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로 그림을 그리세요

by 조형근

입술을 깨물죠 또 발끝만 보죠

눈물이 자꾸만 차올라

편한 표정 지으며

또 웃음 보이며

잘 가라는 말 해 줘야 하는데

입술만 떼어도 눈물부터 흘러와

떠나가는 맘 슬프게 할까 봐

그댈 사랑한다는 말 차마 하지 못했죠


가수 성시경의 노래 <차마> 후렴 가사다. 화자는 연인과 헤어지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노랫말은 화자의 감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난 너무 슬퍼, 이 아픔을 감당할 수 없어"같이 말하지 않는다. 행동만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입술을 깨물고, 발끝을 봅니다. 입을 열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슬프다, 아프다, 저리다"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더 슬프고, 아프고, 저리다.


카피라이터 정철은 저서 《카피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글자로 그림을 그려라."


글을 쓸 때 그림을 그리듯 상황과 감정을 묘사하라는 뜻이다. 형용사 대신 동사를 넣으면 글자로 그림이 그려진다. 문장이 생동감 넘친다. 읽는 이가 고개를 끄덕일 확률도 높아진다.


"오늘은 너무 더웠다." 보다


"땀을 닦자마자 땀이 또 흘렀다."

"집을 나서자마자 셔츠가 땀에 젖었다."


가 좋다.


"방이 지저분하다." 보다


"방 안이 장난감으로 널브러져 발 디딜 틈이 없다."

"방구석에 엄지손가락만 한 먼지 덩어리가 보였다."


가 좋다.


글을 '쓰는 것'에만 몰두하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형용사를 쓰게 된다. '좋다, 나쁘다.'라고 하면 쓰기 편하지만 내가 얼마나 좋은지, 나쁜지를 행동으로 설명하려면 기억을 더듬어야 한다. 생각에 생각을 더해야 한다. 귀찮다. 그래서 형용사로 문장을 끝낸다. 편하게 마침표를 누르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글을 쓸 때마다 겪는 일이다. 잘 쓰는 것보다 쓰는 것에 애써 의미를 부여한다.


물론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어깨를 으쓱할 만하다. 글을 쓰는 건 글을 쓰지 않는 것보다 10배 나으니까. 하지만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을 넘어서 좀 더 좋은 글, 생생한 글을 쓰고 싶다면 '글자로 그림을 그리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차마>를 따라 불러본다. 성시경처럼 부르고 싶은데 고음에서 목소리가 갈라진다. 한 옥타브 낮춰 조용히 부른다. 입술을 깨물고 발끝을 쳐다본다. 어설프게 흉내 냈을 뿐인데 화자의 마음이 전해진다. 행동 중심의 노랫말이 다시 노래를 듣게 한다.


주관적인 문장을 객관적으로 바꿀수록 글이 좋아진다. 글을 발행하기 전에 내 글을 찬찬히 돌아보자. 지우개를 들고 형용사 딱 하나만 동사로 바꿔보자.


이번 글을 퇴고하면서 형용사 두 개를 동사로 바꾸었다. 글을 고치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당신도 글을 고치며 미소 지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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