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페낭의 매력은 공항에서 숙소 가는 길에 이미 알아챘다. 택시 창밖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들 때문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숍하우스(shophouse)'는 페낭 갈 때 알아야 할 키워드 1순위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숍하우스는 쉽게 말하자면 주상복합인데, 상업과 거주를 같이 한다는 개념 말고는 우리가 아는 주상복합과 다르다. 높이가 일단 2, 3층으로 낮고, 집 구조도 뒤로 길게 뻗은 기다란 직사각형 형태다.
페낭 조지타운 일부 지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숍하우스 때문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건 숍하우스가 역사, 문화를 담고 있다는 뜻. 궁금한 마음에 숍하우스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찾아봤다.
페낭 섬이 18세기 영국 동인도 회사의 무역 기지로 설립됐고 이후 조지타운 지역은 무역 중심지로 번성했다. 그에 따라 중국, 인도, 유럽 상인들이 모여들었고 상업과 주거가 결합된 형태의 숍하우스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숍하우스는 시간이 흐르면서 형태가 조금씩 바뀌었다. 중국 영향으로 중국식 타일 등이 쓰이기도 했고, 영국 지배 하에선 유럽식 아치 기둥 형태가 입혀졌다. 20세기 초에는 현대 기술과 디자인이 들어오면서 화려한 색과 패턴이 쓰이는 등 또 다른 특징이 이어졌다. 그 외 시기별로 소소한 요소들(창문의 모양, 층 비율 등)도 영향 받은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다.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숍하우스들이 한데 모여 페낭의 독특한 건축적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무더운 더위를 피하려는 지혜도 녹아있다. 벽을 두꺼운 벽돌로 짓고 회반죽을 칠해 태양 빛을 막았고, 테라코타로 바닥을 처리해 시원한 습기가 퍼지게 했다. 또, 창은 비늘 모양으로 만들어 햇빛은 막고 바람은 들어오도록 했다.
내부 구조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변한 건데, 무역으로 수요가 증가하면서 안쪽 공간이 점차 길어진 거라 한다. 실제로 현재 책방 및 소품 가게로 운영되던 한 숍하우스에 들어갔는데 안쪽 공간이 긴 복도처럼 끝없이 이어져 한참을 들어갔다 나왔다.
한편, 숍하우스들이 나란히 있는 길 앞에는 아치형 지붕이 있는 인도를 자주 볼 수 있다. 바로 '파이브풋웨이즈(Five-Foot Ways)'라는 별도 명칭까지 있는 공간. 파이브풋은 약 1.5미터 정도로, 직역하면 '1.5미터 길' 쯤이다. 너무 단순하게 지은 이름이 아닌가 싶지만 왠지 그래서 더 좋았다.
파이브풋웨이즈는 사람들이 해나 비를 피해 걸으며 상점을 바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건데, 조금이라도 장사를 잘해보겠다는 마음이 공간으로 구현된 것 같아 재밌었다. 덕분에 우리도 뜨거운 해를 종종 피했고, 여행 중 어느 날엔, 갑자기 비가 내리자 친구가 이 파이브풋웨이즈로 얼른 달려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숍하우스의 역사에도 녹아있지만 페낭은 다문화가 섞여 발달했고 여전히 그 잔재가 짙게 남은 명백한 다민족 사회다. 첫날, 우리가 중국 음식인 딤섬을 먹었던 것 역시 중국계의 영향이 남은 흔적이었다. 이어질 둘째, 셋째 날 여행지들도 다문화 민족의 특성이 들어있다.
페낭은 중국계 말레이시아 인이 가장 큰 인구를 차지하고, 그다음 말레이계 원주민, 그리고 인도계, 그 외 외국인 등의 순서로 분포돼 있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숍하우스는 단순히 독특한 건물이 아닌 말레이시아의 역사를 담고 있는 유물이라는 게 납득된다. 문득 동남아 같다가도 또 유럽 같은 풍경은 숍하우스가 밀집해 있는 구역에서만 볼 수 있는 정말 독특한 분위기라 생각한다. 아마 날씨만 너무 덥지 않았다면(욕심내서, 가을 날씨 같았다면) 진작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유명 도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쁘다, 하고 감탄하고 돌아가면 그만인 여행이지만 페낭의 역사적 배경을 알고 바라본 숍하우스들은 오랜 역사화를 바라보듯 조금은 진지한 마음으로 다가가게 했다.
때문에 혹시 페낭을 간다면, 그리고 도시를 좀 더 입체적으로 느끼고 싶다면 숍하우스를 비롯해 말레이시아의 다인종 문화 배경을 한 번쯤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