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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스푼 Jul 02. 2024

<영리한 아이가 위험하다> 3년 후

평범한 아이가 되었다.

3년 전에 <영리한 아이가 위험하다>라는 책을 읽고 리뷰를 썼다.

https://brunch.co.kr/@honeylemonspoon/36


이 책은 우리집 둘째 때문에 읽었다. 그 때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똑똑한 아이인데 쉽게 지루해했고, 딱히 동기부여가 안 되어 학교 공부도 독서도 피아노도 운동도 뭐 하나 열심히 하는 게 없었다. 아니다, 시키면 다 잘 하는데 알아서 하게 놔두면 어느 이상 열심히 하지 않으려 했다. 뭐든지 배우기 시작하면 선생님들이 "오! 이 아이는 재능있어요!" 그러는데 본인은 그럴수록 부담스러운지 뒷걸음질을 쳤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그 흔한,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게을리하는 아이가 되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에 이 책을 읽었다. 7개 장 중에 4-5개 장에 우리 아이가 해당된다고 느꼈으니, 아마 잘 맞는 책이었을 것이다.


책은 잘 읽었는데, 그리하여 내가 어떻게 아이를 다르게 양육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나서 이 책을 다시 읽어 봤다.


아들은 이제 6학년을 마쳤다. 학교 공부는 1년 내내 전과목 A+를 유지했다. 더 이상 아이가 머리가 좋은데 노력을 게을리하는 게 아닌가 걱정하지 않는다. 모든 과목을 잘하느라 아이가 얼마나 신경을 많이 썼는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얘가 혹시 요령이 떨어지는데 무식하게 노력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운동은 여전히 잘하지 않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한 주짓수와 테니스를 아직까지 하고 있으니 끈기는 이만하면 됐다. 그 때 하던 피아노는 그만뒀고, 6학년부터 학교 밴드에서 색소폰을 불고 있다. 고등학교까지 계속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최소한 중학교 3년 (6-8학년) 동안은 계속할 예정이다.


그 때 책을 읽으면서 걱정했던 우리 아이의 완벽주의, 예민함, 조금 부족한 사회성, 동기부여 안됨, 즐길 줄 모르는 것 등은 많이 나아졌다. 우리집 첫째가 이와는 반대였어서 - 완벽주의 없고 예민하지 않고 사회적 감각 뛰어나고 즐거움을 찾는 데는 선수였어서 - 어쩌면 둘째가 훨씬 처지는 것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둘째의 사회적, 정서적 발달 수준이 훌쩍 올라왔다. 아직 누나만큼은 아닌데, 누나가 그런 면에서 이미 완성형이었다면 둘째는 제 나이의 평균 수준은 되지 않을까?


이 책을 다시 읽으니, 이젠 우리 아이가 영리해서 위험한 아이가 아니라 그리 대단히 영리하지도 않고 대신 딱히 위험한 것도 없는, 그냥 그런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평범한 아이가 되었다. 부모의 앞서가는 기대는 조용히 깨부수면서, 딱히 어느 분야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는 없이, 조금은 쿨하지 않게 학교 성적에 목매달면서, 게임타임 때문에 엄마랑 숨바꼭질하면서, 친구들이랑 모여 놀고 싶어서 몸살내는, 영리하지도 위험하지도 않은 보통 아이가 되었다.


그런데 내 마음은 더 편하다.


내가 꼭 계발해 줘야 하는 어떤 잠재력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보통 아이. 내가 약점을 고쳐줘야 하는 것도 강점을 키워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는 밥 주고 일상생활 유지해 주고 예뻐해 주며 후방기지 노릇만 제대로 하면 스스로 자라는 아이.


첫째를 보니 13살이 넘어가면 아이들이 엄마 품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얼마 남지 않았다. 큰 성과나 성취의 싹은 틔우지 않았지만 이 아이는 그동안 꾸준하고 성실함을 보여주었다. 아직 내 품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귀엽다, 잘했다, 잘하고 있다 라는 칭찬만 해주어야겠다.


"아이들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서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책 읽어주는 것, 피아노 레슨을 시키는 것, 축구 클럽에 보내는 것, 아이들의 숙제를 검사하거나 학원/과외를 붙이는 것, 아이들을 특수학교에 보내는 것, 전부 다 아니다. 물론 각각의 활동은 상황에 따라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아이들의 성공 여부는 부모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요인의 영향을 받아 결정된다. 아이들의 친구관계, 길잡이가 되는 멘토, 개인적인 선택, 그리고 운 같은 것들. 그래서 이 책은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아이들이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부모가 아이들의 대처능력 계발에 힘쓸 것을 강조한다." <Smart Parenting for Smart Kids> (p.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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