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따먹기 같은 설계 회의
네 자매와 그들의 배우자 네 명, 총 여덟 명의 건축주가 한자리에 모였다. 첫 설계 미팅을 한 2020년 늦은 가을, 논현동의 건축사사무소에서 건축주 단체를 대면한 건축가 부부는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그 풍경을 떠올리면 지금도 슬며시 웃음이 난다. 그때의 어색한 공기와 어수선한 설렘들이 아련하기만 하다.
상담을 받고 나서 설계 계약서를 작성한 것은 열흘쯤 지나서였다. 그땐 모두 모이지 않았고 주로 나와 넷째 둘이서 대부분의 일을 처리했다. 기본적인 표준계약서에 몇 가지 합의된 조항들을 확인 체크하고 사인하는 과정은 간단하지만 신중하게 살펴봐야 하는 부분이다. 설계비는 어차피 건축가 측에서 제안하고 우리는 거기서 조금 네고를 부탁하는 정도. 설계비 계산하는 공식도 있었는데(건축사협회 홈피에서 했던 것 같다) 뭔가 복잡해서 구경만 했다. 건축 면적, 시공 방법의 난이도(공정방법 등), 예상되는 평당 건축비 등도 계산식에 넣었다.
'평당 건축비가 비쌀수록 건물 설계비도 비쌀 수밖에 없다'던 책에서 읽은 내용이 떠올랐다.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건축의 과정을 공부해가며 조금씩 이해가 되기도 했다.
설계비는 세 차례에 나눠 지불하게 된다. 계약서 사인 후 10일 이내에 1차, 건축허가 접수 후 2차, 착공이 결정되면 완성 도서를 납품한 후에 마지막 3차. 비용이 발생하는 모든 과정들은 넷째가 꼼꼼하게 정리해 공유했다.
설계의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공간 구성이 가장 기본인데 그게 제일 문제였다.
1층은 법적으로 아예 주거 공간으로 쓸 수가 없는 상태. 주변 다른 건물들을 돌아보며 1층은 모두 상가인 것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당연히 임대주기 위한 방법이려니 했다. 하나하나 따져 들어가 보니 건축에 있어 엄격한 규제들이 장난 아닌 거다.
3개의 층에 네 가구를 넣어야 한다. 1층은 법적으로 ‘상가 전용층’, 2·3·4층과 용적률에 포함되지 않는 '다락'까지 활용해 네 가구를 구성해야 하는 어려운 미션이 주어졌다.
모두 모인 첫 미팅에서 만난 기본 구성안은 아래와 같았다.
미리 각 가구별로 요청하는 사항들을 모두 정리해서 건축가에게 보냈고, 그 내용을 종합해 만든 그림이다.
네 가구가 공간을 완전히 균등하게 분할하기 위해서는 ㄱ자든 ㄴ자든 꺾어 네 가구 모두 두 개 층으로 구성하는 것이 낫겠지만, 그렇게 하려면 내부 계단도 너무 많아지고 공간활용도도 지나치게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2층과 3층은 독립적으로 한 가구씩 구성하고, 두 가구는 4층과 다락층을 나눠 복층 구조로 만들었다.
아이가 둘씩인 동생들에 비해 아이 하나인 우리집이 조금 적은 공간을 쓰는 것으로 합의하니 4층도 대략 답이 나왔다. 그렇게 대략적인 구성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4층과 다락층을 어떤 방식으로 나눌 것인지에 대한 2차 고민이 이어졌다.
아! 건축주들 만큼이나 건축가도 고민이 많았던 거다. 누구나 공원뷰(공원은 거의 북향에 가깝다)의 거실을 갖고 싶었고, 그렇다고 햇볕 잘 드는 남향도 놓치기 싫었다. 한 개 층을 한 가구가 쓰는 2, 3층은 상관이 없으나 4층과 다락은 쉽게 해결이 되지 않았다. 오죽하면 세 번째 대안처럼 4층과 다락 계단을 엇갈리게 구성하는 생각까지 해냈을까. 여러 밤을 지새우며 고민했을 건축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결론은? 나중에 평면도로 공개할 예정. 세 가지 구조 모두 아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그림을 수첩에, 핸드폰 메모에 그려댔는지 나중에 보니 별별 모양의 그림이 다 있었다. 제부 S도 가끔 그림을 그려보고서는 내게 보내 의견을 묻곤 했다.
아주 예전에 테트리스 게임을 처음 해봤던 때가 떠올랐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안 해본 오락을 대학생이 되어 뒤늦게야 빠져들었다. 그날 밤, 자려고 누워 눈을 감으니 길쭉하거나 ㄱ자로 꺾이거나 T자 모양을 한 막대기들이 눈앞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거다.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쯤에서 그 모양들을 돌려 어떻게든 끼워맞추려고 신경쓰느라 잠들기 어려웠다. 그게 사나흘 정도 지속되었던 것 같다.
공간을 나누는 일이 꼭 그때의 테트리스 게임 같다. 밤에 자려고 누워있으면 갑자기 끼워맞출 그림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럼 얼른 일어나 대충 그림을 그려보는 거다. 그걸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누가 뭐래도 그 과정 하나하나 내겐 참 소중한 기억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