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작가니까요. 그럴 수 있지요.
투고는 언제 끝날까? 계약이 될 때 끝난다. 그렇다. 적당한(?) 계약 조건이 나타날 때 끝나는 것이 투고다. 그래서 실패한 투고란 없다. 멈춘 투고만 있을 뿐. 이렇게 말하니 엄청 쿨해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계약할 출판사가 나타나지 않아 한없이 나약해지고 초라해지는 나를 발견하고, 실컷 마상('마음의 상처'의 줄임말)만 입고 '실패했구나' 생각하며 투고를 멈춘다.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도 마냥 기쁘진 않다. 출판계가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싶은 다채로운(?) 출간 제안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출간 제안이지만 출간 제안 같지 않은, 서류상 갑이지만 갑이 아닌 제안들이 많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초보 작가지만 보는 눈은 있는 사람들 아닌가. 우리가 몇 달을 잉태하고 힘들여 세상으로 내보낸 고운 아기(?)들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넘겨주면 안 된다.
물론 마음이 급한 건 사실이다. 나의 아름다운 아기들이, 노트북 안에만 머물다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조급해질 수 있다. 그래서 이곳저곳에서 출간 제안이 왔을 때, 이게 어디냐며 빨리 계약을 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공저자들과의 이야기 덕에 조급한 마음을 접고 재투고에 몰입할 수 있었고, 지금의 출판사를 만날 수 있었다.
아직은 원고가 오가는 편집 단계이고 우리의 원고가 어떤 꼴과 형태를 갖춰 출간되고 홍보될지 모르기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며, 최선의 결과가 나오게 노력하는 것이 지금 취할 수 있는 태도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출간 제안이 왔지만, 계약하지 않은 출판사만 언급함을 밝힌다.)
어쨌든 계약은 성사되었으니, 예비 작가님들을 위해 출간 제안이 왔던 출판사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해당 출판사들이 부족하다거나 흠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출판 시장이 어려운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초보 작가이지만 출간 기회를 열어 주려고 했다는 점에 감사하며 이런 제안도 있구나 알려드리고자 쓴 글임을 밝히고 시작한다. 레스 고-!
A 출판사는 익히 알고 있는 곳이었다. 아는 작가님들 중 이 출판사에서 출간하신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곳의 장점은 깔끔한 본문 디자인과 매력적인 표지 디자인. 하지만 출판사 자체의 홍보와 마케팅이 약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곳이다.
투고에 대한 회신 메일에는 원고에 대한 자세한 피드백이 적혀있었다. "원고의 콘셉트는 '오늘도 글 쓰고 오래오래 글 쓰는 교사 11인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와 치유를 만난다'로 적절히 설정되어 있으나, 장 제목이 임팩트가 없어 보완이 필요하다. 문장과 내용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으나, 독자가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내용을 추가하면 좋겠다."는 내용 등.
거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계약 조건에서 이건 무엇인가 생각되는 내용이 있었다. 바로 예약 판매. 일정 기간을 예약 판매 기간으로 두고, 이 기간 동안 예약 판매분을 판매하지 못했을 시 저자가 미판매분을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책 정가가 아닌, 저자 할인이 들어간 가격으로)
이해는 됐다. 출판사 창업 준비를 하고 있기에,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편집, 디자인, 마케팅에 드는 비용을 알기 때문이다. 출판은 투자 사업이다. 팔릴만한 책을 만들기 위해 투자하고, 투자 비용보다 더 크게 회수해야 이익이 난다. 팔리지 않는 책을 창고에 쌓아두면 매달 지불해야 하는 창고 비용도 있기에, 팔리지 않는 책을 만드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최대한 멋진 책을 만들고, 최소한의 판매 부수를 확보해 두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작가 입장에서도 계약금도 적당하고, 예약 판매부수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혹했다. A출판사에서 기존에 출간된 책을 보면 디자인도 훌륭하고, 편집에 신경 쓴 느낌이 들어서 괜찮은 조건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도 제안이 왔기에, A출판사는 패스하기로 했다. (작가로서는 인연이 닿지 않았지만, 출판사를 창업하려는 입장에서 원고에 대한 피드백과 계약 조건에 대한 명확한 안내가 있는 점은 배울만 했다. 굿!)
A 출판사의 회신이 명쾌하고 사무적이라면, B 출판사의 회신은 단정하고 진솔했다. 현재 출판 시장이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우리 원고를 출판사의 주력 도서로 출간하기는 어려움을 밝혔다. 하지만 전자책을 메인으로 밀리의 서재 등에 유통하고, 종이책은 POD 방식으로 출간하여 판매 추이에 따라 오프셋 인쇄 변경과 유통망 확대를 하자는 제안이었다.
*POD(Publish On Demand) : 디지털 인쇄가 발달하면서 가능해진 '선 주문 후 인쇄' 출판 방식. 실제 주문 수량만큼 인쇄가 가능하기에 초기 비용이나 재고 부담이 없음. 주문 후 인쇄가 진행되기 때문에 수령 기간이 조금 더 길며, 색상 구현의 정확도가 오프셋 인쇄 방식에 비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음.
*오프셋 인쇄(Offset-Printing) : 토너나 잉크를 직접 종이에 분사시켜 인쇄하는 디지털 인쇄방식과 달리,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판을 이용해 전사인쇄를 한 뒤 용지에 옮기는 인쇄 방식. 가장 널리 사용되는 인쇄방식이며 고품질, 대량 인쇄에 적합함. 초기 비용이 많이 소요되며, 대량 인쇄에 따른 재고 부담이 있음.
