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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양 Mar 26. 2019

좋은 팀장이 되는 게 그렇게 어렵니?

나는 어떤 팀장이 되어야 할까

1월 정기인사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달이 지나고 앙상한 산수유 가지에 노란 꽃이 피었다. 작년에 악명 높았던 팀장도 같은 팀이 되고 보니 그 정도까지 악질은 아닌데 했다가도 이쯤 되면 본색이 드러나서 체념하고 다음 인사이동을 기다리는 시절이기도 하다.

'이제 10개월만 지나가면 또 인사이동이야!'

이쯤 되면 정신승리의 달인이라 하겠다.


중국 고전 <서경>에서는 인간의 5福으로 오래 사는 것, 부유하게 사는 것, 건강하게 사는 것, 덕을 좋아하고 베푸는 것, 깨끗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꼽았다는데, 현대인에게는 '좋은 상사를 만나는 것'을 여섯 번째 복으로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 국세공무원은 2년마다 인사이동을 하다 보니 십여 년간 근무하면서 나 역시 많은 팀장님들을 만났는데 그동안은 관리자복이 없는 편은 아니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최근 3년간 현 소속에서 악명 높은 4대 천황 중 두 명을 모신 거라고 같은 소속 친구가 혀를 끌끌 찬 것으로 보아 상사복만큼은 박복한 여자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있다.


참 이상하다. 직원일 때의 평은 나쁘지 않았는데 왜 팀장이 되면 이상해질까? 좋은 팀장이 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 고참이 가득한 이곳에서 승진은 언감생심이지만, 내가 만약 승진을 해서 팀장이 된다면 다음과 같은 팀장이 되고야 말겠다. 이런 다짐이라도 해야 팀장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타산지석으로 삼는다는 마음으로 한 발자국 떨어진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써 내 마음이 상처 받지 않게 보호할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팀장이 되겠다고 다짐해봅니다


하나, 예측 가능한 팀장이 되겠습니다


사람이다 보니 기분이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고, 그에 따라 팀 분위기가 가벼운 날도 있고 무거운 날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팀장님 기분에 따라 말이 달라지면 팀원들이 피곤해진다. 어떤 날은 천천히 하라고 했다가 다른 날 같은 상황에선 빨리 안한다고 닦달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A사무실로 가라고 했다가 다른 날 비슷한 상황에선 왜 B사무실로 안 가고 A로 갔냐고 혼내기도 한다. 그럴 때면 어떤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건지 울고 싶기도 하다. 팀장님이 왜 그러실까 하고 생각해보지만 이유를 알 수 없다. 일관성이 없고 그때그때 다르다. 본인도 정확히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기분이 안 좋아서, 윗분들께 깨져서, 와이프랑 싸워서, 애들이 속을 썩여서, 혹은 갱년기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고 싶다.


팀장님이 그때그때 반응이 다르면 팀원들은 혼란스럽다. A를 하면 A로 반응하고, B를 하면 B로 반응해야 예측할 수 있고 그에 맞게 대응할 수 있다. 무조건 화를 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일관된 행동을 해야 화내는 상황을 피하고 맞춰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그때 달라요 ㅠㅠ


육아도 일관성이 중요하다. 허용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분명히 하고 안 되는 것은 일관되게 안된다고 해야 아이가 혼란스럽지 않다. 팀장도 일관성이 있으면 좋겠다. 허용된다고 한 것은 일관되게 허용하고, 안 되는 것은 안된다고 해야 팀원들이 팀장님 눈치를 보며 이게 될까 안될까 전전긍긍하며 스트레스받는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둘, 팀원을 존중하는 팀장이 되겠습니다.


국세청에 입사하는 루트는 9급 공채, 7급 공채, 행정고시 세 가지다. 이러다 보니 상당히 다양한 연령대의 팀장을 만나게 된다. 9급 공채로 시작해서 나이가 지긋한 팀장님도 있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무관 팀장님도 있어서 팀장보다 나이 많은 팀원들도 더러 만나게 된다.


팀장이 나이가 많다고 해서, 직급이 더 높다고 해서 팀원을 막 대할 권리가 있는 건 아닌데 팀원에게 함부로 말을 하는 팀장이 더러 있다. 다른 팀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특정 사람을 깎아내리는 발언을 하고, 일을 그렇게밖에 못하냐고 무안을 주고 인신공격을 하기도 한다. 일종의 직장 내 갑질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일처리의 잘잘못으로 지적을 하는 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겠는데, 내 말투나 성격, 사생활에 대해 지적하고 비하하는 건 참을 수 없..으면 어쩌겠나. 참아야지. 참고 또 참아야지. 그게 안되면 본부로 동원 발령을 받아 도망가거나 육아휴직을 내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한 4대 천황이 있는 팀에선 팀원 절반이 육아휴직을 내기도 했고 1년 동안 반장이 3번이나 바뀌기도 했다.

책상을 쾅 내리치고 싶어도... 참아야지 (훌쩍)


다들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성인들이고 누군가의 엄마, 아빠, 소중한 아들, 딸인데 제발 인격적으로 대했으면 좋겠다.


