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얼마나 많은 창문을 가지고 있을까.
나는 한옥, 빌라, 단독주택, 아파트에서 서로 다른 삶을 경험하며 자랐다.
속싸개에 싸여있던 시절, 디귿 자 한옥의 방 한 칸에서 살았다.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작은아버지네, 고모네, 우리 집이 각각 한 칸의 방을 집으로 여기고 살았을 시절, 우린 세 명의 엄마와 세 명의 아빠 그리고 많은 아이 중 한 명으로 자랐다. 널따란 교자상을 펼치고 누군가의 옆구리에 딱 붙어 밥을 먹었다. 그게 누군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어느 방(집)이든 세끼 밥을 먹고 잠을 자면 됐었다.
툇마루 너머로는 쓰임을 다한 절구에 빗물이 고였고, 바람에 실려 온 씨가 내려앉은 곳곳에선 이름 모를 들꽃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침이면 연탄재 쌓인 화장실 옆에서 흙으로 소꿉놀이를 했다. 사루비아 꽃을 쪽쪽 빨아 맛보기도, 고추잠자리 앞에서 뱅글뱅글 원을 그리다 집게 손으로 양 날개를 사뿐히 잡아 페트병에 넣기도 했다. 그 시절 우리 보호자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마당에서 놀다가 집으로 들어가면 부엌에, 아랫목에, 광에 누군가 있었고 그다지 살뜰히 애정을 쏟지 않아도 무던히 자랐다. 그저 어린이들이 서로의 돌봄 역할을 하며 하루 종일 함께 했을 뿐이다.
빌라로 이사 오며 분가했고, 조부모와 사촌으로 엮인 공동생활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부모와 자식만으로 이루어진, 그러나 핵가족이라 하기엔 다소 많은 4남매는 각자 방 한 칸을 가질 수 없는 단출한 생활을 했다. 일하는 아빠와 집에 있는 엄마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생활은 적당한 관심과 어쩔 수 없는 방관으로 이루어졌다. 어린 동생들이 있다 보니 유치원이나 학교 행사에 오지 못하는 엄마 대신 동네 아줌마들이 돌봄의 역할을 대신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11동 302호에 살던 나는 엄마가 바쁘면 101호에 가서 놀았다. 그러다 201호 할머니 집에서 밥을 먹고, 202호 아줌마 집에서 티브이를 봤다. 10동에서, 8동에서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은 매일 쏟아져 나왔고 시멘트 앞마당에서 서로 구슬치기를 하고 딱지치기를 하다가 지루해지면 어스름 질 때까지 골목 어귀를 돌아다니는 게 일과였다. 그 시절 우리는 느슨한 관심 속에서 동네 탐험가가 되었고, 생각해 보면 뉴스에도 나올만한 위험 속에서 다소 거칠게 자랐다.
엄마도 자신만의 연대를 만들었다. 11동 아줌마와 10동 아줌마, 201호 할머니의 목욕탕 친구들. 그런 식으로 여자의 자기 돌봄이 시작되었다. 생활비를 일부 떼서 곗돈을 모았고, 누군가 가져온 일거리를 서로 나누며 부업을 했다. 둘러앉아 인형 눈을 붙이고 전선 줄을 정리하며 어느 집 아저씨가 바람을 피웠는지, 몇 동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지, 몇 호 할머니 아들이 장롱 속 통장을 뒤져 도망갔는지 가정사를 전하며 친해졌다. 어느 소설보다 굴곡진 사연과 맞장구에 매일의 해가 저물어 갔다. 그렇게 여자가 여자를 돌보며 서로의 친정엄마가, 간호사가, 반찬 가게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멀리 떨어진 친정에 할 수 없는 하소연을 가슴팍에 묻지 않고 살 수 있었고, 물에 말은 밥 한 숟가락도 달짝지근하게 넘길 수 있었다. 그 시절 가까운 이웃의 연대는 가족보다 친밀한 돌봄이었다.
한옥을 허물고 그 자리에 단독주택이 들어섰다. 이에 핵가족은 다시 대가족을 이루게 되었다. 그사이 노쇠한 조부모님은 아들 내외의 돌봄이 필수적이었다. 지갑이 필요했고, 음식이 필요했고 가지런히 정돈된 이부자리가 필요했다. 아빠는 더 많은 지폐를 가져와야 했다. 가족 연례행사는 모두 장남의 지갑을 눈독 들였다. 엄마는 더 많은 밥을 지어야 했다. 가족 연례행사는 모두 맏며느리의 노동력을 원했다. 서로 균등하게 나뉘어야 할 돌봄의 무게는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쳐졌고 그 누구도 제 몫을 다하려 하지 않았다.
엄마는 새로운 연대를 찾아 나섰다. 각 집으로 시집온 며느리들은 서로의 힘듦을 토로할 상대를 찾아 눈을 번쩍였다. 이번에도 여자는 여자가 필요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자식들을 돌보며 지쳤던 여자들은 비 오는 날 부침개에 막걸리 한잔 걸치고 가을 단풍을 함께할 나를 돌봐줄 이가 간절했다. 가정을 돌보며 소진된 에너지를 재충전할 안식처가 절실했기에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숨 쉴 수 있는 창문이 어딘가엔 존재했었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지금은 어떨까. 각자 창문을 꼭꼭 걸어 닫은 요즘은 가정 내 나를 돌봐줄 사람을 찾기 힘들다. 그동안 느슨한 대가족 속에서, 동네 골목에서, 마을에서 곁을 내주던 돌봄은 자리를 감췄고 우리는 어디에서도 깊은숨을 내뱉을 공간을 찾을 수 없다. 그저 모든 일을 개인이 떠맡아 선택하고 해결해야 하는 막막함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 간신히 버틸 뿐이다.
창문 없는 삶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개인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우리가 내몰아진 곳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돌봄 제공자를 돌봐줄 이가 없는 곳에서 우리는 누구에게 기댈 수 있을지. 과거의 연대를 통해서 현대의 창문을 찾아야 할 때이다. 창문 옆에 창문 옆에 창문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