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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상 Mar 10. 2021

06. 그 어느 때보다 부대로 돌아가기 싫었다

그렇게 오디션 전날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휴가를 올렸다. 행보관님은 끝까지 사인을 하지 않았고 휴가신고를 위해 마주한 순간까지 나를 모르는 사람 취급했다. 그렇게 받아주지 않는 경례를 하고 부대를 나섰다. 어쨌든 오디션은 봐야 했으니까. 단, 다시 돌아왔을 때의 뒷감당은 미래의 내게 미뤄두기로 한다. 그건 지금 고민할 부분이 아니었다. 지금은 당장 내일 치를 오디션에 집중해야 했다.


수도방위사령부에 모인 빡빡이 군인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지원자 수가 많은 만큼 며칠에 걸쳐 진행된 대규모 공개 오디션이었다. 첫 번째 군 합작 뮤지컬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스케일이 커진 탓이었다. 긴장이 되었다. 여기서 이 기회를 놓치고 다시 부대로 돌아갔을 때 내게 주어질 시련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까짓 쯤이야 어차피 국방부의 시계는 돌아가니 버티면 된다. 그러나, 국립극장에 서는 이 기회를 놓치는 게 무서웠다.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게 증명될까 그게 두려웠다. 정말로 대학 입시가 그저 운이었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었다. 


강당에 모여 다 같이 노래와 안무를 배웠다. 그래도 조금은 아는 노래였으면 좋겠다 생각을 했는데, 다행히 예전에 들어 본 뮤지컬 넘버였다. 조금 안도했다. 그다음 문제는 안무였다. 그래도 군기 든 모습이 낫지 않을까 싶어 빳빳한 A급 군복에 전투화까지 신고 갔는데 춤을 추기에는 정말 불편한 복장이었다. 절반 정도 되는 지원자들이 나와 같은 생각으로 군복을 입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난이도 있는 안무였다. 게다가 처음 보는 동작들을 단기간에 외워서 선보여야 해서 부담감은 배가 되었다. 아직도 생각만 하면 미안한 게 하나 있는데 엎드려서 발을 뒤로 차는 동작을 연습하다 뒤에 있는 지원자의 까까머리를 군홧발로 걷어차고 말았다. 바로 사과를 하는데 앞에서 다음 안무 동작 진도를 나가고 있어 서로 표정으로만 감정을 전달하고 연습하기 바빴다. 지금 아프고 미안하고 이런 것들보다는 지나가는 안무를 놓치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었다.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지원자들을 감당할 수 없었는지 도시락을 배분받았다. 다들 먹는 둥 마는 둥 서로에게 물으며 배웠다. 아무래도 전국 각지에서 예술 전공생들이 모여서 그런지 서로 알음알음 아는 사이 같아 보이더라. 역시 이 바닥은 좁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이 연습하는 걸 보며 오후에 있을 오디션을 준비했다. 또 누군가의 머리를 차지 않기 위해 주위를 잘 살폈다. 


내 차례가 되었다. 마치 포로가 된 것처럼 일렬로 나란히 줄 지어 섰다. 열 명씩 들어가 다섯 명씩 노래와 춤을 번갈아 했다. 쟁반노래방처럼 가리키는 사람이 그 파트를 부르는 식이었다. 자신이 있는 사람들은 고음 파트를 부르길 원했고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저음 파트로 지목받기를 바랐다. 바로 앞의 지원자부터 후렴구가 시작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잘 몰랐는데 앞사람이 거의 프로처럼 불러버리더라. 순간적으로 망했다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죽지 않고 잘 끝냈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다 같이 춤을 추고 짧은 인터뷰가 이어졌다. 주로 군대 오기 전의 경력 관련 질문이었다. 절반 정도는 쟁쟁한 학교에서 연극영화과를 전공한 학생이었고 절반은 현업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들이었다. 와. 이거 판이 좀 크구나. 해내고 싶다. 해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부대로 돌아가면 행보관님의 괴롭힘은 안 봐도 뻔하고 나에게 이 무대는 기회이자 나를 성장시켜줄 경험이 될 것이다. 남들보다 뛰어나진 않을지 몰라도 의지와 열정으로 함께 하고 싶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 


오디션을 마치고 나왔을 때 진이 빠진 상태였다. 아직 대기하고 있는 인원들의 표정은 초조하고 긴장되어 보였다. 그래, 저들보다는 내가 낫다. 어쨌든 난 끝났으니까. 그렇게 터덜터덜 집에 돌아왔다. 휴가라면 마냥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마음이 착잡했다. 그 어느 때보다 부대로 돌아가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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