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소녀의 첫 약혼식 이야기
오늘은 뚜뚜의 약혼식날이다.
뚜뚜는 내 친구 '이노카'의 딸이다.
이 녀석의 약혼날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의 표정은, 오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변하기 마련이다.
이제 막 약속된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앞둔 사람들에게 기다림은 긴장과 설렘을 함께 안겨주는데
오늘, 뚜뚜의 가족은 조금 어려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바로 뚜뚜의 예비 시댁 식구들과의 첫 만남.
스리랑카에서는 결혼 전에 약혼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날, 예비 신랑의 가족은 신부의 집을 방문하고, 신랑의 부모는 처음으로 아들의 여자를 직접 마주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연애든 중매든 결혼 전에 두 집안이 오가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주어지지만,
스리랑카에서는 약혼식이 되어야 첫 만남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예비 신부는 결혼 후가 되어야 비로소 신랑의 집을 방문할 수 있다.
"결혼 전에 남자 친구 집에 가보는 게 좋지 않냐"라고 물으면,
"그렇게 하면 이상하지 않아?"라는 단순한 대답만 돌아올 뿐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규칙처럼 굳어진 전통이, 여전히 짙은 가부장적 색채를 풍기고 있다.
드디어 주인공, 예비 신랑 아산카가 도착했다.
아산카는 이탈리아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지만,
3개월간 휴가를 받아 스리랑카에 돌아왔고,
약혼식이 끝난 다음 날 다시 이탈리아로 떠나야 한다.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반이나 늦게 도착한 신랑 가족들.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은 없다.
대신 어딘지 모를 뻣뻣한 분위기만 감돌았다.
선물로 가져온 건 바나나 한 다발과 케이크 하나.
물론 먼 거리에서 오는 길이었으니 이해할 수도 있지만,
신랑 가족들에게서는 묘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보통 외국인이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수줍게 웃거나 반갑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자리에서는 나조차 차갑게 대하는 분위기였다.
뜨거운 나라에서 이렇게 서늘한 공기가 감돌 줄은 몰랐다.
거실에서는 신랑 가족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신부 가족들은 한 명 한 명 다가가며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다.
아직도 신랑의 가족들은 신부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눈치만 살핀다.
뚜뚜가 등장할 차례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은 거실이 긴장감으로 가득 찬 동안,
반대편 작은 방에서는 또 다른 분주함이 일어났다.
그곳에는 커튼 뒤로 숨은 오늘의 주인공, 뚜뚜가 있다.
뚜뚜는 이제 겨우 18살.
처음에 약혼 소식을 듣고 나는 너무 놀랐다.
그녀의 엄마에게 화까지 내며 말했다.
"너무 빨라 안돼. 안돼!! 공부를 더 시키든, 일을 더 하게 하든 여하튼 너무 빨라."
그러나 뚜뚜의 엄마는 나를 설득했다.
"나도 18살에 결혼했어.
우리는 너무 가난해서 더 이상 뚜뚜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아산카는 이탈리아에서 돈도 잘 벌고 성품도 좋으니까
이 결혼이 뚜뚜한테도, 우리 가족한테도 좋은 기회야."
덤덤히 이노카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뚜뚜를 팔아넘기는 것 같아 기분이 너무 안 좋았다.
그렇게 뚜뚜는, 그녀의 엄마가 정해준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약혼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 다가왔다.
뚜뚜는 이제 신랑의 가족에게 첫인사를 건네야 한다.
그녀의 손에는 ‘히뿌와’가 들려 있다.
‘히뿌와’는 불랏(බුලත්) 나무의 잎을 몇 장 겹쳐 놓은 것으로, 예비 신부가 이 헵푸워(හෙප්පුව)를 신랑 가족에게 전달하고, 그들이 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신부를 인정한다는 의미가 된다.
불과 10장의 나뭇잎.
20루피(약 190원) 짜리 작고 작은 형식적 의식.
그러나 이 겉치레 속에는 깊은 문화적 의미가 스며 있다.
뚜뚜가 햅뿌와를 조심스럽게 내밀자,
신랑 가족들은 마침내 그녀를 바라봤다.
첫 만남이기에 서로 조심스러웠다.
안 보는 척, 그러나 살짝 곁눈질로 확인하는 듯한 신경전.
이 작은 의식을 끝낸 후,
시댁 식구들은 신부 가족이 준비한 음식을 함께 나누었다.
거실에서는 차분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지만,
주방에서는 여전히 긴박한 손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뚜뚜의 할머니는 쉼 없이 손을 움직이며 음식을 만들었다.
그녀에게 이곳은 5성급 호텔 주방이나 다름없었다.
시댁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 했기에,
할머니의 손은 멈출 틈이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뚜뚜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시댁 사람들이 뚜뚜를 마음에 들어 했을까?"
"왜 아무도 웃지 않지?"
"뭐가 부족한지 더 알아봐야 하나?"
엄마와 할머니는 조용히 눈빛을 교환하며
시댁 가족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나도 그 긴장감에 얼굴이 굳어버렸다.
한 시간이 흘러서야
뚜뚜도 간단하게 음식을 먹었지만,
그녀의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괜찮아?"
내가 살짝 말을 건네자,
뚜뚜는 오랜만에 작게 미소를 보였다.
며칠 후, 아산카는 다시 이탈리아로 떠났다.
그리고 1년 후, 다시 돌아와 뚜뚜와 결혼할 예정이다.
이제 뚜뚜의 약혼식은 끝났다.
그녀는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저 긴장된 하루였을까,
아니면 새로운 삶을 위한 진정한 출발점이었을까?
"댄 인덜라, 오꼬마 하리 야이. 둑 웬너 에빠."
("지금부터 모든 일이 잘 될 거야. 슬퍼하지 말고.")
이제 뚜뚜는 기다린다.
그녀의 새로운 삶이 시작될 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