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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양 Mar 12. 2016

세무서에는 사내연애가 많나요?

공순이를 꿈꾸는 그대에게, 열두번 째 이야기

힘들다는 소리만 가득하던 사내 익명 게시판에 모처럼 상큼한 글이 떴다.

세무서에는 사내연애가 많나요? 왜 우리 세무서에는 없을까요. 나만 모르는건가.


글쓴이는 자기 빼고 다들 알음알음 사내연애를 하는 것 같은데 실상이 궁금하다 했고 많은 분들이 본인의 경험담을 댓글로 남겼다.


- 님 빼고 다들 몰래 사내연애 하는 것 맞습니다. 저도 지금 하고 있어요. ㅋㅋ

- 저도 몰래 사내연애했어요. 지금은 후회합니다. 조직 내부 사람이라 더 잘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 학교다닐 때 외롭다는 친구에게 고백했더니 좋은 선후배.
  공부하면서 외롭다는 친구에게 고백했더니 좋은 스터디원.
  일하면서 외롭다는 직원에게 고백했더니 좋은 직장동료.
  저는 인간관계가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ㅠㅠ

- 22년전에는 세무서끼리 공개미팅도 했고, 업무지원팀에 여직원 신상 명세 알아다가 미팅도 했답니다. 요즘같으면 정보유출로 혼나겠지요. 부지런한 새가 먹이도 빨리 찾는 법, 새내기들은 서두르세요.

- 사내연애는 비추합니다. 사귀다 헤어지면 서로 불편해요. 서울청은 몰라도 지방은 좁아요.

- 넓고 젊은 중부청으로 오세요!


2만여 명이 근무하는 국세청에는 국세공무원 부부가 많다. 가깝게는 우리팀 9명 중에 3명이 사내 커플이고,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풍문으로 듣자하니 2천쌍은 족히 된다는걸 보면 보수적으로 추정해도 사내 커플 비율은 20%를 넘는다. 다른 직장의 사내 커플 비율은 알 수 없지만 20%씩 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유독 세무서에 사내 커플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야근이 많은 근무환경 때문


다른 공무원에 비해 국세공무원은 야근을 많이 한다. 일 잘하는 고참들이야 일찌감치 일을 마치고 퇴근하지만 이래 저래 잔업이 많은 신참들은 밥먹듯 야근을 하게 된다. 젊은 남녀가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서 밥도 시켜먹고 같이 일하면서 모르는 것도 물어보고, 집에 가는 길에 그냥 가기 아쉬우니 맥주 한잔씩만 하고 가자고 했다가 2차, 3차까지 달리다보면 자연스럽게 정분이 나기 마련이다.


야근이 전부 로맨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고, 야근을 하느라 외부 사람을 만날 시간이 없다보니 같은 부서, 같은 세무서에서 인연을 찾거나 전에 같이 근무했던 직원을 서로 서로 소개시켜줘서 내부거래가 활발한 탓으로 추정된다.


석달간의 합숙 때문


어느 직장이나 신입사원 연수는 있기 마련이지만 국세공무원의 경우 시험에 최종 합격하면 12주간 합숙 교육을 받게 된다. 2007년에는 수원 교육장에서 6주동안 교육을 받았는데 지금은 제주도에서 석달 이상을 보내게 된다. 기나긴 수험생활로 인한 금욕 기간을 마치고 한참 혈기 왕성한 남녀가 모였으니 갖가지 로맨스가 발생하지 아니할 수 없다. 나도 합숙교육 받을 땐 나름 인기가 있어서(^^) 남직원이 나를 위해 사온 한라봉과 과자를 기숙사 책상 위에 전시해놓고 공물 상납을 종용하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아. 옛날이여. 그 남직원은 외부사람을 만나 아이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지.


책장 위에 올려놓은 상납품이 트로피마냥 위풍당당하다.

여튼 교육원은 사랑이 꽃피는 공간이다. 우리 동기 중에도 교육원에서 연애를 시작해서 결혼한 커플들이 많다. 한 당돌한 커플은 교육원에서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청장님이 특강하러 오셨을 때 질문 시간에 '주례를 서달라'고 공개적으로 부탁하기도 했었다.  교육원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을 찍어두었다가 세무서에 발령 받은 후에 열심히 작업을 해서 사귀는 경우도 많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수원 교육원. 벚꽃필 때 사랑도 꽃피었었다.


