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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Apr 08. 2024

나도 옷장 속
옷이 입고 싶다.


    새벽 운동을 갔다. 다섯 시 반쯤 일어나는 생활을 한 달 정도 하고 있는데, 문득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면 운동도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 쓰는 메이트들이 있기에 긍정적인 부담감을 느끼며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른 새벽에 하루를 시작하는 누군가는 잠든 내 눈을 집게손가락으로 번쩍 뜨이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방학을 맞춰 호기롭게 밤 운동을 신청한 적이 있었다. 그래, 새해 결심은 12월부터지! 나름 호기롭게 커뮤니티의 요가반과 필라테스반을 신청했다. 일주일에 2번씩, 총 4일을 합법적으로 밤 9시에 외출한다. 와, 너무 기막힌 발상이었다. 저녁을 먹고 치우는 일련의 과정을 끝내고 아이들 학습을 봐주며 마그마가 용암이 되어 분출할 시점, 나가는 것이다. 처음 운동을 마치고 맞이한 그날의 후련한 공기,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그동안 밤 운동의 매력을 몰랐던 시간이 아깝기까지 했다. 이렇게 개운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고(프로그램이 쉬웠던 날이었음을 이땐 몰랐지) 집에 들어오니 애들이 잔다. 무려 애들이 자고 있다니! 들뜬 마음으로 샤워하고 팩도 붙였었지. 이대로라면 물렁물렁한 살들과도 안녕을 고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기분과 함께 근육질의 탄탄한 몸을 상상하며 곤한 잠에 빠져 들었다.




    이후로도 며칠의 성공이 있었다. 남편의 회식 일정상 일주일의 4번을 모두 참여하긴 어려웠지만 뭐 하루 정도 빠지는 것쯤이야. 오히려 '합법적인 결근'에 슬며시 미소 지으며 마음 한쪽이 평온해졌다. 하루 이틀, 남편의 회식이 잦아질수록 운동을 하란 건지, 돈을 버리란 건지 모를 일들에 조금씩 짜증이 섞여갔다. 여기에 둘째의 설움이 폭발한 게 밤 운동 중단의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엄마는! 새벽에 글 쓴다고 나 자는데, 옆에 있지도 않고! 운동 간다고 책도 안 읽어주고! 글쓰기가 나보다 더 좋아?" 아뿔싸. 폭풍 눈물을 흘리며 서럽게 울고 있는 딸을 보고 있자니, 내가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남편의 회식도 본인이 원한 것이 아니다. 딸의 서러움도 이해가 되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가족의 유대를 깨친다면 재고해 봐야 하는 시점이다.




    엄마의 자기 계발. 아줌마의 자기 계발.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일까. 물론 워킹맘으로 일하랴, 살림하랴, 육아하랴 틈틈이 자기 계발을 해나가는 슈퍼우먼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에너지를 갖고 있는, 보통의 나란 여자는 스스로 핑계를 대며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의지박약이란 말이다. 도전과 함께 언제든 발 뺄 준비를 하는 나를 가장 잘 알기에 빠져나갈 수 없는 덫을 만들려는 것인데, 그 덫에 우리 가족이 함께 걸린 기분이었다. 그렇게 호기로웠던 밤 운동은 채 두 달을 버텨내지 못했고, 다시 일상의 생활로 돌아와 지지고 볶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의도치 않은 터닝포인트가 있었으니, 바로 엘리베이터 거울 속 추레한 모습을 마주치고 만 것이다.

© unsplash


    패딩 단추를 목까지 채우려고 얼굴을 당기는 순간 보였던 나의 이중 턱과 얼굴 넓이. 그 안의 이목구비는 어딘지 모르게 부어있고, 개운치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 면적 속 표정이 생기를 잃었다. 그 모습은 적잖이 충격을 주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이대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받아들이는 게 맞는 일일까. 스스로가 안타깝지 않을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아이가 잠시 학원을 간 사이 운동을 하러 갔다. 오랜만에 운동을 하려니 온몸이 격하게 저항했고 평소 늘려놨던 범주보다도 더 타이트해진 햄스트링이 끊어질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고 집에 들어와 샤워한 뒤 아이를 마중 나갔다. '어떻게든 운동을 갔다. 어떻게든 해냈다.' 과정보다 해냈다는 결과가 이상하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넌 할 수 있다는, 이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얼굴에 생기를 부여 넣을 수 있다는 두루뭉술한 응원의 목소리가 퍼졌다.

    이 도전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얼마 안 가 지쳐, 밤 운동과 마찬가지로 새벽 운동의 실패담을 적고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끝나는 해피엔딩이 아닐지언정, 실패하는 인생은 아니라 생각한다. 하루하루 보내다 보면 어찌 백퍼센트 만족하는 일들만 쌓일 수 있겠는가. 어느날은 깊은 구렁텅이 속에 발이 묶여 헤어 나오지 못할 수도, 보다 더 높이 점프할 수 있는 날들도 있으리. 다만 그저 그런 하루들 속에 조금의 단호한 결심을 이어나가, '지나 보니 그래도 괜찮았던 날들이었다'라며 웃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운동 일장춘몽. 여기서 끝나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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