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은 숨 가쁘게 지나갔다. 스터디, 스터디, 스터디, 스터디, 스터디, 스터디, 스터디, 스터디의 연속이었다. 카메라 테스트를 대비한 뉴스 스터디를 했다. 학원에서 잡은 스터디와 외부에서 따로 구성한 모임까지 여러 개를 동시에 돌렸다. 만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서로에게 객관적이지 못했다. 지금 필요한 건 칭찬이 아닌 보완할 부분에 대한 정확한 지적이었다. 자꾸 보면 익숙해진다. 그냥 버릇 내지 특성으로 보인다. 그러나 심사위원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초면이고 그들은 나를 보이는 그대로 판단한다. 합격 또는 불합격, 호 또는 불호일 뿐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그 앞에서 뉴스를 읽었다. 대부분 객관적인 피드백을 원하기 때문에 그런 스터디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우린 마치 심사위원이 된 것처럼 개인의 취향을 담은 피드백을 건넨다. 여기에서 감정을 덜어냈으면 좋겠다. 끝음이 더 내려왔으면 좋겠다. 표정이 부자연스럽다. 뾰족한 이야기는 찾기가 힘들다. 그러나 스스로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누군가 지적했을 때 그 부분을 아직 감추지 못했다는 사실에 속이 상했다.
누가 봐도 잘하는 사람들도 스터디에서 간혹 만날 수 있었다. 확실히 톤이나 발성, 발음, 이미지까지 완벽한데 왜 나와 같이 스터디를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을 만날 때마다 방송국의 문턱이 얼마나 높고 좁은지 실감했다. 저들도 좌절한 문이다. 허락되지 않은 공간에 감히 문을 두드리려면 나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 아니. 괜찮지 않았다. 좋은 점을 배우기 위해 그들의 모든 것들에 집중을 한다. 나에겐 없지만 그에게 있는 것, 그리고 지금 내 가소화 해낼 자신이 있는 것들을 배운다. 충분히 내 것이었던 것처럼 연기할 수 있는 것들을 배운다. 좋은 것도 많이 먹으면 체한다고 이렇게 하나둘 따라 하다 보면 내가 원래 잘하던 것들까지 잃어버리고 만다. 결국 카메라 앞에서 다시 돌아오는 건 원래의 나였다. 나는 그가 될 수 없었고 그도 내가 될 수 없었다.
보통 뉴스 스터디와 면접 스터디를 겸하기도 했다. 뉴스 원고를 읽는 것과는 다른 톤으로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이어나가는 것이 핵심이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진솔함과 재치가같이 묻어나야 했다. 면접 역시 모든 카메라를 통해 비치는 나를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바른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했다. 눈을 깜빡이는 횟수나 척추는 곧게 세웠는지, 턱은 조금 당기고 입꼬리는 자연스러운지 등을 체크했다. 이 모든 걸 신경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대답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하나를 신경 쓰면 하나가 흐트러지고 나머지가 무너졌다. 오드리 헵번이 나온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가 생각났다. 아나운서로서 갖춰야 할 덕목들을 하나씩 채워나가는 내 모습이 꼭 영화 속 오드리 헵번 같았다. 이 세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단번에 될 리 없었다. 그렇게 나는 연극영화과 학생에서 조금씩 옷을 고쳐 입는 중이었다.
필기시험 준비도 이어갔다. 각자 공부한 내용을 체크하기도 하고 만나서 서로 테스트를 하기도 했다. 기출문제를 풀고 방송학에 대한 전반적인 공부를 했다. 매일매일 뉴스를 정리하고 단어들을 암기했다. 사회의 이슈에 대해 토론을 하며 생각을 나눴고 작문 연습도 했다. 여러 개의 스터디를 하면서 작문하는 시간이 가장 숨을 쉴 수 있는 순간이었다. 매 스터디마다 돌아가며 즉흥으로 주제를 냈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 동안 한 페이지 정도 분량의 글을 작성하고 서로의 글을 돌려보며 첨삭을 했다. 그리고 한 주 동안 첨삭받은 내용을 바탕으로 다시 퇴고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퇴고한 글을 읽으며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를 나눴다. 글이라는 건 참 신기한 게 갑자기 영감이 떠오르면 순식간에 완성이 되었지만 막혀버리면 단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창작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게 처음이었고 같은 단어를 보고 이렇게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공채 시험이 임박해져 스터디가 종료될 때까지 많은 글들이 내게 남았다. 펜이 그리고 글이 가지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얼마나 사명감이 필요한 일인지 그때 참 많이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