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낭의 기억, '블루맨션'

by 강고요

둘째 날 아침은 조금은 더 익숙한 기분으로 페낭을 맞이 했다. 호텔 조식을 간단히 챙겨 먹고 금방 거리로 나섰다. 날씨가 쨍해 그런지 눈앞 풍경이 한층 선명했다. 숍하우스와 현대식 건물이 어우리진 페낭 거리는 다시 봐도 매력적이었고, 현대식 건물들도 가만히 보면 곳곳에 독특한 구석이 있어 재밌었다.



둘째 날 첫 번째 목적지는 굿모닝커피를 위한 앨리라는 이름의 작은 개인 카페. 문 앞에서 마주친 사장님이 문 열기 10분 전이라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 했다. 마침 앞에 큰 사원이 있어 잠시 둘러봤는데, 아침부터 불 피우며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무척 정성스러워보였다.

피워지는 수많은 소원들


잠시 속세에서 벗어났다 다시 카페 입구에 섰다. 예쁜 입간판과 플루메리아라는 귀여운 하와이꽃이 반긴다. 풍성한 나무 사이로 겨우 보이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딘가 익숙한 느낌. 우리나라로 치면 연남동 어딘가의 소소하지만 맛이 보장된 살짝 힙한 카페 같았달까.

카페 앞에 핀 귀여운 하와이꽃
커다랗고 풍성한 나무 틈 사이 카페 입구


그리고 입구 벤치에 한가롭게 누워 해를 즐기는 고양이 한 마리까지.


우린 라테와 플렛화이트를 한 잔씩 시켰다. 기다리는 동안 사장님이 커피꽃으로 만든 차를 한 잔씩 내어주셨다. 커피꽃 차는 처음이라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맛있게 마셨다. 커피는 라테는 연했고 플랫화이트가 딱 입맛에 맞았다.

부랴부랴 페낭에 도착해 긴 하루를 끝내고 푹 잔 다음 날 아침. 한결 한가로운 마음으로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왔다. 나오면서는 원두도 한 봉지 샀는데, 커피 한 잔 쿠폰을 따로 챙겨주셨다. 내일 모닝커피도 자연스럽게 예약된 셈. (원두는 한국에 돌아와 내려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라떼와 커피차, 그리고 원두 한 봉지


다음으로 간 곳은 블루맨션이란 별명을 가진 청팟제맨션(Cheong Fatt Tze Mansion)이다. 투어로만 내부를 볼 수 있는 데다 인기도 많아 미리 웹사이트에서 예약을 해두는 게 좋다.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이 모여들었다.

청팟제(1840~1916)는 19세기말 동남아시아에서 무역, 금융, 광업 등 여러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중국인이다. 청팟제맨션은 그의 주거지이자 사무실로 만들어졌던 건물.

청팟제맨션도 앞 글에서 언급한 말레이시아의 다문화 정체성이 반영돼 있다. 목재 조각 장식과 자개 박힌 흑단 가구 등은 중국, 주철 기둥과 난간 등은 유럽, 그 외 아르누보 스타일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말레이 전통 요소들, 그리고 풍수지리 사상까지. 다양한 특색이 동시에 녹아있다. 그렇다고 정신없게 느껴지거나 이물감이 들지는 않았다.

청팟제 입구 공간
입구 공간의 또 다른 면

투어 설명 가운데 건축에 들어간 미신적 요소 부분도 재밌었다. 가령 돈이 잘 들어오도록 동전 모양으로 담벼락 창을 만들었다던가, 중정의 수로 시설을 돈이 새나가지 않도록 설계했다는 등이다. 이미 돈이 많은데도 미신적 요소까지 녹여 설계했다는 사실이 악착같이 느껴지면서도 그런 마음가짐 정도는 돼야 부자가 되나, 싶기도 했다.


청팟제맨션이 블루맨션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인디고 블루 페인트로 칠해진 외관 때문이다. 인디고는 옛날부터 비싼 재료로 유명한 푸른색 안료인데, 중국 건축에서도 번영과 행운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한다. 또 열대 기후에서 건물을 보호하는 데도 효과적이었다고.


블루맨션은 38개 방, 다섯 개의 안뜰, 일곱 개의 계단, 220개의 창문 등으로 구성된 그야말로 대저택이며 당시 최신 기술과 장인 정신이 집약된 건물이다.

청팟제 사망 후에는 청팟제가 가장 사랑했다는 일곱 번째 부인, 탄 타이 란(Tan Tay Lan)을(당시 중국 이민자 사회에선 일부다처제가 흔했다 한다) 중심으로 후손들이 관리했다고 하나 일본 점령기 등 20세기 중반 경제적 어려움과 전쟁 등으로 1980년대까지 방치됐다가 90년대 페낭 보존 운동가들과 후손들의 노력으로 복원 작업을 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현재는 호텔로 운영되는 부분과 투어로 개방된 부분, 그리고 '인디고'라는 레스토랑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는 투어로 개방된 부분만 가이드 설명에 따라 관람한 셈이다.

관람하다 보니 많은 자본이 들어간 건물이긴 하지만 지금 시대와는 다른, ‘건물을 짓는다’는 것에 대한 정성스러운 마음이 계단 하나, 창문 하나에 녹아있는 듯했다. 때문에 숍하우스와는 또 다르게 다문화 정체성이 매력적으로 녹아 있는 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엔 숙소도 한번 머물러보고 싶었다. 대신 그날은 맨션 안에 있는 레스토랑 인디고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잖은 분위기에서 적당한 코스 요리를 잘 즐겼다.

청팟제 내부에 있는 레스토랑 '인디고'

배불리 점심을 즐기고, 우아한 청팟제에서 나온 우리는 다음 장소를 향해 뜨거운 페낭 거리로 다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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