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ca Dec 03. 2021

암행어사는 누구?

슬기로운 학교생활

작은 아이 선생님께서 어제 문자를 보내셨다. 문자 알림 표시를 보고는 확진자가 있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담임선생님의 연락이란 늘 그렇다. 문자를 열어서 읽었다.


"찬이 어머니~

다음 메시지를 찬이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00찬 학생을 오늘부터 12월 9일까지 4학년 0반 암행어사로 임명합니다. 친구들에게 또는 학급을 위해 선행하는 학생을 찾아 매일 오후 4시 전까지 담임 선생님께 메시지로 알려주세요. 모든 활동은 비밀로 진행된다는 점 기억해 주세요.^^

지금부터~

활동 시작~!"


메시지를 받고 빙그레 웃음이 났다. 아이에게 전달해주니 대뜸 그럴 줄 알았다고 했다. 암행어사를 이번 주부터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하겠다고 말씀하시며 선생님께서 자신을 쳐다보셨는데 지목하실 거라고 느꼈단다.

평소에도 매일 아이들 칭찬거리를 찾으시고 칭찬 10개를 모으면 부모님께 메시지를 보내주시는데, 또 새롭게 칭찬에 관한 콘텐츠를 만드시는 선생님도 존경스러웠다. 엄하셨던 작년 선생님과 달리 온라인으로 수업할 때도 꼼꼼히 체크하시고 늘 다정한 말투의 선생님을 아이도 참 좋아한다.

오늘 오후 학교를 마친 아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임 00, 이 00 자리 배치 도와줌

김 00, 태권무 모르는 친구한테 알려줌

이 문자를 선생님께 보내주세요."

곧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고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답장이 왔다.

암행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누군가 자신을 지켜본다는 건 썩 좋은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서 좋은 점을 찾도록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긍정적인 면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둘째에게 사소한 것이라도 발견하고 좀 더 많은 아이들을 찾아보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주었다. 굉장히 힘들겠지만 그렇게 해 보겠다고 했다.


작은 아이는 8시 40분까지 등교지만 10분 일찍 간다. 9월에 부모님이 출근하시는 같은 반 친구가 학교에 일찍 오니 선생님께서 아침 청소를 맡아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다고 한다. 일찍 와서 심심하다고 하니 칭찬 스티커도 받고 뭔가 할 일을 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 친구가 좋다고 했는데 차니도 일찍 와서 청소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는 좋다고 하셨고 그 이후 아이는 30분까지 가려고 분주한 아침을 보낸다.


그런데 아침마다 일어나는 게 힘든 아이를 보니 남편 마음이 좋지 않았나 보다. 며칠 전 얘기를 나누다가 담임선생님이 아침 청소를 바꿔주시면 좋겠다며 계속 청소하느라고 일찍 가는 게 안쓰럽다고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자진해서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학기 내내 하고 있는 것이 걱정스러운 듯했다.


아이에게 몇 번을 물어봤지만 아이는 재밌다고 했다. 두 달은 복도 청소를 했는데 이젠 창틀 청소를 하고 있었다. 자기 키가 조금만 더 컸으면 더 깨끗이 닦을 수 있을 텐데 지금은 까치발을 들고 닦아야 한다고 아쉬워하는 걸 보며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이는 봉사라는 개념을 갖지 않지만 기특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아침잠을 조금 포기하고 시간을 나누고 작은 행동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는 것 만으로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이 자신을 채우는 10분이라고 믿는다.


아침청소도 암행어사도 아이의 초등 4학년을 가득 채우는 슬기로운 학교생활이다.  늘 즐겁게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가 매일매일 기다려진다.

이전 01화 애플, 고마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