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는 또 한 번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무료한 육군의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이었다. 정말로 우연처럼 집어 든 국방일보에서 오디션 공고를 하나 보게 되었다. 국방부와 뮤지컬협회가 동시에 제작하는 뮤지컬 공개 오디션이었다. 이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원 자격도 아슬아슬하게 맞아떨어졌다. 전역일까지 6개월 이상 남은 현역 장병 대상이었는데 이제 8개월 정도 남은 나에게는 딱이었다. 그날 잠을 자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말똥말똥한 눈을 계속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다 밤하늘을 보러 잠시 나왔다.
과연 내 힘으로 오디션에 합격할 수 있을까. 나에게도 기회가 올까. 달빛이 밝았다. 그리고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열정이 되었다. 하고 싶었다. 다시 무대에 서고 싶어. 커다란 무대에서 사람들의 함성과 눈빛을 느끼고 싶었다. 다음 날 바로 오디션에 지원하기 위해 분대장과 소대장에게 보고를 했다. 다들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줬다. 오디션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국군 인트라넷에 접속을 해야 했는데 일개 병사인 나는 그럴 권한이 없었다. 때문에 사무 계원이던 동기가 대신 메일을 보내줬고 그렇게 서류심사가 통과하기를 기다렸다.
개인 정비 시간에 짬을 내어 오디션을 대비한 연습을 이어갔다. 세탁실에서 빨래를 돌리면서 뮤지컬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경계근무를 나가서는 머릿속으로 독백을 외우기도 했다. 그리고 서류 통과 소식이 들려왔다. 다들 나보다 더 기뻐했다. 국방부 발신으로 온 합격 발표 메일을 보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내가 해냈구나. 스스로 얻어낸 오디션 기회다. 이번 오디션에 합격을 하게 된다면 더 이상 운이 아닌 재능이나 가능성으로 봐도 되겠구나. 마음속에 뜨거운 게 끓어 올라왔다.
그러나 모든 게 술술 풀린 건 아니었다. 여기는 군대였다. 그래, 여기는 군대다. 자유롭게 모든 걸 내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오디션을 보려면 휴가를 나가야 했다. 다행히 나에게는 포상 휴가가 있었다. 국방부에서 발신된 합격 통보 메일에는 오디션을 위해 외박을 부여하라는 말이 있었지만 1박으로 다녀오기에는 마음의 무게가 컸다. 휴가 일정을 조율하고 포상휴가를 올렸는데 승인이 나질 않았다. 행정보급관님이 중간에 커트를 해버렸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오디션 지원 사실을 자신이 알지 못했다는 점이 괘씸하다고 했다. 당황스러웠다. 평소에도 쓸데없는 부분에 꼬장 부리는 걸 좋아하는 고집스러운 사람이었다. 적어도 사병들이 느끼기에는 말이다. 갑자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내 손으로 얻어낸 첫 번째 기회를 이대로 날려버릴 수는 없었다.
설득이 필요했다. 휴가를 나가기 위해서는 행보관님의 싸인이 필요했으니까. 일단 잘못된 부분이 무엇인지 복기했다. 내 절차에는 문제가 없었다. 여기는 군대이다. 그러니 적절한 보고 체계가 존재한다. 나의 직속상관인 분대장과 소대장에게 보고를 했고, 이후 중대장님까지 아는 내용이었다. 바로잡아야 할 부분을 발견하지 못한 나는 말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 쌓여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위기상황을 타개할 뾰족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빌고 빌었다. 왜 빌어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이 위기를 넘어야 했다. 행보관님이 좋아하는 간식들을 사서 갖다 드리며 애원에 사과에 용서까지 구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원망스러웠다.
국방부 명령이라는 메일의 내용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 나 하나쯤 오디션을 보러 오지 않아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겠지. 하지만 내 삶에 있어 두 번 다시없을 기회인 것은 분명했다. 중대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그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행보관의 마음을 돌릴 권한이 자기에게는 없다 말했다. 풀이 죽어 돌아온 나를 본 행보관님은 비아냥댔다. 어차피 가도 안 될 거라는 식으로 말을 했다. 더더욱 해내야 했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