사내커플의 장단점


익명게시판 글에 달린 댓글처럼 조직 내부 사람이니 잘 이해해줄거라는 착각(?)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야근도 많고, 술 좋아하는 상사나 동료가 있으면 술도 자주 마시게 되는 분위기다보니 배우자가 우리 조직이 아니면 아무래도 싸움이 나기 쉽다. 그렇다고 모든 사내커플의 아내들이 남편의 늦은 귀가를 너그러이 용인하는 보살님이란 얘긴 아니다. 다만 어쩔 수 없는 그 분위기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남편님들은 술좀 적게 먹고 얼른 얼른 집으로 들어가 애기도 보고 집안일도 하자.)


그보다 더 큰 장점은 서로가 서로에게 큰 빽이 되어준다는 점이다. 국세공무원은 2년마다 한번씩 인사이동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인맥이 넓어지는데 부부의 인맥을 합치면 1+1 이상으로 넓어진다. 대단한 청탁은 별론으로 치고 누군가에게 뭔가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때 내가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배우자가 아는 사람을 통해서 연결이 되면 일이 수월하게 풀리기도 한다.


게다가 주위에서 감시 아닌 감시를 하다보니 딴 짓을 못한다는 것도 장점이라 하겠다. 누가 누구의 남편이라는 걸 다들 아는 상황이다보니 회식을 핑계로 다른 곳으로 샐 수도 없고, 바람 피우기도 어렵다.

사방이 CCTV인듯

서로가 서로의 상황을 너무나 뻔히 알다보니 수당을 빼돌리기가 어렵다는 것은 가장 큰 단점이다. 연말정산 환급금이나 출장비는 월급 계좌와 다른 곳으로 받을 수 있는데 부부 공무원이면 그 조차도 훤히 알고 있으니 방법이 없다. 그러니 사내커플의 아내들은 남편의 사기진작을 위해 다른 계좌로 받는 출장비 정도는 눈감아주는 아량을 베풀어주자.


부적절한 사내연애, 그 씁쓸함에 대하여


오피스 와이프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실제 부부나 애인 관계는 아니지만 직장에서 아내보다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여성 동료를 이르는 말이다. 2013년 잡코리아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 중 30%가 오피스 와이프 혹은 오피스 허즈번드가 있다고 한다. 몇년전 결과이긴 하지만 10명중 세명이라니 생각보다 많다는 생각이 든다. 세무서도 남녀가 북적이며 일하는 공간이기 보니 불륜 제로를 장담할 수는 없다.


세무서에서는 반장 반원이 한 팀이 되어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은 여직원이 많아져서 남녀가 한반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같이 출장을 다니다보면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게 되고 아침 저녁에 잠깐 보는 배우자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다보니 이성으로서 마음이 끌릴 수도 있다. 배우자와 사이가 안좋은 상태였다면 그 미묘한 마음이 더욱 애틋하고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마음이란 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어찌할 수 없지만 마음가는 대로 살 수 없는게 인생이 아닐까.


성인남녀의 연애사를 회사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국가공무원법 제63조 (품위유지의 의무)에 따르면 '공무원은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그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서울경찰청은 2014년 4월 유부녀 부하직원과 연애 카톡을 주고받은 유부남에 대해 “부적절한 이성교제로 국가공무원법의 성실 의무(제56조)와 품위유지의 의무(제63조)를 위반했다”며 둘을 해임 처분했고, 이들은 처분에 불복해 행정안전부에서 소청심사위원회에 심사를 청구해서 각각 정직 3월로 감경된 사례가 있다.


바람이 나서 징계를 받고 사람들의 수근거림과 손가락질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불쾌하기도 하거니와, 내 아이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이고 내 가족인 배우자의 뒷통수를 갈기는 상황은 제발 만들지 말자. 깃털보다 가벼운 사람의 마음이야 봄바람을 타고 살랑살랑 흔들릴 수야 있겠지만, 마음 가는 대로 본능에 충실한 삶이야 개나 고양이와 다를 바가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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