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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상 Feb 23. 2021

큰 소리가 들린다

큰 소리가 들린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 소리가 나를 향한 것이 아님에도 순간 움츠러든다. 싫다. 듣고 싶지 않다. 피하고 싶다. 이 상황 속에서 벗어나고 싶다. 마음속으로 딴생각을 끊임없이 한다. 오늘 아침에도 명상을 하며 마음을 비워냈다 생각했는데 잠깐의 큰 소리에도 여전히 움찔거린다. 진공 상태에 빠지고 싶다. 그게 아니라면 철저히 외부의 자극과 나를 분리해 마주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은 평온해 보인다. 아니면 그들도 마음속으로는 움찔거리며 겉으로 아닌 척하는 걸까. 나만 너무 쫄보처럼 보일까 싶어 이어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잠깐 동안의 안식을 얻는다. 한 곡의 노래가 끝나고 다음 노래로 이어지기 전의 정적은 다시금 세상의 소리를 내게 들려준다. 빨리 전주가 시작되기를 마음속으로 채근한다. 발을 동동 구른다 해서 달라질 게 없다지만 그래도 조급함을 표현하는 편이 더 낫다.


큰 소리를 듣고 놀란 몇 가지 장면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글로 옮기기엔 망설여진다. 힘듦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다 믿었다. 내가 겪은 일들은 다른 커다란 일에 비하면 별게 아니라며, 괜찮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그때는 그렇게 하면 괜찮아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내가 받은 충격과 트라우마를 다른 사람들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가끔씩 이렇게 괴롭히는 걸 보면 말이다.


늘 생글거리며 웃다가도 입을 꾹 다물었던 건 나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차피 이 시간은 잠시일 테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눈을 감거나 속으로 숫자를 세다 지쳐 잠들고 일어나면 끝이 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남들에게는 별거 아닌 일이었을지라도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상황들이 잘 기억이 나질 않는 건 내가 그 기억들을 분쇄기에 갈아 아주 작은 조각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씩.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불쑥 찾아올 때마다 정체 모를 기억들이 나를 지배한다. 소리로만 기억이 난다. 눈은 분명 세게 감았을 테니까. 모든 장면은 검은색으로 가득 차 있다. 큰 소리. 날이 선 소리. 둔탁하게 부딪치는 소리. 문이 닫히는 소리. 그리고 쿵쾅거리는 내 심장 소리. 하고 싶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걸 다시 삼켜낸 채로 귀를 틀어막았다. 잠에서 깨어나면 끝일 줄 알았지만 무거워진 공기는 숨을 막히게 했다.


누굴 탓하고 싶지 않았다. 다들 잘해보려고 그런 걸 테니까. 혹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 그렇게 혼자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거울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거울 속 비치는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래, 저 사람의 큰소리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지. 나와는 별개의 일이라는 걸 알아들을 수 있도록 눈으로 이야기한다. 이건 너 때문이 아니야. 이건 너의 그 기억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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