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쌀밥을 읽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퇴고는 쌀 씻기

by 조형근

"오도독"

"아야!"


밥을 먹다가 돌을 씹었다.


"아들, 괜찮나? 분명히 여러 번 씻었는데."


어머니가 미안해하며 내 안색을 살폈다.


"괜찮다."


비릿해진 입속의 느낌이 싫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내가 초등, 중학생 시절인 1990년대에는 밥 먹을 때 돌이 씹히는 경우가 빈번했다. 먼지 같은 모래부터 쌀 한 톨보다 큰 돌까지 입안에서 밥인 양 춤을 췄다. 20~30년 전만 해도 쌀과 불순물을 구분하는 정제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을 게다.


"오도독"


분명히 돌 씹는 소리가 났는데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게 식사를 하셨다.




요즈음 종종 재택근무를 한다. 집에서 일할 때는 모든 끼니를 집에서 해결한다. 어제는 내가 밥을 지었다. 작은 플라스틱 컵으로 한 번, 두 번 밥솥에 쌀을 펐다. 아침은 물론 점심에 먹을 양까지 철저히 고려하는 내가 대견했다.


밥솥에 넣은 쌀은 두세 번 씻는다. 물을 받고 손으로 휘휘 저은 뒤 쌀뜨물을 버리고 다시 물을 받기를 반복한다.


요즘에는 보기 어려운 작은 돌을 두 개나 걸러냈다. 손가락으로 쌀을 휘저으니 자그마한 돌이 부끄러운 듯 수면 위로 살랑살랑 올라왔다. '다행이다. 나는 괜찮지만 딸이 먹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라고 생각했다.


쌀을 씻는 행위는 퇴고와 닮았다. 우리는 깨끗한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해 재차 쌀을 씻는다. 마찬가지로 정돈된 글을 보여주기 위해 원고를 깎고 다듬는다.


물론 퇴고는 쌀 씻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지만 꼭 해야 하는 건 같다. 퇴고를 하지 않으면 독자가 책을 읽으며 돌멩이를 씹은 것 같은 이물감을 느끼게 된다.


한 번 돌을 씹으면 그다음부터는 제대로 식사하기 어렵다. 또다시 돌을 씹지 않을까 불안하다. 음식의 맛을 느끼기보다 무사히 식사를 마무리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내가 가끔 연달아 돌을 씹을 때면 어머니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나는 괜찮다고 누차 손을 저었지만 그때부터는 씹는 건지 녹이는 건지 모를 방법으로 밥을 먹었다.




초고에는 불순물이 섞여 있다. 맞춤법, 띄어쓰기 실수 같은 작은 모래도 있고 주어와 동사가 어울리지 않는 비문, 서론과 결론의 연결이 어색한 문장 구조 같은 큰 돌멩이도 숨어 있다.


가끔 내 첫 번째 책을 들춰본다.


글은 어설프지만 책을 쓰려는 의지는 불보다 뜨거웠다. 그때의 열정이 좋았던 걸까. 네 권의 책 중에서 가장 애정이 간다.


안타깝게도 이 책은 돌 밥이다. 돌이 가득한 밥인데도 많은 독자들이 맛을 봐주었다. 개정판을 내면서 기를 쓰고 불순물을 걷어냈지만 한계가 있었다.


첫 번째 책을 쓸 때는 쌀을 씻는 방법을 몰랐다. 돌을 봐도 쌀인지 돌인지 구분하지 못했고 심지어 쌀을 씻는 게 귀찮았다. 출판사에서 알아서 정제할 것이라 기대했다. 나중에 완성된 책을 받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맞춤법, 띄어쓰기 실수는 물론 넉넉한 비문까지, 오류의 종합세트였다. 출판사 대표님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백과사전에도 오타가 있어요,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허허"라고 위로(?)해주셨다. 내 잘못이었다. 내 글은 내가 챙겨야 했다.




이기주 작가는 《글의 품격》에서 퇴고를 음식과 그릇에 비유했다. 글의 내용이 음식의 맛이라면 글의 형식은 음식을 담는 그릇이라고 했다. 아무리 음식이 맛있어도 그릇에 티끌이 묻어있으면 음식의 평가가 나빠진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예전보다 쌀 속에 숨어있는 돌을 찾는 데 능숙해졌다. 글쓰기의 달인이 보면 여전히 서투르겠지만 하루하루 나아지리라 믿는다. 기대에 부풀어 글을 읽는 독자가 돌을 씹지 않도록 배려하고 싶다.


완벽한 글이란 없다. 저자의 의도와 독자의 시선에 따라 좋은 글이 나빠질 수도 있고 엉성한 글이 훌륭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글 속의 돌을 걸러내면 걸러낼수록 한 뼘이라도 완벽한 글에 다가갈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국어사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세상이라 좋다.


섬세히 쌀을 씻듯 오늘도 퇴고에 매진하는 수많은 글쓴이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뽀얀 김이 나는 따뜻하고 맛있는 글을 읽게 해줘서.

이전 08화글자로 그림을 그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