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럭'과 조피볼락(=), 우렁이, 우렁쉥이(×), 꺽지와 쏘가리(비슷)
넙치(광어)와 함께 국민 횟감으로 널리 알려진 바닷물고기 ‘우럭’의 본명은 ‘조피볼락’이다.
우럭이라는 이름은 방언이지만 오랜 세월 대중화된 탓에 대다수 사람은 조피볼락이라고 하면 몰라도 우럭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지방에 따라 ‘우레기’라고도 불리는데 다양한 맛과 고소한 냄새, 쫄깃한 식감에 고수(固守)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조피’는 ‘껍질이 거칠다’라는 뜻이며, 다른 물고기에 비해 머리와 입, 눈이 비교적 커 넙치나 농어, 노래미 등에 비해 수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일식 업계에서는 기피 하는 횟감이라는 불명예도 있지만 숙성했을 때 탄탄한 식감과 깊은 맛을 내는 우럭은 회나 매운(지리)탕, 젓국, 구이, 조림, 찜, 전 부침, 우럭 백숙, 산모의 보양식 등으로 천하일품 최고의 물고기라 해도 손색이 없다.
횟집에 갔을 때 식탁에 오르지 않으면 어딘지 모르게 섭섭하고 허전한 느낌을 주는 회색빛의 물고기이기도 하다. 서해안 바다를 빛내는 대표적인 물고기로 입맛이면 입맛, 손맛이면 손맛, 온 세상맛까지 쫄깃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매운탕에서까지 내장은 양보할 수 없는 부위로 버릴 것이 거의 없는 물고기다.
어류임에도 ‘어(魚)’자가 들어가지 않은 유일한 바닷물고기로 고수의 자리를 점하는 것 또한 예외다. 최고의 횟감, 바다의 레전드, 히어로라는 등 논란도 끊이지 않는데 그도 그런 것이 매운탕으로 넘어오면 대세가 정해진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감칠맛의 주인공, 조피볼락이 단연 승자다. 모듬회에 사시사철 조피볼락이 들어가지 않는 경우 또한 찾기 힘들다. 이쯤 되면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조피볼락이 뭔가요? 나는 먹어본 적이 없는데 무슨 소리? 지금 먹은 회가 우럭이 아니고 조피볼락이라고?" 어쩌면 당연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횟집이나 수산 시장의 좌판 팻말에서조차 우럭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상대방과 말할 때도 우럭으로만 소통되고 있어 조피볼락이라는 단어는 거의 실종되어 있다.
엄연한 자기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별칭으로 더 알려진 물고기지만 물고기 세계에서는 단연 연예인급(?)이라는 것이 강조되는 이유다. 글자 수에서도 4글자보다 두 글자가 간결하고 짧아 말하는데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데도 한결 쉽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조피볼락을 '울억어'(鬱抑漁) 라고도 하는데 이는 돌 틈이나 암초가 무성한 곳을 은신처로 삼아 살면서 멀리 헤엄쳐 나가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모습이 고집스러워 보여 막힐 울(鬱), 누를 억(抑)자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속담에 '고집쟁이 우럭 입 다물듯'이라는 속담도 조피볼락 생김새를 빗댄 말이다.
또 하나 정말 특이한 것은, 물고기들은 모두 알로 부화한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깨고 알이 아닌 암컷 배 속에서 수정(부화)한 뒤 어린 물고기로 직접 산란(생산)하는 물고기가 바로 우럭이다.
이를 난태생이라고 하는데 알 상태에서의 사망률을 현저히 줄일 수 있는 조피볼락만의 생존전략이라는 전문가의 견해도 곁들인다.
가격에 비해 바다를 빛내는 물고기, 매운탕의 챔피언, 바다의 마이클 조던 등 또 다른 명성도 가지고 있으며, 맛 또한 여느 다른 물고기에 비해 저렴하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수명은 8년 정도로 알려져 있으며, 찬 바람이 불거나 추운 겨울 뜨끈한 국물이 생각날 때 서해안을 찾으면 지역의 대표 향토 음식인 ‘우럭젓국’을 먹을 수 있다.
반건조시킨 우럭 포에 쌀뜨물과 새우젓을 넣고 끓이는데 시원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의 국물이 탄생한다. 매운탕과는 달리 우럭젓국은 생선의 순수한 맛 그대로를 살렸기 때문에, 특별한 재료를 가미하지 않았는데도 비린 맛이 없다.
비밀은 반건조 우럭 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국물 또한 깊고 시원하다. 생선 살은 굵은 가시만 제거하면 잔가시가 없어 별미로 편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우럭이 해풍에 반 건조되면서 기름지고 차진 맛이 배가되어 보리굴비 못지않은 숙성 생선의 맛이 난다. 심지어는 아침 해장을 우럭젓국으로 한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지역도 있다.
충남에 있는 팔봉산을 오르다 보면, 팔봉산의 경치에 반해 때를 놓쳐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바위가 되었다는 ‘우럭 바위’가 있는데
마치 바위 사이에 숨어있는 우럭이 머리만 빼꼼히 내밀고 주변을 살피는 모양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럭 바위가 향하고 있는 쪽은 바다가 있는 곳으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하는 것 같아 애처로워 보인다.
제주에 가면 ‘우럭의 숲’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맛집이 있는데 통 우럭튀김과 떡볶이로 유명해 손님들의 발길이 잦다고 한다.
한편, 일본 후쿠시마 앞바다의 오염수 방류에 따른 세슘 기준치를 말할 때 어김없이 우럭이 대표 어종으로 등장하는데 수많은 물고기 중에서 왜 하필 우리냐고 우럭들이 매우 억울해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해역에서 잡히는 우럭은 안심해도 된다고 하니 그냥 우럭 아니 조피볼락 그 자체로 봐주면 고마워할 것 같다.
참고로 ‘우럭’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수산물이지만 전혀 다른 “우렁이(담수)”와 “우렁쉥이(멍게/ 해수)”가 있으며, 색깔이나 생김새가 비슷한 민물고기로 ‘꺽지’와 ‘쏘가리’도 있으니 알아두면 좋겠다.
최근에는 우럭의 놀라운 발견으로 지난 7월 18일 국제학술지 이라이프(eLife)에 ‘우럭’에서 뜻밖의 [약물내성 세균을 잡아주는 성분이 있는 것으로 확인] 되었다고 하니
지인들과 우럭을 메뉴로 함께하는 자리가 있으면 언론보도를 발산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 오늘 저녁엔 모처럼 횟집으로 고고~씽! 우럭을 먹을까? 조피볼락을 시킬까?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