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잠시 가만히 서서
책 아주머니가
저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창밖의 눈보라처럼
막 소용돌이친다
말만 용감한 게 아닌 것 같다.
말에 탄 사람도 용감하다.
책 아주머니가
이런 어려움도 무릅쓰고
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갑자기 알고 싶다.
칼은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부족한 경제 공황시절의 가난한 농장에 사는 아이다. 그는 책 속에 코를 처박고 있는 누나 라크가 마땅치 않다. 자신은 아빠를 도와 쟁기질도 하고 길 잃은 양도 데려오며 저녁에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도 어렵지 않게 한다. 꿈쩍도 않고 책 나부랭이나 보는 라크는 수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학교를 못 가기 때문에 학교 놀이를 하고 학교를 직접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칼은 관심 없다.
그곳에 심지어 바지를 입은 여자가 말을 타고 책을 애써 짊어지고 온다. 집으로 온 아주머니는 아버지가 물물교환으로 건넨 열매 한 주머니도 받지 않고 책들은 공기처럼 공짜라고 말하고 돌아간다. 책 아주머니는 비가 와도, 안개가 끼거나 눈보라가 치는 날에도 어김없이 책을 교환해 온다. 칼은 아주머니를 태우고 온 말이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무도 찾아오지 못할 만큼 눈이 쌓인 어느 날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책 아주머니는 칼의 가족이 감기가 걸리지 않도록 창문 틈으로 책을 건네고 돌아간다. 그 모습을 따뜻한 집안에서 바라보는 칼은 이제 말에 탄 사람도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 궁금해진다. 칼은 꽁꽁 싸매고 눈 속을 헤치고 가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도 본다.
창문에 비친 칼의 표정은 난감해 보인다. 입꼬리가 축 쳐져있다. 이 그림책의 그림은 귀엽거나 따뜻하다기보다는 굵은 붓질과 거친 선으로 사실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디테일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책의 마지막까지 책 아주머니의 얼굴 표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흐릿하게 처리되어 있거나 뒷모습뿐이다. 가족들이나 칼의 표정은 분명하게 드러나있다. 책 읽는 라크의 모습을 바라보는 불만 가득한 표정의 칼은 마침내 책을 가슴에 안고 활짝 웃는 모습으로 바뀐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그림은 이 장면이다.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으로 말을 타고 사라지는 아주머니를 보고 있는 칼은 동시에 창에 비치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같다. 칼은 '갑자기' 궁금한 게 생긴다.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살다 보면 우린 궁금해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사람이 궁금해지면 결혼까지 이어진다. 그 순간에 자신을 바로 바라봐야 한다. 궁금해지는 대상만 바라봐서는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비로소 자신을 바라보게 된 칼처럼 우린 눈으로 가득 찬 창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고 또 봐야 한다. 그리고 눈을 헤치고 가는 말을 탄 아주머니의 모습도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
난 무엇을 보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한다. 따뜻한 창 안에 함께 있는 가족들만 바라보며 살아도, 창 밖에 보이는 모습만 바라봐도 행복하지 않다. 창에 비친 주름지고 축 처진 입꼬리의 자신을 골똘히 보고 동시에 용감한 말과 아주머니를 보며 살고 싶다. 그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생각도 놓치지 않도록 집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거울을 보면 안 된다. 넓은 창으로 보이는 세상과 자신을 이렇게 기록하면서 소용돌이치는 생각도 꽁꽁 붙잡아본다. 그리고 책을 나르고 싶다. 눈이 와도 비가 와도 어떤 어려움이 생겨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창으로 나를 바라볼 누군가를 위해서.
이 책은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실화다. 경제공황이 이어지던 시대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학교나 도서관이 없는 애팔래치아산맥 켄터키 지방에 책을 보내주는 정책을 마련한다. '말을 타고 책을 나르는 사서들(Pack Horse Librarians)'은 바로 책 아주머니다. 공교육에 쏟아붓던 독서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면서 자꾸 무릎이 꺾이는 좌절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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