말에 친정에 간다면 누룽지를 받아올 것이고, 이건 다음 주 아침으로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다음은 학습 스케줄이다. 음.미.체가 고루 들어간 일정인지, 아이들이 어려워 한 과목은 무엇인지, 하물며 이번 주 실내화 가방을 가져오는 날인지 생각하며 별거 아닌 일상을 굳이 끄적여서 해야 할 목록으로 만든다.

아이들이 입학하면서 큰 변동없는 일상이 만들어졌다. 하교 후 놀이터, 학원, 간식 및 티비 시청, 공부 후 저녁 식사까지 효율적이며 메마른 하루가 굴러간다. 루틴, 습관, 효율, 성실이란 단어로 메꿔진 하루의 끝엔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억눌린 감정이 표출되고, 밤+맥주라는 조합은 단어마저 청량하다.


드디어 탈출이다. 낮에 지극한 효율을 찾던 나는 이젠 극강의 낭만을 떠올린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잠든 밤,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담요를 끌어온다. 푹신한 쇼파와 김치냉장고에서 막 꺼낸 맥주, 홀로 먹기 위해 소중히 숨겨 놓은 과자나 마른안주까지. 밤 고양이의 몸놀림으로 은밀한 낭만에 둘러싸여 티비 속 볼륨을 낮출 때, 엄지손가락의 속도감은 말해 뭐하고. 얼굴을 비추는 것은 오로지 화면의 빠른 전환뿐이지만, 낭만의 시간에선 핀 조명이 따로 없다. 카우치포테이토처럼 살의 출렁거림을 오롯이 느끼는 느슨한 이 시간은 낭만의 정점이다.

 



아이를 기준으로 인생의 효율과 낭만이 극심한 저울질을 한다. 한때 계절의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콧망울은 기저귀 냄새를 거쳐 정수리 냄새에 찌르기를 당하고, 웃음 헤프던 여인은 이젠 화를 안 내면 다행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아니면 나이와 상황에 맞게 변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 삶에서 효율과 낭만이 대치점에 있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브런치 북이 탄생했다. 바스락거리는 하루 안에 효율과 낭만의 씬을 데려와 순간을 기록하고자 한다. 반달 웃음 짓던 소녀도, 표정 잃은 아줌마도 한 자아 안에 공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발적 다중인격자의 시간에 애정을 담아 한 편의 영화를 상영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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