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는 영상 과제에서 빠지게 되었다. 선택을 받지 못했고 선택을 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하기보다는 그냥 그게 당연한 결과라 생각했다. 엄격한 선후배 문화 속에서 능글맞게 먼저 다가갈 용기도, 뻔뻔함도 내게는 없었다. 자꾸 비교했고 스스로를 깎아내리기 바빴다. 19년 동안 내가 알던 나는 더 이상 없었다. 거울 속의 나는 소리 없이 희미한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 다들 나의 자신 없는 눈빛을 목격했을 것이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은 빼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스무 살, 스물한 살짜리들이 뭘 안다고 그렇게까지 가혹하게 서로를 대해야 했을까 싶은데 그때는 그게 그 바닥의 룰이라 생각했다. 이게 잘못된 악습이라 생각해도 이미 잔뜩 쫄아버린 신입생은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동기니까 하나여야 했고 신입생이기 때문에 선배들에게 선을 엄격하게 지켜야 했다. 가혹행위라기보다는 공동체 의식 함양, 체력단련의 명목이었기에 그럴듯했다. 이른 새벽 연습실에 모여 동기들이 전부 도착할 때까지 엎드려뻗쳐를 한다거나 무릎을 꿇는 행위는 그저 가벼운 일상이었다. 문제는 아무리 그런 시간을 가져도 동기는 하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거지.
결국 1학년이 끝날 무렵 이 문제는 공론화가 되었고 공식적으로 집합과 기합은 없어졌다. 비공식적인 집합은 제외하고. 일 년 내내 근육통을 달고 살았던 우리는 그렇게 기합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덤으로 선배들 눈치를 받는 기수가 되었다. 기수 열외라는 말까지 나왔으니까. 생각해보면 그저 미워하고 괴롭힐 존재가 필요했던 것 같다. 우리 다음 기수가 들어왔을 때 그들을 향한 시선이 우리에게 향했던 그것과 비슷했으니까 말이야. 왜 진작 없어지지 않았을까, 왜 아무도 바로 잡지 않았을까, 하는 억울함은 살짝 있었다. 연습실에 흘린 땀의 양을 따지면 연습이나 수업보다는 기합으로 흘린 땀이 비교할 수 없이 더 많을 거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났다.
그래도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선생님들의 예쁨도 많이 받는 학생이었는데 여기서는 존재감 없는 학생1로 전락해버렸다. 자신감도 자존감도 바닥을 찍었고 스스로 움츠러들며 점점 위축되었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건 아닐까. 어쩌면 내 자리가 아닐지도 몰라. 이건 잘못된 선택이었어. 그러나 돌이킬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 누구도 시킨 적 없이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때문에 감당은 오롯이 내 몫이라 생각했다. 그저 혼자 감당하려고만 했다. 그 누구의 도움 없이 말이다.
누군가는 분명히 이 자리가 꿈이고 목표였을 거야. 이 생각은 나를 더 괴롭혔다. 운이 좋게 앉아있는 내가 투정을 부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터져 나오는 감정들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다. 속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고 갈라졌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