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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Jan 15. 2024

운전 못하는 여자 2

눈꽃마을에 가고 싶다

계속되는 감기 후유증으로 오전에 거의 지나갈 무렵에 창문을 열었다. 멀리 보이는 치악산 풍경의 정상 부분이, 아니 정상의 훨씬 아래쪽부터 하얀 산으로 변했다. 전날, 흐린 날씨에 하루종일 가랑비와 눈이 섞인 진눈깨비가 오락가락하고 밤 사이 기온이 뚝 떨어지더니 이렇게 하얀 산을 만들어 놓았다. 


"너무 멋있다!"

"이런 날은 높은 산에 가야 해. 하얀 설국이 얼마나 멋지겠어!."

지난달 갔었던, 우리나라에서 차를 타고 넘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재인 해발 1330m인 태백 만항재의 아름다운 상고대를 떠 올리며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곤돌라 타고 평창의 발왕산을 올라가도 멋있지."

"그렇지 발왕산 정상도 엄청나게 멋질 거야."

카톡 카톡, 바쁜 울림이 지나가며  사진과 함께 우리들의 대화가 오간다. 


"여기서는 치악산이 안 보여. "

"거기선 태기산(횡성)을 가야지. 거기 설경도 끝내줄 텐데."

"운전하면 정선의 가리왕산의 설경도 좋을걸?"

"정말 후회되네. 운전 못 배운 게."

떠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담아 설국나라를 상상해 보는 것으로 오전이 지나가고, 그곳으로 달려가지 못하는 이유를 달아 후회의 시간으로 마감한다.  


"쓰지도 못하는 운전면허증은 뭐 하러 땄어?"

언젠가 딸이 면박을 준다. 

그러게, 나는 왜 면허증이 있는데 운전을 못할까? 


"그거 배우면 돈 버냐?"

지금 살아계시면 100 살도 더 넘을 70대의 시아버님이 하시던 말씀이다. 그분이 살아오신 시대에, 그분이 살아오신 환경이 비추어보면 여자가 운전할 이유가 없었던 거다. 하긴 그 무렵의 지방에서는 자가용이 많지 않던 시절이니 아버님의 그 생각이 지나친 것도 아니었다. 지금과는 사회환경이 다른 세상이었으니까. 

"쓸데없이 돈이나 쓰지 그거 다 낭비여."

시어머님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여자가 나가서 친구랑 칼국수 먹는 것도  낭비라고 생각하시던 분이니까. 경제적 활동이 아닌 이유로 여자가 운전하는 걸 인정하기 어려웠을 거다. 


절약 정신 투철한 어른들과 살며 친구도 안 만나고 지내던 내가 운전을 배우겠다고 나선 건 참 용감한 일이었다. 그 무렵 작은 사무실에 출근했다.  월급을 받아 지난날 어렵게 사신 어르신들 마음을 달래던 내가 사무실 사정으로 일을 못하게 되었다고 하니, 이불을 덮고 누워 "이제 뭐 먹고 사냐고" 눈물을 글썽이던 어머님이다. "여자가 벌어봐야 푼 돈이지."라고 하시던 분이 막상 일을 그만둔다니까 먹고살기 힘들어서 어쩌냐고 하니 기가 막혔다. 이제 여유 시간도 생기고 운전면허 있는 주부들도 많아지는 세상에서 나도 운전이란 걸 해 보고 싶었다. 그건 일종의 반발심이었을까?  복종만 하고 살던 삶에서 작은 반발심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운전은 쉽지 않았다. 면허증을 받고 첫 운전에서 교각을 올라타서 거꾸로 뒷바퀴가 대롱대롱 매달리는 묘기를 연출했다. 뭐가 뭔지? 초보운전자는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조차 몰랐다.  옆에서 "밟아, 핸들 돌려." 하는 말에 따랐는데 결과는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다행히 다친 데는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때는 몰랐던 후유증이 남아 허리와 다리 통증이 계속되는 채로 지금까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달아 교각을 들이받는 큰 충격이 있었음에도 보이는 상처가 없어 병원에 가지 않았으니까. 그날 이후, 시부모님의 바람대로 낭비의 가능성이 많은 운전은 하지 않았다. 사실은 사고를 내고  겁이 나서 하지 못한 거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건망증이 심해가는지 물건을 어디다 두었는지 모를 때가 있다. 지갑이나 가방이 하나가 아니고 저렴한 여러 개를 사놓고 기분에 따라 다르게 들고 다니다 보니 가끔은 주민등록증이 어디 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그때 유용하게 쓰는 게 운전면허증이다. 국가가 인정하는 신분증이 두 개 있다는 것이 때로는 편리하다. 어느 해 주민등록증을 분실했다. 주민센터에 가서 신고를 하고 새로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하는데 나를 증명할 신분증으로 운전면허증이 큰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나이 들면서 하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곳이 많아졌다. 나이가 든다는 건 내 몸에서 힘도 빠져나가는 일이다. 한 때 사진을 찍는다고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여러 개의 렌즈와 장비를 들고 다닐 만큼은 아니더라도 달랑 카메라 하나 들고 취미가 같은 사람들이 어울려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가고 싶은 장소는 많은데 운전을 못하니 누군가의 신세를 져야 하고 카메라가 너무 무거웠다. 그러니 사진 찍으러 다니는 취미는 던져 버릴 수밖에. 그냥 스마트 폰으로  외출을 기록한 뿐이다. 운전을 했다면 진짜 멋진 사진을 남겼을 수도 있는데. 운전을 못하니 하고 싶은 걸 접어야하는 그것도 속상한 일이다. 그때도 운전 배우지 못한 걸 후회했다.  


남편에게 미안할 때가 많다. 장거리 운전을 하며 어딘가를 가야 할 때, 피로를 덜어주기 위해서는 내가 운전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지난가을, 갑자기 아픈 남편을 바라보며  운전을 배우지 못한 걸 후회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가야 할 곳도 많은데,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되지만 아쉬움은 더 많아진다. 가고자 하는 곳을 검색할 때 자가운전과 대중교통이 주는 시간적 차이가 심한 곳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배우면 되지."

그렇게 말하는 친구도 있다. 

"이젠 운전하기 겁나."

이렇게 말하는 친구는 3,40 년을 운전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이제 와서 운전을 배운다는 마음을 먹는 게 쉽지 않다. 이미 오래전부터 나는 먹는 약이 많다. 약국에서 약을 받고 주의사항을 보면 '운전하거나, 기계조작을 하지 말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 그런 상황이고 보니 운전을 배운다는 엄두를 못 낸다. 


오전에 치악산의 멋진 설경을 바라보며 등산하지 않고 갈 수 있는 눈 덮인 산 풍경들을 상상하며 친구들과 나눈 카톡 속의 대화. 재미있게도 그 대화 속의  친구중에도 운전 못하는 친구들이 또 있다. 운전하지 못하는 아쉬움에 오가는 대화와  마음이 일치한다.

" 다음 모임엔 어디건 가자. 내가 운전 쏠게."

운전하는 친구가 다음 모임엔 운전을 쏘겠단다. 

"그래 좋아. 가자 어디 건."


이렇게 주변에는 운전하는 친구들도 많아  아쉬움을 조금은 덜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후회하며 젊은 날 일지감치 운전을 배우지 못한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깊게 남는 오늘이다. 


************



살짝 욕심을 부려봅니다. 

지난 가을 이후, 일주일에 한번 하던 글쓰기를 5일에 한 번으로 앞당겨 봅니다. (5일과 10일)

쉽지 않아 시작부터 삐끗거리지만,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일단은 시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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