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의 밧데리

by 사탕볼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방학식.

아이들도 들떠있고 볼선생도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1교시엔 그동안 배운 안전교육을 다시 한번 복습을 한다. (이 문제 못 맞히면 방학 못 한다는 1학년한테만 통하는 뻥을 좀 치고 ^^)

한 달 치 잔소리를 몰아서 한 후

"오늘은 방학식이니까 선생님이 방학 선물로 재미있는 영화 보여줄게요."

"와~~~!!!!!"

얘들아.... 사실 한 학기 내내 수업 시간에 동동거리며 교실을 돌아다닌 선생님한테 주는 상이란다.

아이들이 영화 보려면 불 꺼야 한다며 블라인드도 내리고 불도 끄고 극장처럼 한껏 기분을 낸다.

영화는 바로 '안녕 자두야 극장판'.

아이들의 환호와 함께 영화가 시작한다.

한참을 만화영화에 빠져들어 보고 있던 중 수연이가 나에게 다가온다.

다가와서는 귓속말로

"선생님, 지금 쉬는 시간이에요 공부시간이에요?"

한참을 컴컴하게 영화를 보아서 아이가 헷갈리나 보다.

"지금은 공부시간이야. 그런데 화장실 가고 싶으면 가도 돼."

"그게 아니라.... 제가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있다 쉬는 시간이 되면 말씀드릴게요."

무슨 말일까. 그냥 지금 해도 되는데 수연이는 꼭 쉬는 시간에 말을 하겠단다.

돌아서서 자리로 가다가 다시 볼선생에게 온다. 말을 하려고 하나?

"선생님, 있다가 쉬는 시간에 제가 선생님한테 여쭤보면 저한테만 들리게 귓속말로 대답해주셔야 해요."

"어. 알겠어."

볼선생은 귓속말도 대답해 준다. 대답하고 보니 이건 귓속말로 안 해도 되는 거였네.

곧 쉬는 시간 종이 울리고 아이들은 계속 영화를 본다.

"수연아, 이제 쉬는 시간이야."

수연이가 주변을 살피며 볼선생에게 다가온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수연이는 볼선생의 귀에다 대고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선생님, 오늘 방학식이고 해서 제가 친구들과 나눠먹으려고 간식을 좀 가져왔는데 나눠줘도 될까요?"

하하하하하하하하

엄마가 선생님께 꼭 물어보라고 했나 보다. 아침부터 간식을 가지고 와서 아이들에게 풀어버리는 아이들이 간혹 있어서 곤란한 일이 있는데 세심하게 신경 써 주신 수연이 어머니가 참 고맙다.

볼선생은 수연이 귀에 손을 대고 귓속말로 말한다.

"수연아, 친구들이랑 나눠먹는 마음은 참 착한 마음인데 학교에는 바깥 간식을 들고 와서 친구에게 나눠줄 수 없어. 미안하지만 집에 가서 수연이가 먹어야 되겠어요."

"네. 알겠어요. 선생님."

수연이는 어른스럽게 대답하고 자리로 돌아간다.


1학년을 하면 종종 있는 일이다.

선생님, 어린이날이라 아이들 간식을 보냅니다. 선생님도 맛있게 드세요.


사전에 연락도 없이 당일 아침 문자와 함께 책상 위에 박스 채로 올라온 간식들.

우리 아이 생일이라 친구들이랑 같이 나눠 먹고 싶어 해서 케이크를 보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그래도 미리 연락 주시면 감사하다.

이럴 때 볼선생의 답변은 늘 한 가지다.

"학교에서 단체로 제공하는 음식은 학교급식법에 의해 사전 계획을 수립하여 학교장의 결재를 받아 제공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성의는 감사합니다만 보내주신 간식은 나눠줄 수 없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볼선생이 받기 싫어서가 아니라 법이 그렇다. 말하기 불편하다고 그냥 나눠서 먹였다가 혹시라도 아이들이 탈이 나면 안 된다. 아이가 한 명이 아니라 여럿이 아프면 그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아이가 아픈 게 제일 큰 일이지만 학교는 허락한 담임 볼선생뿐 아니라 관리 책임이 있는 교장 선생님과 함께 이와 관련된 업무 담당자들이 줄줄이 낭패다. 몇 명 이상 한꺼번에 배탈 증상이 있으면 보건소에 바로 보고를 하고 보건소, 식약처 등에서 총알같이 출동하여 급식소의 칼, 도마와 온갖 용품을 싹 수거해 가고 보존식을 챙겨 간다.

이전에 근무했던 학교에 그런 일이 있어서 볼선생은 외부 음식에 아주 민감하다.

그 사건도 학교 급식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결론이 났지만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급식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학부모님의 급식에 대한 의심으로 급식소 식구들과 학교 직원 모두 매우 속이 상했다.


아이에게 들고 온 간식을 나누어주지 못한다고 말하고는 아이의 마음이 상했을까 신경이 쓰인다. 마치고 갈 때 다시 불러서 달래줘야겠다 생각한다.

영화를 다 보고 이제 진짜 헤어지는 시간.

"모두 방학 동안 건강하게 지내고 개학식날 만나요. 안전,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죠?"

"네!!"

"선생님께 인사."

"안녕히 계세요!"

어느 때보다 우렁찬 소리.

인사를 마치자 부르려고 마음먹었던 수연이가 먼저 볼선생에게 온다.

"선생님, 저 가고 나면 열어보세요. 선생님, 사랑해요."

분홍색 색종이를 반 접어서 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돌아서서 빠른 걸음으로 교실을 빠져나간다.

평소에도 볼선생에게 편지를 자주 쓰는 수연이기에 방학 인사려니 하고 열어보는데 색종이에 초콜릿이 있다.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려고 들고 온 초콜릿인가 보다.

나누어주지 못해 속상해할까 봐 달래주려 했는데 아이는 볼선생한테 줄 초콜릿을 준비하고 있었다.

맘이 뭉클하다.

아까까지 방학이라 아이들한테서 해방되어 너무 좋다 싶었는데 서운한 맘이 벌써 든다.

아이들이 신나서 교실 문을 나선 지 1분도 안 됐는데 내일 못 본다니..... 볼선생은 아쉽다. (아주 잠시...)


예쁘고 사랑스러운 수연아.

초콜릿이 선생님 충전시켜 주는 게 아니라 니가 나를 충전시켜 준단다.

볼선생은 이 색종이 편지를 들고 교무실로 간다.

가서 자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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