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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Sep 18. 2021

나는 자주 배가 아프다.

부럽다고 말할 용기

 안 그래도 피곤한 삶인데 어느 날 갑자기 질투심까지 생기는 날이면 화가 치민다. 나는 전형적인 속물임이 틀림없다. 잘 나가는 친구가 부럽고 일이 없는 날은 프리랜서가 아니라 정말 프리 한 인생이 될까 두렵다. 이 시국에 저리 강의가 많은 사람은 대체 비결이 뭘지 궁금하다. 그렇게 부러움만 가득한 날엔 늘 배가 아프다. 실상 배가 아픈 건지 배알이 꼬인 건지 구분이 안 된다. 뇌가 남과의 비교하기를 자동 설정이라도 해 놓은 것도 아닐 텐데 나는 자주 배가 아프고 불안감에 떨곤 한다. 참 못났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불편하다 못해 부끄럽기까지 한 감정이 시기심이다. 상대방을 향한 마음속 부정적 감정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단순히 싫어한다 미워한다는 표현으로 설명할 수 없는 더 복잡하고 미묘한 것이 바로 시기심이다. 비교하고 있는 대상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지는 모양새가 불쾌하고 때론 화가 나기도 한다. 분명 내게 화가 난 것이 분명함에도 마음 한편에는 상대에 대한 비뚤어진 감정까지 함께 생기니 고약하기 이를 데 없다.   

  

 영화 ‘여배우들’은 패션 잡지 『보그』의 화보 촬영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6명의 여배우가 사실감 넘치는 연기를 펼쳐 화제가 됐었다. 정해진 각본과 연출은 있지만, 대사가 주어지지 않고 애드리브로 진행되는 모큐멘터리 방식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실제 모습인지 연기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당연했던 여배우들이 함께 모여 있는 장면은 그야말로 긴장감의 연속이다. 일반인이 보기엔 나이를 불문하고 아름답고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지만 서로 다른 배우를 시기하는 질투의 화신이었다. 자신이 돋보이기 위한 그녀들의 노력과 질투는 우리네 사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보였다. 어쩌면 그래서 더 공감됐는지도 모른다. 많은 것을 갖고 있으니 더 필요한 것도 부러울 것도 없을 인생처럼 보이는 사람도 자기보다 나은 사람(본인의 기준일 테지만)을 시기한다. 세상이 공평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누군가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은 더 나은 모습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부럽다는 생각과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일종의 동기부여가 되는 셈이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고 했지만 부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더 문제가 되는 때도 있다. ‘나는 절대 부러워하지 않아’라고 말하면서 한 편으로는 상대의 성공을 비꼬고 빈정거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때로는 상대의 약점이나 험담을 제삼자에게 늘어놓고 동의를 구하려 애쓴다. 시기와 질투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그것이 지나쳐 자신의 삶 전체를 평가절하하거나 상대를 깎아내리는 일에 에너지를 쓴다면 주변 관계를 망칠 수 있다.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성공한 사람을 보거나 학창 시절 별 볼 일 없던 친구의 화려한 변신은 속상함을 넘어 억울하기까지 하다. 그들이 가진 행운의 열쇠가 노력을 통해 얻었을 리 없다고 확신한다. 세상은 불공평하며 나 역시 분명 잘하고 잘난 부분이 있지만, 그저 운이 지지리도 없어 이 모양 이 꼴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내 것이었던 성공을 다른 사람이 부당하게 가로챘다고 심리적 왜곡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렇게 증폭된 시기심은 밖으로 드러내 놓기 부끄러운 감정이기에 마음은 더 불편해지고 괴롭다.     


 지금은 유명 가수가 된 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가수 이승윤은 오디션 당시 자신을 ‘배 아픈 가수’라고 소개했다. 자신보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볼 때마다 부러움에 배가 아팠다고 한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는 말처럼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지금보다 더 나은 음악을 하고자 하는 간절함과 노력이 함께 했고 반성이 깃든 질투였음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을 반성하기 위한 질투는 성장 동력이 된다. 


 부럽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오히려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 아니다. 부러움을 감추기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당신의 성공이 너무 기쁘고 좋지만, 한편으로 참 부럽다고 고백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질투의 구덩이에서 한 발을 뺄 힘을 얻는다. 부러움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용기다.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무언가를 상대가 누리고 있어 질투가 난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봐야 한다. 무엇이 내가 시샘하게 만들고 힘들게 하는지 말이다. 또한, 자신이 그토록 바라는 모습이 내게도 가능한 수준인지도 가늠해보자. 우리는 돈이 많은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워런 버핏이나 일론 머스크를 시기 질투해서 자신을 괴롭히진 않는다. 대부분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못할 거(때론 못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같은 사람의 성공을 시기한다. 비교하는 그 사람보다 나아져야 한다는 생각은 마음속 그림자와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다. 내가 가장 공격하기 쉬운 것이 ‘나’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해가 될 것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내 그림자들. 좌절, 절망, 수치심, 불안감의 기억과 경험에서 만나는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들이 바로 자신을 그리도 불편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감정의 조각일 수 있다. 내가 미워하는 대상은 상대가 아니라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그림자의 심리적 갈등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안타깝지만 세상은 불공평하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환경이 다르고 가진 능력도, 부도, 재능도 모두 다르다. 어쩌면 이 덧없고, 소모적이며, 부끄러운 질투심은 애초부터 어리석은 생각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정해놓은 몇 안 되는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은 인생을 허망하게 만든다. 각자 자기만의 우주를 갖고 태어난 우리가 서로의 삶을 닮을 필요가 있을까? 인간은 각자의 소우주를 갖고 있다. 자신이 곧 세상 전부다. 그런 우리가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을 세상이 정한 기준으로 비교하고 경쟁하며 때론 우월감으로 의기양양하고 혹은 열등감으로 좌절의 수렁에 빠진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인생은 불공평하지만, 그 안에도 변수는 존재하기 마련이고 불확실하기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라는 희망적인 기대에 부풀기도 한다. 소우주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 이상으로 빛나는 삶은 없다. 자신이 비교 불가능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누구도 아닌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 그 빛은 더욱 고귀해진다.      


 나는 여전히 자주 배가 아프다. 하지만 부럽기 이전에 진심 어린 축하를 보내고 부럽다는 말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에 최선을 다한다. 행운의 여신을 무작정 기다리며 한탄하기보다 행여 내 옆을 그냥 스쳐 지나지 않도록 안테나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손짓한다. 인생은 알 수 없어 불안하지만, 그 안에서 찾아오는 행복 역시 언제 올지 모르기에 더 값지다. 오롯이 나만 만끽하는 소소한 행복이라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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