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흔적 사람의 흔적

허물어진 아파트의 기억

by 쟁이

1998년 봄, 어렵게 서울에서 두 번째로 구한 집이었다. 출퇴근의 편의성을 생각해 지하철 2호선 주변을 오래 걸어 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집값이 비교적 싼 편이라고 전해 들은 뚝섬역, 성수역, 건대입구역 주변부터 샅샅이 뒤졌다. 충청도의 작은 시골서 나고 자란 내게 거기서 만난 서울은 여러모로 놀라웠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적나라하게 보이는 반지하 방의 쇠창살이 박힌 창, 작은 평수의 다가구 지하 단칸방에 고만고만한 꼬맹이 셋을 키우는 가족이 살고 있었다.


시골에서는 대부분 ‘우리집’에 살았다. 허름해도, 비록 내 땅이 아니어도 집은 본인 소유였다. 아버지 때부터 혹은 할아버지 때부터 조상 대대로 살아온 시골집. 지하에 방 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

가지고 있는 돈은 그 반지하 단칸방이 딱 맞았지만, 큼큼한 곰팡이 냄새를 피해 나는 도망치듯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철없는 나는 옥탑방에 살면 살았지 지하에는 못 살겠다 큰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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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또 걷고 구의역과 강변역 근처에서도 돈에 마땅한 집을 찾지 못했을 때 문득 지하철을 타고 오며 얼핏 보았던 그 낮고 낡은 아파트가 떠올랐다. 1970년대 도시 철거민과 무주택자를 위해 서울시가 지었다는 잠실시영아파트. 다시 지하철을 타고 강을 건너 성내역에서 내렸다. 외벽 칠을 안 한 지 십 년은 넘었는지 군데군데 금이 가고 칠이 벗겨진 5층짜리 아파트는 곧 재건축에 들어갈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런 곳이라면 조금 가격이 맞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역에서 가장 가까운 부동산에 들러 혹시 전셋집이 있는지 물었다.

비어있는 집이 많았다. 지하 단칸방보다 싼 값으로 방 두 개에 작은 거실과 주방이 딸린 열세 평짜리 아파트를 얻었다. 계약서에는 특별히 한 줄이 더 추가되었다. ‘재건축이 결정되면 바로 나가겠다’는 조건. 어차피 당장 살 집이 필요한 우리에게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재건축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지 십 년도 넘어 언제 재건축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소문도 함께 들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 년에 한 번은 옮겨야 하는 전셋집이라 별 상관도 없다.


빈 집을 지키던 개미떼와 바퀴벌레를 잡기 위해 눈을 질끈 감고 살충제를 뿌린 후 하루 종일 걸레질을 하고 나서 동생 친구들을 불러 4층까지 계단을 오르내리며 이삿짐을 날랐다. 그날 저녁 모여 앉아 고기를 구워 먹으며 “우리도 이제 서울 아파트에 산다!”고 자매들과 얼마나 깔깔거렸는지.

사는 동안 집주인과는 얼굴은커녕 전화 통화조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대신 이 아파트를 다섯 채쯤 소유하고 있는 의사라는 이야기만 집을 관리해주는 부동산 중개인에게 전해 들었을 뿐이다. 아파트 소유자들은 대부분 거기 살지 않았다. 근처 올림픽선수촌아파트나 강남에 살면서 같은 아파트를 몇 채씩 사놓았다고 했다. 아파트에 직접 살고 있는 소유자는 딱 한 사람 만났다. 옆집에 혼자 사는 옥신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이 아파트가 처음 지어졌을 때 입주해 이십 년 넘게 거기서 살고 있었다. 그동안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자녀들은 모두 장성해 집을 떠났다. 이웃들도 하나둘 이사가고 할머니만 덩그러니 남겨져 외로웠는데 시끌벅적 자매들이 이사 왔다며 좋아하셨다. 우리는 시골에서 음식을 싸 오면 나눠 먹었고, 할머니도 가끔 전이나 나물을 무쳐 현관문을 두드렸다.


낡고 좁은 집에서 우리는 날마다 추억을 쌓아갔다. 울적한 밤이면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 나가 맥주 한 캔을 마셨다. 서울에 볼일 있는 고향 친구들에게 우리집은 기꺼이 여관방이 되어주었다. 서울에 놀러 온 친구가 우리집에서 자고 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 아산병원에서 간호사 실습을 하는 동생 친구가 한 달간 머물고 떠나자 다른 동생의 친구가 들어와 한 달을 더 살았다. 제빵 공부를 하던 사촌동생도 한 달 넘게 우리집에서 살다 나갔다.

처음 세 자매가 살던 집에 대학 진학한 막내까지 합세해 네 자매가 살았던 잠실시영아파트 84동 404호. 거기서 우리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았고, 2002년 월드컵에 열광했다.

그리고 그즈음 바로 그날이 닥쳤다. 집주인들은 재건축 허가에 기뻐하고, 세입자들은 말없이 떠나야 하는 바로 그런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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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디로 가서 살아야 하나?” 걱정이 많던 옆집 옥신 할머니는 결국 우리보다 먼저 아파트를 떠났다. 다시 짓는 좋은 아파트에 들어가 살지 못하는 집주인도 많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이름만 걸어두고 세를 준 집주인들만 새로 지은 아파트에 들어가 살거나 시세차익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멀지 않은 삼전동에 월세를 얻어 나간 후 그 아파트가 허물어지는 과정을 2호선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며 지켜보았다. 콘크리트 건물이 모두 사라진 빈터를 보며 내가 5년 넘게 살았던 허공의 어느 지점을 가늠해 보았다.




요즘도 나는 가끔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이름이 바뀐 잠실나루역을 지날 때면, 그 시절 성내역과 낡은 아파트 안의 내 청춘을 떠올린다. 나의 보금자리가 있던 그 자리는 무슨 아파트 몇 동 몇 호일까, 거긴 지금 누가 살고 있을까. 스쳐 지나가는 그 짧은 순간에도 별별 생각들이 다 떠오른다.

이제 그곳에 우리들의 흔적은 다 사라지고 없지만 그때 모여 살던 그 추억들이 함께 집을 지을 결심을 도와주지는 않았을까. 넷에서 열다섯이 될 줄 꿈이나 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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