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봐라. 햄 들을 준비됐다

남의 글을 읽는 자세

by 조형근

아침에 일어나면

나에게 외칩니다.

들어라 들어라 들어라


한밤 중에 나에게 외칩니다.

들었니? 들었니? 들었니?


이혜인 수녀 <듣기>


듣기는 중요하다. "귀는 두 개요, 입은 하나"라는 진부한 말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듣기가 중요하다는 걸 안다. 상대방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맥락을 파악하고 공감해야 하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머릿속으로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상대의 말을 귀담아듣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쉴 틈 없이 바쁜 하루 속에서 누군가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란 어렵다.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듣지 않을 때도 있다. 말을 들으면서 내가 할 말을 떠올리거나 딴생각을 하기도 한다.


"어? 방금 뭐라고 했어?"


아내에게 한 말을 반성한다.




인터넷 공간에 글을 쓰고 읽는 데 귀는 필요 없다. 손과 눈만 있으면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의 귀는 더 크게 열어야 한다. 남의 글을 읽으며 감정을 느끼고 글쓴이의 심정에 싱크로를 맞추는 일은 잘 듣는 것보다 어렵다. 상대의 표정, 제스처, 목소리, 억양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다 읽었을 때 공감 버튼을 누르려고 노력한다. 많은 글을 읽지만 모든 글에 공감하지는 않는다. 읽다가 포기하기도 한다. 집중력이 흐려질 때도 있고, 견해의 차이로 읽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래서 꾀를 부린다. 좋아하는 이웃의 글, 흥미를 유발하는 글, 도움이 될 만한 글을 읽는다. 제목을 보고 마음이 동하는 글도 읽는다. 관심 있는 글을 읽으니 공감할 확률이 높아진다.


글을 읽지 않고 하트를 누르는 사람이 있다. 세상은 넓다. 글쓴이와 글의 제목만 봐도 공감하는 초능력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제목만 보고 공감하는 능력이 없다.


드라마 <응답하라1994>를 재미있게 시청했다. 세심한 연출, 배우들의 명연기, 따뜻한 음악, 그 시절 옛날이야기가 좋았다. 여러 장면이 인상 깊었지만 빙그레(차선우 분)와 쓰레기(정우 분)가 대화를 나누는 한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무언가를 상담하기 위해 쓰레기를 찾아온 빙그레.

그런 빙그레를 마주하는 쓰레기.

쓰레기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이렇게 말합니다.


"말해 봐라. 햄, 들을 준비됐다."


스쳐 지나가는 짧은 장면이었지만 여운이 남았다.


1606454660823.jpg 이런 눈빛으로 글을 읽고 싶다...


남의 글을 읽는 것도 같다.


상대의 언어가 나오는 곳이 입에서 손으로 변했을 뿐, 말이건 글이건 상대의 고유한 언어다. 남의 말을 경청하듯 남의 글을 경독해야 한다. 글쓴이를 존중하려면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글을 읽기로 마음먹었다면 차분히, 찬찬히 읽길 바란다. 상대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을지 상상해 보는 것도 좋다. 글에 몰입할 수 있고, 결국 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


스크롤을 휙휙 내리면서 상대의 목소리를 2배속, 10배속으로 만들지 말자. 적어도 1배속, 곱씹고 싶은 문장이 있으면 0.5배속으로 읽자.


소설가 김훈은 저서 <연필로 쓰기>에서 듣기와 읽기의 자세에 대해 말한다.


"나는 말하기보다는 듣는 자가 되고, 읽는 자가 아니라 들여다보는 자가 되려 한다."




글을 읽지 않고 공감하는 초능력은 없지만 글을 읽고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며


'자, 말해 봐라, 나는 읽을 준비됐다.'


오늘도 이렇게 생각하고 글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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