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은 그냥 한다.
2년 전 이맘때에 둘째가 수학을 잘하는 편이라는 글을 한 편 썼다.
https://brunch.co.kr/@honeylemonspoon/14
그로부터 반 년 만에, 수학을 잘하지만 공부를 하기는 싫어하는 아들의 동기부여에 대해 고민하는 글을 썼다.
https://brunch.co.kr/@honeylemonspoon/37
그 때는 이리저리 달래고 얼러 봤지만, 하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수학공부를 더 시킬 수는 없었다. 4학년 2학기가 시작할 무렵 아이는 (당시 다니던 학교의) 수학우수반을 그만두고 나왔다. 담당 선생님은 싫어한다면 그만두는 것도 용기라고 했지만 과연 진심인지 입에 발린 말이었는지 알 수 없다. 한국에 있는 엄마는 어떻게 애가 투정 좀 한다고 그걸 그리 쉽게 받아줄(=포기할) 수 있느냐며 혀를 끌끌 찼다.
그 후로 학교 숙제 외에는 다른 공부를 일체 시키지 않았다. 원래도 학원은 안 다니는 애였는데 집에서 아무런 문제집도 더 풀리지 않았다. 미국으로 돌아와 5학년을 시작했고 어느새 2학기가 되었다. 이렇게 1년쯤 지나니 아이는 학교 수학이 쉽고 지루할 뿐 아니라, 뭔가 본인의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뭔가 이 이상의 도전을 원한다는 힌트를 흘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너무 어렵고 힘든 건 하기 싫고.
처음 생각으로는 아이가 더 지루함을 느끼고 더 절실히 도전을 원하도록 5학년 끝낼 때까지 놔두고 싶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이 급해 그렇게 오랫동안 시간을 끌지는 못했다. 수학우수반을 그만둔 지 딱 1년이 지난 5학년 2학기에, 나는 아이에게 새로운 수학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Beast Academy라고 수학에 감각 있는 미국 초등학생들이 독학용으로 많이 쓰는 교재다. 각 과정마다 만화로 된 가이드북과 문제집이 세트로 있어, 만화를 통해 개념을 접하고 문제풀이를 통해 학습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내용은 초등학교 과정이지만 문제의 난이도는 심화과정이기 때문에 실제 수준은 초등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네가 수학을 잘하는 아이가 되고 싶으면, 월화수목금토일 매일 30분만 이걸 하라고 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가 잠자리에 누워 슬쩍 어려움을 토로한다.
아들: 엄마, 그런데 (매일 30분씩 수학문제집을 풀) 모티베이션이 잘 안생겨요.
나: 그런 거는 모티베이션으로 하는 거 아니야. 그냥 하는 거야.
아들: ????
나: 너 엄마가 매일 아침 깨우고 점심 만들어서 학교 데려다주는 거 모티베이션으로 하는 것 같니?
아들: 아니, 그냥 해야 되니까....
아무 생각 없이 대화를 나누다가 아! 하는 깨달음이 왔다. 동기부여를 쫓는 게 아니었다. 아이의 동기부여를 고민하는 건 의미없었다. 아이의 몸과 마음이 자라면, 해야 할 일을 그냥 하는 파워가 함께 자라는 것이었다. 동기부여에 상관없이 자기가 하겠다고 결정한 일은 그냥 하는 힘이라니, 이건 수퍼파워가 아닌가!
그래도 아직 어린 아이에게 부담을 줄까 봐 덧붙였다
안했다 빼먹었다 싶었을 때는 그냥 다시 시작하면 돼. 안한 부분 따라잡겠다고 두 배로 하진 마라.
용케 내 말을 알아들은 아이는 다시 불평없이 Beast Academy를 풀고 있다. 어쩌다가 안 하는 날도 있는데 하루이틀 안했다 싶으면 다시 책을 편다. 하면 잘 하는 아이인데 왜 하기 싫어하는 걸까를 고민했던 게 1년 반 전이다. 그새 답을 찾은 건 아니지만, 한 발짝 앞으로 더 나아갔다는 건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