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야 미안해

고정관념을 깨는 글쓰기

by 조형근

"까악, 까악"

지난 일요일, 도서관 가는 길에 까마귀 울음소리를 들었다. 우산을 비스듬히 젖혀 하늘을 쳐다봤다. 까마귀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괜스레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서관을 향해 좀 더 걸었다. 공원 풀밭에서 팔짝팔짝 뛰는 까치가 보였다. 사뿐거리는 까치를 보니 왠지 모르게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3분 간격으로 까마귀와 까치를 만난 나는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별일 없었다. 평소처럼 먹고, 놀고, 편히 쉬었다.




이제껏 까마귀를 봤다고 나쁜 일이 생긴 적도 없고, 까치를 봤다고 좋은 일이 생긴 적도 없다. 까마귀는 38년 동안 내게 아무런 해코지를 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까치도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았다. 나 혼자 기분이 나빴다, 좋았다 했을 뿐이다. 왜 나는 까마귀, 까치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게 됐을까?


아마 교육의 영향이 클 것이다. 까마귀는 불운의 상징, 까치는 길운의 상징이라 배웠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처럼 까마귀에는 부정적인 속담이 많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은혜 갚은 까치'처럼 까치에는 긍정적인 표현이 많다.


까마귀와 까치는 흉조와 길조의 대명사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고구려 시대에 삼족오라는 국조는 세 발 달린 까마귀였다. 까마귀는 다른 말로 효조라고 한다. 까마귀가 효도하는 새라니. 까치도 좋은 일만 하는 건 아니다. 해충을 잡아먹지만, 과일과 채소를 쪼아 먹어 농부를 한숨 쉬게 하기도 한다.


좋은 점만 있는 생물이 없듯 나쁜 점만 있는 생물도 없다.




사물을 선입견 없이 바라볼 수 있을까. 우리는 자라면서 좋든 싫든 부모, 교사, 친구, 동료, 미디어의 영향을 받는다. 독불장군이라면 모를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주변 환경에 물들 수밖에 없다.


100명이 사는 마을에 정상이 1명, 비정상이 99명이라면 이곳은 정상이 99명, 비정상이 1명인 곳이 된다. 다수가 만들어온 통념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다수에 편승할 수 없다. 문화와 관습은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지 모르지만 새로운 생각이 솟아날 틈을 막아버린다.



까마귀와 까치를 동시에 마주치면서 다시금 고정관념의 무서움을 느낀다. 까마귀를 보며 기분 나빠하고 까치를 보고 좋아한 내가 겁난다. 글을 쓰면서도 나도 모르게 고정관념이라는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 테다. 글을 쓸 때만큼은 고정관념을 버리고 마음을 열고 싶은데.


까마귀를 보며 활짝 웃고, 까치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싶다. 내가 직접 체험한 것, 겪은 일과 감정을 쓰고 싶다. 다른 사람을 통해 습득한 지식, 관습일랑 잊어버리고. 그렇게 글을 쓰고, 글을 읽고 싶다.



공원에서 까마귀를 다시 만나는 날.

그때는 꼭 웃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