셋, 보고서는 간결하게 받는 팀장이 되겠습니다.

보고서 : 업무 현황이나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작성하는 문서


그렇다. 업무 진행상황이나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보고서를 쓴다. 우리 팀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과장님, 국장님께 보고를 하고, 과장님은 그 내용을 모아 청장님께 보고를 한다. 그래야 공사다망한 울 청장님이 우리 청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바쁘신 윗분더러 두툼한 보고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시라고 하는 건 보고하는 아랫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핵심만 간결하게 구두로 보고하고, 윗분이 궁금해하시는 부분을 설명하고 지시사항을 받아와서 피드백하는 것이 보고의 정석이다. 그래도 빈손으로 보고하기는 좀 가벼워 보이고, 강의를 들을 때 PPT 슬라이드든 강의 요약 자료든 출력물이 있는 편이 좋은 것처럼 윗분들께 보고를 할 때 앞에 놓아드리는 것이 보고서다. 그러니 보고서는 매뉴얼이나 계획서처럼 자세할 필요는 없다.

보고서는 가볍고 간결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툼한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팀원들을 달달 볶는 팀장도 있다. 각자 담당한 부분을 보고서로 쓰면서 공부하라는 취지로 지시했겠지만, 비생산적인 보고서를 만들어내느라 팀원들은 정작 해야 할 일은 손 놓고 보고서에만 며칠을 매달려야 했다.


제발 보고서는 간단명료하게 중요한 내용만 담자. 보고서의 두께와 일을 열심히 한 정도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뭣이 중헌디.


넷, 팀원을 믿는 팀장이 되겠습니다.

"이거 확인해봤어?"

"상대편 말을 어떻게 믿어?"

사사건건 토를 다는 팀장도 있다.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것이 무릇 국세조사관의 기본이라 하겠지만, 몇 년 동안 공부해서 공무원 시험 합격하고 몇 년에서 길게는 몇십 년간 실무를 해온 팀원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렇게 못 미더우면 직접 확인하시면 되잖아요!!!"

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찰랑찰랑하다가도 괜히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참는다. 디테일까지 신경 쓰는 세심한 팀장이 아니라 큰 그림은 못 보고 나뭇가지만 세는 모양새다. 큰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맞게 팀원의 역할을 나누어 전체를 완성하는 것이 팀장의 역할이 아닐까?

속마음은 늘 이렇다. 다만 용기가 없을뿐


다섯, 초과근무를 바라지 않는 팀장이 되겠습니다


옛날 사람 인증 같긴 한데 십여 년 전에는 팀장보다 먼저 퇴근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저녁 약속이라도 있으면 죄송해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허리를 조아리며 송구스러우나 먼저 가보겠다며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퇴근문화라고 별 수 있나. 요즘은 팀장이 남아 있어도 당당하게 땡퇴하는 직원들이 많아졌다. 오늘 할 일을 마쳤고, 급하게 마무리해야 할 일이 없다면 무릇 정시퇴근이 마땅하다. 팀장님들도 먼저 갈 사람은 가고, 남아서 일할 사람은 밥 먹고 하라고 퇴근을 독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팀장님이 놀러 오면 농담반 진담반으로 '우리 팀은 야근도 안 해.'라고 한다. 야근하느라 팀원이 많이 남아 있는 다른 팀이 내심 부러운 모양이다. 차라리 야근 좀 하라고 대놓고 얘기를 하지... 앞에서는 정시 퇴근을 종용하는 쿨한 상사 코스프레를 하고 속으로는 서운했나 보다.


나이 지긋한 팀장님이야 집에 가도 반겨줄 사람이 없으니 차라리 사무실이 맘 편할지도 모르겠지만 한참 육아진행형인 기혼 팀원들이나 반려자 찾기에 힘써야 하는 미혼 팀원들은 정시 퇴근해서 저녁 있는 삶을 꾸려야 한다. 정시 퇴근하라 했으면 뒤끝 있게 서운해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일선 세무서에서 팀장을 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 말이, 좋은 팀장이란 하늘 아래 존재할 수가 없다고 한다. 자기가 팀장이 되고 보니 자기 팀이 처리해야 할 일은 쌓여가는데 팀원들이 세월아 네월아 하며 여유를 부리는 모습을 보면 속이 터진다고 한다. 성격 좋은 내 친구도 어쩌면 그 팀원들에겐 닮고 싶지 않은 팀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장이 되면 그 나름의 부담감과 고충이 있을 것이다. 팀원들끼리 하하 호호 웃으며 농담을 할 때 문득 파티션 너머 웃음소리를 들으며 궁금해하고 있을 팀장님을 떠올려본다. 외로울 것 같다. 뭐가 재밌냐고, 나도 끼워달라고 하고 싶은데 너무 모양새 빠질 것 같아 끼어들지 못하고 오늘 점심은 누구랑 먹나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승진을 해서 높은 자리로 이동한다는 것이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쓰고 싶다, 그 왕관 (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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