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ca Nov 25. 2021

애플, 고마워

내가 찍은 인생 사진



우리 집에 강아지 인형이 살았더랬다.

큰아이 낳고 기르면서 아들이라고 선물을 받아도 로봇이나 자동차 선물을 주로 받았다. 칼이나 총선물은 한사코 거절했고 우리 부부도 사준적이 없는데 아이도 바라는 건 레미콘 같은 자동차 종류나 로봇 시리즈였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키우면서 남자아이의 특징이 정해지는 게 아니라 타고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자아이답게 남자아이스럽게 키우고 싶지 않아 옷도 여자아이 코너에서 보라색 패딩을 사주고 네 살 아이를 음악을 듣고 느끼며 키우고 싶어 야마하를 시작해 6년 이상 배우도록 했다.


큰아이 세 살쯤 어느 날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남자아이도 인형이 옆에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카트에 조금 커다란 강아지 인형을 넣어 왔다. 이름을 지어주자고 하고는 단순히 좋아하는 사과의 영어 이름을 알면 좋겠다는 생각에 애플이라고 지어줬다. 아이는 가끔 같이 앉아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기도 하고 몇 번 쓰다듬긴 했지만 관심을 크게 갖지는 않았다.


그런데 네 살 터울의 동생이 생겼다. 남편은 끝까지 딸일 거라고 태명도 아름이라고 지으며 기대했지만 역시 아들이었다. 늦은 나이의 엄마 때문이었는지 8개월 2주 만에 태어난 둘째는 인큐베이터에 며칠 있었고 난 수술 후 회복이 더뎌서 낳고 이틀이 지나 아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벌써 이틀 만에 신생아티를 벗고 하얗고 조그만 아가를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다.


그 아이는 형이 이미 가지고 있는 온갖 장난감들 속에서 자랐다. 아이가 겨우 기어 다닐 때쯤 자는 아이 옆에 강아지 인형을 슬쩍 갖다 놓았다. 자꾸 형을 돌봐야 하는 시간이 생겨 혼자 자다 깨면 울곤 하는 아이가 안쓰러워서였다. 그렇게 곁에 두다 보니 저절로 아이가 인형에 관심을 보이고 점점 애착을 갖기 시작했다. 밥을 떠먹기 시작할 즈음에는 자기 숟가락을 인형 입인지 코인지 모를 곳에 넣어주려고 했고 자기 모자를 씌워주고 끌어안기도 했다. 엄마가 옆에 있어도 잘 때면 늘 필요한 게 애플이었고 여행지나 친정을 가도 커다란 아이를 들고 다녔다. 심지어 제주도에도 팔에 끌어안고 비행기를 태워 간 적이 있었다. 1,2주 만에 세탁을 할 때도 아이가 잠들 때 빨리했고 혹여 깨서 세탁기 속에 있을 땐 세탁기 앞에서 애플 이름을 부르며 슬픈 표정으로 나올 때까지 있었다.


그런데 둘째가 여섯 살 무렵 감기가 들면 코감기가 낫지 않고 코피가 날정도로 오래가서 동네병원을 오래 다녀도 소용이 없었다. 을지병원에 유명하시다는 소아과 의사 선생님께 아이를 데려가서 알레르기 검사를 했는데 진드기 알레르기가 나왔다. 선생님께 늘 인형을 끌어안고 잔다고 했더니 아무리 빨아도 진드기가 없어지진 않는다고 하셨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여쭤보니 인형을 비닐에 싸서 냉동실에 넣었다 빨면 진드기가 없어진다 하셨다. 그런데 그러기엔 애플이 너무 컸다. 고민스러웠던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물론 안 그래도 6년 동안 지나치게 자주 빨아서 봉제된 곳 틈틈이 벌어져 수시로 바느질을 해야 했지만 아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니 방법이 없었다. 그냥 얘기 없이 버리면 아이가 너무 충격을 받을 것 같아서 진지하게 얘기했다. 애플이 너무 오랫동안 같이 있어서 자꾸 인형 속 안 좋은 것도 나오고 이제는 보내줘야 할 것 같다. 대신 집에 있는 호랑이 인형 호돌이 호순이 중에서 네 맘에 드는 인형이랑 잠을 자면 좋겠다 했더니 아이가 잠시 생각하고 알겠다고 했다. 병원 가서 힘들게 알레르기 검사도 하고 의사 선생님과 얘기한 걸 기억하는 것 같았다.


애플은 종량제 봉투 속에 버려졌다. 아이가 유치원 갔을 때 버렸지만 내 마음도 좋지 않았다. 그렇게 애플은 우리 집을 떠났고 그 이후 지금까지 둘째는 갈색 호돌이 말고 흰색 호순이랑 꼭 잠자리에 든다. 인형도 훨씬 작고 애플이 아니니 어릴 때보다는 덜 껴안고 있어서 알레르기는 없어졌다.
그런데 지금도 저렇게 애플을 바라보고 있는 행복한 찬이 사진을 볼 때면 같이 아이를 키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바쁜 손과 품을 대신해 사랑을 주고 안정감을 준 애플 덕분에 둘째는 사랑이 많고 배려가 깊은 아이로 자라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애플에게 얘기해 주고 싶다
애플ᆢ어딘가 잘 있니ᆢᆢ그렇게 보내서 미안해ᆢ늘 찬이 옆에서 밤을 지켜주고 따뜻한 친구가 되어줘서 내게 많은 도움이 됐어.
찬인 참 잘 있단다. 행복이 많은 아이로 자라고 있어ᆢ
네 덕분이야. 너에게 사랑을 배우고 웃음을 배웠나 봐.
고맙다. 늘 잊지 않을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