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순이를 꿈꾸는 그대에게, 열세번째 이야기
나는 잠실키즈다.
서울에서 태어나 삼십여 년을 쭉 서울에서, 그중에서도 대부분을 잠실에서 살았다. 꼬꼬마 시절엔 잠실 아파트 단지 내에 비닐하우스가 있었고 올림픽 공원은 그냥 허허벌판이었지만, 한해 한해 내가 자라듯이 잠실에는 커다란 건물들이 쑥쑥 자라났다. 잠실역 근처에서 살았기 때문에 지하철로 어디든 갈 수 있었고, 잠실역과 연결된 롯데백화점 잠실점은 처음 생겼을 때부터 동네 수퍼마켓처럼 드나들었다. 한강과 올림픽공원이 가까이 있어서 마음 내킬 때마다 산책을 할 수 있었고, 지하철만 타면 미술관이든 음악회든 언제든지 갈 수 있었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고, 그게 너무나 당연했었다.
그러다가 2014년 12월 국세청이 세종시로 이전하게 되었다. 정부부처가 2012년부터 세종시로 이전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보다는 기반시설이 많이 생겼다며 2012년에 내려온 기재부 후배가 나를 위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시는 여전히 허허벌판에 공사중이었고 추웠다. 다행히 한달 후 인사이동 때 서울에 있는 세무서로 발령을 받아 한달간의 세종시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다시는 세종시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세종시 탈출을 기뻐했었다.
그러나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인가보다. 세종시를 떠난지 2년이 채 되지 않아 다시 세종시로 돌아와버렸다. 지난번에는 한달동안 서울에서 세종시로 출퇴근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부모님까지 세종시로 내려오셨다. 공무원을 꿈꾸는 그대들 중에는 정부부처가 지방에 있어서 공무원 되기를 주저하는 이들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되어 평생을 서울시민으로 살아온 입장에서 세종시에서의 생활에 대해 몇자 끄적여볼까 한다.
세종시에서 가장 좋은 점을 꼽으라면 서울보다 저렴한 주거비용을 들고 싶다. 서울에서 30평대 아파트 전세를 구하려면 최소 4억원 이상이 드는데 세종시에서는 반값이면 충분하다. 예전보다 전세가 올랐다고들 하는데, 하루가 다르게 새 아파트가 쑥쑥 자라나고 있으니 앞으로도 내리면 내렸지 서울만큼 무섭게 오를 것 같진 않다. 특히 세종시 내에 있는 아파트 대부분이 지은지 얼마 되지 않아 적은 비용으로 새 아파트에서 살 수 있다.
오피스텔 월세도 서울보다 훨씬 저렴하다. 10평 정도의 풀옵션 오피스텔 월세가 30만원대인데, 큰길을 따라 오피스텔이 계속해서 들어서고 있으니 더 비싸지진 않을 것이다.
2013년 경 본부에 있을 때 바글바글한 서울생활에 지쳐서 탈서울을 꿈꾸던 때가 있었다. 본부를 탈출하게 되면 지방에 있는 세무서로 갈까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본부로 돌아오면서 탈서울의 꿈이 실현되었다. 적당히 시골스럽고 적당히 도시같은 세종시는 힐링의 공간이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좋은 음악을 들으며 반짝이는 금강을 따라 산책도 하고,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국립 세종도서관에 놀러가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쇼핑과 식도락을 즐기는 분들에겐 세종이 너무나 답답하게 느껴질수도 있지만 느리고 간소하게 살고 싶은 나에겐 세종시가 딱이었다.
또한 세종시는 아이를 키우기에 좋은 곳이다. 최신식으로 지어진 아파트는 지상에 차가 다니지 않고 놀이터와 산책공간이 잘 꾸며져 있으며 아파트 단지마다 도서관과 독서실도 마련되어 있어 편리하다. 게다가 세종시는 국공립 유치원 비율이 2016년 기준 93.3%로 다른 지역 평균인 52%에 비해 월등히 높고, 국공립 어린이집 증가비율도 다른 지역에 비해 높다. 그리고 서울에선 하늘이 희뿌옇게 보일 정도로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 많았는데 세종시에서는 그렇게 심한 미세먼지를 자주 겪진 않아서 공기청정기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동네마다 복합커뮤니티라고 부르는 복지시설이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고 싶다. 제법 소장자료가 충실한 도서관이 각 동마다 있고, 요가, 요리, 서예 등 문화 체육 강좌를 저렴한 비용으로 배울 수 있으며 장난감 도서관과 유아들이 놀 수 있는 시설을 갖춘 육아지원센터가 있는 곳도 있다.
직장만 이곳에서 해결할 수 있다면 살기 좋고, 살고 싶은 도시라고 자신할 수 있겠다.
세종시에서 몇년 씩 지낸 분들은 입을 모아 불편한 교통을 지적한다. BRT라고, 서울로 치면 파란색 간선버스가 버스전용차선을 따라 다니는데 예전보다는 자주 다니지만 세종시 전역을 커버할 정도는 아니다. 택시도 많지 않아서 밤에 회식하고 택시를 잡으려면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한다. 뚜벅이로 살기엔 불편한 도시다.
승용차가 있는 사람도 애로사항이 많다.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이용하는 도시를 컨셉으로 삼아서 도로도 좁게 설계하고 주차공간도 넓지 않다보니 출퇴근 시간엔 교통체증이 심할 뿐더러 외식하러 차타고 나가면 주차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물가도 비싸다. 아파트야 거주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많아 전월세 가격이 서울이나 다른 신도시에 비해 저렴한 편이지만 상가 분양가가 높다보니 임대료도 덩달아 높다. 임대료는 비싼데 손님은 많지 않다보니 식당이나 미용실 같은 서비스업 가격대는 서울과 비슷하거나 더 높기도 하다. 세종시에서 살면서 서울보다 싸다고 느꼈던건 복숭아의 고장 조치원이 가깝다보니 저렴했던 복숭아 정도만 생각난다.
도시가 형성된지 오래되지 않아서 문화, 상업시설이 적은 것 또한 불편하다. 크리스마스처럼 특별한 날에 가족들과 특별한 곳에 가고 싶어도 갈만한 곳이 없다. 미술관이나 음악회를 보려면 대전까지 원정을 가야 하고, 백화점도 없어서 쇼핑이라도 하려면 대전이나 청주로 가야 한다. 한번은 **도너츠 기프티콘이 생겨서 이걸 사용하려고 검색해보니 세종시에는 가게가 없어서 서울로 출장갔을 때 쓰기도 했고, 아기의 백일 사진을 직접 찍고 싶어서 셀프 스튜디오를 찾아봤는데 서울이라면 동네마다 있을법한 셀프 스튜디오가 세종시에는 단 한 곳도 없어서 포기한 적도 있다. 서울에선 당연한 것들이 세종에서는 전혀 당연하지 않았던 경험이 한 두번이 아니다.
완벽하게 좋은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라 선택과 집중의 문제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사십 년 가까이 서울에서 살면서 지방에서 사는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으로서 세종에서 지낸 일년은 생각보다 더 만족스러웠다.
우리 부서엔 서울에 가족을 두고 기러기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고 가족 모두 세종시로 이전한 사람도 있다. 세종시가 답답해서 싫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한적해서 좋다는 사람도 있다. 처한 상황은 비슷비슷한데 만족도는 천차만별이니 당신이 세종에서 살게 된다면 어떨지는 살아봐야 알 것 같다. 그래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건 조금 느리고 불편하게 살겠다는 마음만 있다면 낯선 곳에서의 삶도 제법 괜찮은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