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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상 Jan 05. 2021

01. 꿈꾼 적 없는 백수가 되었다.

보통날이었다


보통날이었다.


지독하게도 특별한 일이 없는 그런 날. 사실 생각해보면 특별한 일이 있는 날을 손에 꼽기 더 어렵다. 갑자기 위로가 되네. 일찍 일어났지만 출근하는 가족들을 마주하기 싫어서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이 작은 공간이 있어 다행이다, 참.


아침밥을 먹으라는 말에 마지못해 나가서 앉는다. 몇 숟갈 뜨면서 눈은 절대 마주치지 않는다. 멍하니 바닥에 앉아있다 날아가는 날벌레를 바라본다. 너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 거니.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출근 준비를 하는 가족들 틈 사이에 섞이지 못한 나는 방으로 돌아간다. 아무 옷이나 걸쳐 입고 제대로 씻지도 않은 채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아파트에 있는 헬스장으로 간다. 누가 보면 몸짱이라도 될 정도로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으로 보겠지만, 절대. 네버.


아줌마 아저씨들 사이에서 러닝머신 하나를 차지하고 초점 없는 표정으로 빠르게 걷는다. 숨이 찬다. 산다는 건 힘든 거구나. 그렇구나. 그렇게 백수의 하루는 시작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무도 없다. 양심이 시키는 대로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한다. 빨래를 돌리고 갠다. 이 집에 살고 있는 동안 밥값은 해야 한다는 생각에 몸이 절로 움직인다. 나만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지 않으니 이건 당연한 거다. 후딱 집안일을 끝내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동네에 있는 도서관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늘 같은 사람들이 있다. 인사를 나눌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알게 모르게 마음속으로 출석체크 정도는 한다. 오늘은 왔군, 어제는 왜 안 왔을까. 준비한 일이 잘 된 걸까? 아니면 포기한 걸까?


늘 앉던 자리에 누가 앉아있어 인상을 한 번 찌푸리곤 빈자리에 앉아 책을 꺼낸다. 중국어 책이었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배운 이후 대학교에서 교양수업 한 번 들은 게 전부인데 갑자기 웬 중국어? 그냥 요새 뭐하냐는 질문에 대답할 거리를 만들고 싶었다. 어쩌다 한 번씩 연락 오는 녀석들에게 놀아,라고 말하기 싫어 스스로 만든 일이었다. 아침에 운동하고 여유롭게 외국어 공부를 한다니, 이거야말로 성공한 사람들의 여유로운 일상처럼 보이는데 나는 부는 없고 가오만 있었구나.




내가 중국어 글자를 쓰는 건지 아니면 기계처럼 노트를 채워가고 있는지 모를 때 즈음 한 챕터를 끝내고 노트북을 켠다. 친구가 추천해준 나의 유일한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서이다. 블로그 광고를 의뢰받아 원고를 작성하고 게시하는 일이다. 그저 그런 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글 안에서 나는 전국 팔도를 누빈다.


어제는 인천 앞바다에서 회를 먹었고 부산에 있는 모텔에 묵었다가 대구에서 요가를 한다. 홍대에서 마카롱을 먹고 건대에서 양꼬치를 먹은 척 글을 작성하고 나니 피곤하다. 하지 않았던 것들을 오로지 주어진 정보와 상상에 맞춰 하나의 글을 만들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담배도 사고 술도 한 잔씩 마시려면 그 정도는 할만한 일이었다. 사지가 멀쩡한데 놀고먹는 거보단 그래도 덜 눈치 보이니까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다 습관처럼 SNS를 켰다. 정작 나는 사진을 올리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피드는 열심히 찾아본다. 드라마 찍었네, 영화도 하는구나, 새로 찍은 프로필 사진 잘 나왔다. 결국 아나운서 됐구나. 뉴스 발음이 조금 어색한데? 축하와 부러움, 질투와 좌절 어느 사이의 감정을 느꼈지만 입은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연극영화과를 나왔지만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는 졸업유예생일 뿐이고 아나운서 준비를 1년 넘게 하며 촉망받았지만 특강 수업료 백만 원이 당장 주머니에서 나오지 않는 한심한 백수이기 때문이지. 오늘의 먹을 것과 잘 곳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배부른 돼지이지만 앞으로를 생각해보면 숨이 턱 하고 막히는 20대의 끝자락.


바람이 유난히 아프게 느껴졌다.




누군들 미래의 자신을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나 역시 이런 현실을 마주할 거라 상상한 적이 없었다. 성공의 가치야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다르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당당한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거울 속 내 모습은 많이 초라했다.


우여곡절 끝에 연극영화과에 입학을 할 때만 하더라도 지금쯤 신인상을 받고 작품을 고를 줄 알았지. 과감히 진로를 바꿔서 아나운서를 준비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지금쯤 뉴스 생방송을 끝내고 집에서 한강 뷰를 바라보며 위스키 한 잔을 마실 줄 알았지. 전에는 가끔 분한 마음에 울컥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하면 웃음부터 나왔다.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 따위에게 허락되지 않은 일인 것 같아서 말이다.


그냥 웃겼다.



01. 꿈꾼 적 없는 백수가 되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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