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면서 가장 놓치기 쉽고 하기 어려운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중 오늘의 일이 발생했다.
요즘따라 피곤하다. 피곤하다, 피곤하다고 말하는 와중에도 피곤하다. 딱히 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는 내가 하는 것들이 어떤 프로세스를 작동시키는 일이 아니라 몸에 익어 그저 하는 일이기에 '일'이라는 생각을 못 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글을 쓰면 쓸수록, 그저 해왔던 일들이 사실 나의 에너지를 많이 갉아먹는 행위였단 사실을 알았다.
본가에서 엄마의 일은 벽지와도 같았다. 해도 크게 티가 나지 않고 아무리 엄마가 종종거리며 일을 해도 그저 머리를 딱히 굴리지 않고 공기처럼 가볍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청소기를 밀면 다리를 슬쩍 올리면 되고, "밥 먹어, 밥 먹어!"라고 부르면 "이것만 보고"라며 히죽히죽 웃다가 "안 먹으면 밥상 치운다!" 소리에 "아, 알았다고!!"라고 짜증 한 스푼 얹은 목소리를 길게 끌면 됐었다. 쓰레기봉투가 가득 차고, 재활용 바구니에 플라스틱이 흘러 넘칠듯해도 어떻게 하면 떨어트리지 않고 빈 통을 올릴지 젠가 게임하듯 요령을 피우면 그만이었다.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어?"
시큰거리는 손목으로 "아구구" 하며 등허리를 두드릴 때는 적당히 눈치 봐서 방 안으로 피신하면 그만이었다. 뒷모습에 엄마가 방문을 열고 따라와 "책상 좀 치우고. 옷을 벗어놨으면 제 자리에 걸면 되지, 그걸 왜 쌓아놔?"라는 못다 한 말들을 쏟아낼 때는 "아 정말, 그냥 나가라고. 내가 할 거라고." 더 큰소리를 치며 머리카락을 마구 뒤흔들면 엄마를 밀어낼 수 있었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요즘 나는 '이놈의 집안일, 해도 해도 끝이 없네, 에구구....'라는 생각의 굴레에 갇혔다. 주말 저녁 장을 봐 온다. 냉장고에 넣고 보면 이게 30만 원치라고? 허탈한 미간 주름이 잡힌다. 재료 손질을 할 때는 "반찬 가게에서 사다 먹는 게 낫겠네."라는 말이 절로 붙는다.
양파 한 묶음을 개수대에 쏟는다. 당근 서너 개, 때론 통마늘이나 대파 한 단이 추가된다. 껍질을 벗기다 말고 맵기에 눈물을 쏟기 직전일 땐 어디서 본건 있고 들은 건 있어서 찬물을 입안 가득 머금는다. 매끈한 양파를 키친타올로 감싸 물기를 닦고, 흙 당근은 껍질을 깎고 용도에 맞게 채를 썰거나 다져 놓는다. 통마늘을 물에 불린 뒤 얇게 편 썰고 남은 양은 다져서 작은 용기에 담는다. 대파는 육수에 쓸 뿌리, 흰 줄기, 초록 줄기로 삼등분한 뒤 냉장고와 냉동고로 정리한다. 다음 주에 콩나물이나 숙주를 쓴다면 지저분한 꼬리 부분을 다듬는 것도 빼 먹어선 안된다.
이렇게 해놓는 이유는 집밥을 빠른 시간 안에 하기 위한 나만의 빌드업이다. 냉장고를 가볍게 스캔한 뒤 툭툭 꺼내 후루룩 볶아서 반찬을 만들거나 국을 끓여 내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요리 중간 물기 흐르는 손을 툭툭 닦고 문제집을 설명해 주거나 질문에 대답하거나 필요에 따라 기기를 설치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뉴스를 도배한 어린이 유괴 사건 때문에 근거리에 다니는 학원도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다 보니, 아이가 하교한 뒤 내가 하는 일들은 정신없이 돌아간다. 이 모든 게 수선집 양복처럼 딱 맞게 떨어지기 위해서는 내 머릿속은 분주히 다음, 다음, 다음을 외치고 있다.
흡사 엄마의 하루도 이러지 않았을까. 먼지 훔치는 가벼운 걸레질에도 고도의 계산이 들어간 게 아니었을까. 걸레질을 마치면 때마침 세탁기 알림 소리가 들리고, 빨래를 탁탁 털어 실내 건조대에 널 때는 집안 습도 유지를 생각하고, 빈 세탁 바구니와 재활용 바구니를 바통 터치하며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이런 식으로 말이다.
겉으로 보이는 행위만이 다가 아니었다. 식탁에 김치 콩나물국과 계란말이는 어느 한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과정이 쌓여 한 접시가 되었다. 아침마다 '뭘 입고 가지?'하고 고민할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치밀한 노동으로 만들어졌다는 뻔한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을까, 모른척하고 싶었던 걸까. 발에 걸리는 돌멩이처럼 모든 일에 한 번씩 제동이 걸렸다면 그 사람의 존재를 더 뼈저리게 느꼈을까. 노동이 손에 익을수록, 그 행위가 소리 소문 없이 자연스럽게 이뤄질수록 숙련된 노동은 빛이 바래갔고, 우리는 그 노동의 대가를 당연시 잊어갔다.
엄마의 하루를 똑같이 닮고 있는 나는 그만큼 엄마 생각을 끊임없이 할 수밖에 없다. 귀로 들었던 말들을 입 밖으로 뱉어내면서 오래전 엄마의 잊혔던 노동에 뒤늦게 미안함을 느낀다. 엄마야말로 우리 집 숙련된 노동자였는데. 그 사실을 근거리에 있던 우리가 더 감사하게 느껴야 했는데, 몇 권의 책에 활자로 씌여야 그제서 주억거리며 인정하고 있는 꼴이라니. 엄마의 수고로움을 알아채고 진귀하게 생각할수록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나와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내가 내 가치를 갉아먹던 생각들은 엄마가 하는 일을 내가 가장 하찮게 여겼기 때문 아닐까. 내 안에 가장 큰 가부장을 심어놓고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는 생각에 지금이라도 엄마를, 나를 있는 그대로 다독여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