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마흔, 마흔 거리고, 책 표지마다 '마흔'이란 글자를 써넣는 것은 인생에 있어 마흔이 가지는 의미가 있기 때문일 테다. 37살에는 "낼모레면 마흔"이라고 했고, 38살에는 "이제 곧 마흔이다" 했으며 39살에는 "우리 내일이면 진짜 마흔이야!!!"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드디어 40살이 되었다. 40이 된 나는 내 나이가 39살인지, 38살인지 헤매다가 '아.... 마흔이지.'라고 되뇌었다. 세월이 붙여준 또 다른 이름을 직면하고 나자, 한숨 대신 줄임표가 붙었다. '마흔이네, 마흔이지....'하고 갈라지는 말들을 이어 붙이다 보면 하늘을 한번 쳐다보는 시간에 쉼표를 붙여줘야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대단한 어른일 거로 생각했던 건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지금, 이 시점 가장 많은 생각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양치질을 하다가도, 당근을 채 썰다가도, 불린 쌀을 밥통에 안치다가도 하루 종일 왕겨 같은 잡념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몸 어딘가에 on-off 버튼이 있어서 딸깍거리는 단순함으로 쉬고 싶었다.
생각들이란 것은 그때그때 달랐다. '아이가 0.5mm와 0.3mm 샤프심을 주문해달라 했는데. 근데 샤프를 벌써 써도 되는 건가. 요즘 애들은 다 쓰고 있나, 연필도 제대로 못 쥐면서 친구가 하는 건 다하고 싶나 보네.' 하는 생각들. '내가 오늘 뭐 만들려고 했더라. 돼지고기 숭덩숭덩 들어간 김치찌개에 메추리알 졸이고....아, 도토리묵. 잠깐 냉장고에 채소가 뭐가 있었지. 양파랑 오이 좀 썰고....'같은 생각. 그렇게 눈앞에 벌어진 물건이 전해주는 바통을 이어받다가 대뜸 '그래서 왜 쓰는 건데. 뭐 하러 쓰는데. 왜 쓰고 있더라, 뭐가 문제였지.' 같은 비눗물같이 뿌연 생각들이 들어올 때는 그 안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알맹이 때문에 속이 더 미끄러웠다.
목표가 없는 삶.
주어진 대로, 맡겨진 삶을 살다가 주도적으로 내 삶을 채워 가려 하자 버거웠다. 옳다고 하는 것들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가고 싶은 방향인지 알기도 힘들었다. 말로는 그렇다고 하는데 내 가슴이 시큰거리는 연유를 나와 뚝 떨어트려 놓고 직면하는 것이 벅찼다. 과연 몸뚱이 안에 있는 머리와 가슴이 같은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지, 나는 어떤 신경회로를 따라가야 하는지 그 깜빡임이 소란스러웠다.
이를 뚫고 지나가야 한다는 걸 안다. 내면에 일고 있는 몸살임을 안다. 그동안 방치하고 살아왔던 마음이 앓고 있음도 안다. 그런데 그것을 지금 꺼내는 게 맞는지, 이렇게 무작정 앓는 것이 맞는지, 그저 알약 하나 삼키고 버티다 보면 괜찮아지지는 않을지 꺼이꺼이 삼키는 물음이 너무 많았다.
내가 지켜야 하는 자리와 내가 품고 있는 근원은 자꾸만 충돌했다. 계절이 바뀌며 옷차림은 경우의 수를 늘려가고 있었다. 이에 따라 아이는 발목을 덮는 바지를 요구하기도, 짧아진 소매로 아침부터 엄마의 마음에 부채를 남기기도 했다. 아직 커버를 씌우지 못한 솜을 덮고 자는 일이 잦아졌고, 화장실 바닥 백시멘트는 제 색을 잃어가고 있었다. 안다. 알지만, 두 눈 꾹 감고 문을 닫아 버렸다. 서랍 문을 닫고, 옷장 문을 닫고, 화장실 문을 닫았다. 종내에는 현관문을 닫고 나왔다. 집에 있으면 닫혔던 문들은 투명색으로 변하고 나는 그들이 하는 속 시끄러운 말들을 거절할 수 없어 머리카락에 열 손가락을 집어넣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어디 가세요?"라는 말에 정확한 대답 대신 어정쩡한 웃음으로 마침표를 짓고 서둘러 내 갈 길을 가야 했다. 그동안 지키고 있던 자리가 옷 끄트머리를 잡을수록 도망쳐야 했다. 그래야 품고 있는 근원 안으로 들어와 몇 줄의 글이라도 쓸 수 있었다. 가령 이와 같은 글들을. 그렇지 않으면 어느 하나 해소되지 않는 시간 속에서 곧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묘하게 서로 거슬리는 사실을 인정하려 할수록 그들의 격한 카운트 펀치를 허락해야 했다. 내면이 서로 주고받는 펀치에 거죽이 나가떨어지더라도 이제는 그 싸움을 말리지 못한다. 그들에게 자리와 시간을 내어줄 수밖에. 언제 어디서 불쑥 튀어나오는 생각일지라도 그저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마흔을 불혹이라 하지만, 난 살랑살랑도 아닌 휘청거렸다. 대나무 숲이 평온해 보일지언정 내면은 요동치고 뾰족한 죽순이 하룻밤 사이에도 여기저기 솟아나고 있었다. 잎새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무서워 흙바닥에 주저앉고 싶었다. 기세를 모르고 자라 하늘마저 덮어버리고 나를 내려보는 우거짐이 무엇보다도 무서웠다. 잠시 옹송그리며 바람이 지나가기를 지켜볼 수밖에.
어느 날 잎새 사이로 햇빛이 비치면 죽림 사이로 난 길을 찾아갈 수 있을까. 살랑이는 바람을 폐 가득 삼킬 수 있을까. 물음을 직면해야만 알 수 있기에 지금은 바람이 부는 대로 나 역시 춤을 출 수밖에 없지만 언젠가 지나온 길을 보며 마음의 몸살을 아련하게 바라보길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