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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한중 May 01. 2022

‘멸치 한 마리’ 주세요 ②

멸치 머리에는 과연 ‘블랙박스’가 있을까?


2만여 종의 바닷물고기 중에서 가장 많은 가족을 거느린 물고기는 “멸치”라고 한다.


바닷속 작은 플랑크톤을 먹고살면서 바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중간자 역할을 하는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기도 하다.


그런데 물고기들은 '비늘'이 잘 발달되어 있어, 피부 보호 및 세균의 침입을 막고 물의 온도를 감지하여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각 기능과 몸속의 수분이 빠져나가거나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갑옷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 에도 비늘이 없는 바닷물고기가 있는데 『멸치를 비롯해서 실치, 갈치, 꽁치, 날치, 넙치, 삼치, 준치, 참치, 한치』 등 주로 “치”자로 끝나는 물고기들로 모두 10여 종에 이른다.


이것들의 특징은 비늘이 없다는 것(예외로 ‘어魚’ 자가 붙여진 물고기 중에도 ‘고등어, 오징어, 문어’는 비늘이 없다)인데 피부의 점액질이 대신해서 비늘 역할을 해준다고 한다.


해조류 중에도 김이나 우뭇가사리(한천)도 산호나 조개처럼 딱딱한 ‘석회조류’가 비늘 기능을 해 보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조상들은 생선 중에 비늘이 없는 물고기는 제사상에 올리지 않았으며, 한약을 먹는 기간에도 이 물고기들은 먹지 않는 풍습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우리 식단과 가장 밀접한 멸치는 한밤 하얗게 지새우도록 이야기를 해도 끝이 없을 것이다.


바닷물고기이면서 어엿한 생선이지만 그냥 ‘멸치일 뿐?’이라며 제대로 된 취급을 받지 못하지만,


대한민국 5천200만 국민 중 유치원생부터 어른까지 생선 중에서 이름을 아는 건 아마도 ‘멸치뿐’ 일 것이다.


「멸치」는 분명 ‘멸치일 뿐’이 아니라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것이 ‘멸치뿐’이어야 한다.


책의 소재로, 멸치국수의 재료로, 학교 시험문제의 대명사인 멸치는 입안에서 조금 단단하게 느껴질 뿐 먹고 난 후에는 전혀 탈이 없는 대표적인 자연식품이다.     


그만큼 수만 여종의 바닷물고기 중에 무공해 조미료로 국민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멸치」는 뼈째 먹을 수 있어 다른 생선보다 무려 10배 이상의 칼슘을 섭취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엄연한 척추동물로 우럭ㆍ농어ㆍ방어ㆍ갈치ㆍ고등어 등과 함께 ‘생선’이면서, 크기는 작아도 ‘대멸, 중멸, 소멸, 자멸, 세멸’ 등 5가지로 분류하여 전시ㆍ판매되고 있다.




때로는 ‘멸치도 생선이냐’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크기에 따라 조림이나 볶음용으로, 국물 등 육수의 재료로, 젓갈과 횟감으로, 김치찌개용으로 우리 식탁을 풍성하게 하고 우리 몸을 튼튼하게 해 준다.


멸치를 깊이 생각하는 시인들은 ‘그 생선이 그 물고기가 그물에 건져 올려지기 전까지는 작고 연약한 몸이지만 떼로 몰려다니는 습성 때문에 망망대해에서는 작은 물결로 거친 파도와 때로는 태풍과 맞서며 삶을 살고 있어 다른 바닷물고기에 비해 결코 홀대받아서는 안 된다’라고 한다.


큰 물고기의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 은빛 물결로 떼 지어 대항하며 거친 삶을 살아가기에 오죽하면 “죽어서도 떼 지어 사는 것이 멸치”라고 말한다.   

  

『굳어지지 전까지 저 딱딱한 것들은 물결이었다. 파도와 해일이 쉬고 있는 바닷속…

그 바다에는 아직도 지느러미가 있고 지느러미를 흔드는 물결이 있다.

이 작은 물결이, 멸치의 몸통을 뒤틀고 있는 이 작은 무늬가 파도를 만들고, 해일을 부르고, 고깃배를 부수고, 그물을 찢었던 것이다.』 (멸치/ 김기택)


이처럼 멸치는 ‘물결과 파도와 해일 그리고 바닷속’이 생명력이지만, ‘그물과 햇빛, 공기와 기름’은 멸치의 생명력을 한순간 빼앗아 가기 때문에 가장 싫어한다.


또한, 멸치만큼 생명력이 강한 물고기도 없어 그물코에 끼어서도, 그물로부터 떨어져 나와서도 생을 다하는 순간까지 파닥 거림으로 증명하고 있다. 그런 멸치를 어느 시인은 ‘생기 잃은 현대인’에 비유하기도 하여 씁쓸하기까지 하다.    


『어머니는 도시락 가득 고추장 멸치볶음을 싸주셨다. 뚜껑을 열어보면 항상 흩어져 있다. 그 흰쌀밥에서 나는 붉은 멸치를 하나하나 골라내곤 했다.

멸치가 싫다. 기분상으로, 구조적으로 그것은 작고 비리고 문득 반짝이지만 결코 폼 잡을 수 없는 것 왜 멸치는 숭고한 맛이 아닌가.

왜 멸치볶음은 죽어서도 살아있는가. 반찬 칸을 뛰어넘어 언제나 내 밥알을 물들이는가.』(멸치의 아이러니/ 진은영)


그러고 보니 어릴 적 밥상에 올려진 멸치가 딱딱하게 굳어있어 외면하던 생각이 떠오른다. “멸치 먹어야 튼튼하게 자랄 텐데 왜 안 먹느냐”며 어머니한테 꾸중을 들었던 기억 역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뜨겁게 끓다가도 한순간 식어서 맛없는 세상이 될지라도 육수보다 진하고 깊은 국물이 되어보자

뚝배기처럼 뜨거운 한술 밥 누군가를 적셔주기 위하여 자글자글 지글지글 끓어 넘쳐보자』(멸치는 죽어서도 떼 지어 산다/ 최성규)
『내가 멸치였을 때 바닷속 다시마 숲을 스쳐 다니며 멸치 떼로 사는 것이 좋았다.

멸치 옆에 멸치, 그 옆에 또 멸치, 세상은 멸치로 이룬 우주였다. 내가 멸치였을 땐 은빛 비늘이 시리게 빛났었다.

싱싱한 날들의 어느 한끝에서 별이 되리라 믿었다. 그물에 걸려 뭍으로 올려지고, 끓는 물에 담겼다가 채반에 건져져 건조장에 놓이고 말라비틀어진 건어물이 되었다.

끝내 머리가 뜯긴 채 고추장에 찍히거나 펄펄 끓는 냄비 속에서 사골을 우려낸 후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내가 멸치였을 때 별이 되리라 믿었던 적이 있었다.』(멸치/ 이건청)


멸치는 접시에 담겨 있어도, 어물전에 쌓여있어도, 식탁에 올려져서도
자기들의 고향 “바다”를 늘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멸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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