이것도 이해는 됐다. 출판=투자 사업이기 때문에 투자 비용 결정이 중요하다. A 출판사의 경우 투자 비용 회수를 위한 장치로 예약 판매를 만들어 두었다면, B 출판사의 경우 전자책, POD로 비용 절감을 하려는 것이다.
전자책은 한 번 만들어 두면 영구적이며, 대여나 판매가 될 때마다 수익이 생긴다. 특히 밀리의 서재처럼 대여로 전자책을 보는 것은 독자가 책을 읽는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 일단 클릭해서 열기만 하면 출판사에게 대여료를 줘야 한다. 그러니 궁금해서 한 번 열어보든, 정독을 하든 출판사나 저자는 수익이 생기는 구조다. 또한 전자책은 공간 비용이 들지 않는다. 종이책의 경우 창고 보관비가 매달 나가고, 팔릴 때는 유통과 택배비 등이 추가된다.
POD 또한 선 주문 후 인쇄 방식이다 보니 재고 부담이 없다. 이는 물류비용 절감을 의미한다. 몇 만부 이상 팔릴 주력 도서가 아니라면 매우 현명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환경과 비용을 생각하면 전자책과 피오디를 주력으로 하는 출판사를 해야 하나 생각될 정도니.) 그러니 전자책과 종이책을 동시 출간하되, 판매가 잘 되면 오프셋 인쇄로 변경해 대량 출판 한다는 것은 상당히 현명해 보였다.
결론은? B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의 디자인과 편집이 매우 괜찮았고, 예약 판매 같은 조건이 없었다. 전자책과 POD출판이라 다소 아쉬운 점이 있었으나, 뒤집어 생각하면 (PDF가 아닌 E-PUB 전자책 제작은 백단위 돈이 들어가며 텍스트 위주의 책은 POD와 오프셋 인쇄의 품질 차이를 식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전자책과 종이책이 동시에 출간되는 기회라 최종 후보까지 올랐지만, 재투고 끝에 현재 출판사를 만나는 바람에 인연이 닿지 않았다.
B출판사를 통해서는 '출판사는 새로운 작가의 책을 소개하는 역할을 지속하고, 작가는 자신의 글을 책으로 엮는 기회'를 가지면서도 크게 손해보지 않고 윈윈 할 수 있는 전략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 사람들이 익히 아는 대기업급의 출판사는 유명 작가와 손을 잡고 엄청난 자본을 투여한 마케팅으로 수익이 생기는 선순환을 계속할 수 있지만 중소단위 출판사의 경우 다양한 방식의 접근이 필요함을 알게 됐다.
C 출판사는 30년 전통의 튼튼한 출판사다. 이곳 역시 출간 작가님의 후기를 통해 알고 있던 출판사다. 출간 후기에 따르면 대표님이 출판에 진심이며, 이곳에서 출간한 작가님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았다. 원래는 특정 분야를 중심으로 출간해 오다가 최근부터 에세이를 출간하기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C 출판사로부터 '학교'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콘셉트를 명확히 하여 원고 수정이 가능한지 회신이 왔다. 최근 학교, 교사와 관련된 이슈가 많다 보니 콘셉트를 수정하면 더 화재성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하지만 저자들이 생각한 콘셉트는 '교사 작가'였기에, '교사'에 방점이 찍히면 원고를 추가로 써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미 원고를 쓰는 데 한 학기를 보낸 저자들이었고, 일과 글쓰기를 병행하며 피로도가 높아진 상황이었기에 또다시 그런 에너지를 짜내기엔 무리가 있었다. 어느 정도 수정과 추가가 이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또다시 인고의 시간을 선택하기는 어려웠다. 튼튼한 출판사이고 (반)기획 출판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우리의 에너지가 따라갈 수 없었기에 아쉬운 마음을 접었다.
C 출판사에게선 출판사의 적극적인 기획 태도를 배웠다. 출판사가 특정한 기획 의도를 가지고 책을 제작한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 출판사만의 정체성이 뚜렷해질 수 있다. 이는 출간 작가에게도 좋다. 예를 들어 출판사가 '남들이 궁금해하는 직업 세계를 그린 에세이'에 주력하겠다고 판단했다면, 작가에게 먼저 적극적인 제안을 하고 원고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에세이가 쌓이면, 이제 막 에세이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C 출판사에게 새로운 페르소나가 형성되는 것이다.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고, 우직하게 한 분야의 책을 내 온 것으로 봐서는 앞으로도 적극적인 기획으로 정체성이 뚜렷한 에세이를 만들어가지 않을까 기대되는 출판사다. (나도 이런 점을 배워야지!)
백 프로 만족스러운 계약이 있을까? 유명한 작가나 인플루언서에겐 가능할 것도 같다. 하지만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작가 앞에 놓인 선택지는 매우 한정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글에 관심을 가지고 선택지를 내어준 세 출판사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출판사마다 일하는 방식, 추구하는 글, 원하는 콘셉트가 다르기에 결국 인연이 닿지 않았다. 역시 계약은 어려운 일이다.
지금도 어느 예비 작가님은 투고와 계약에 애를 먹고 있을 것이다. 그분들께 작은 조언을 드리자면, 투고 메일을 짝사랑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생각하시라는 것이다. 한 글자 한 글자 애정을 담아 보내고, 답이 없으면 그러려니 하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랑의 편지를 보내다 보면, 어느 날 '나도 관심 있는데, 한 번 만나 볼까요?'라고 답이 올는지 모른다. 분명 나와 잘 맞는 출판사가 어딘가에 있으니 포기하지 마시길. (내가 못했던 부분이다. 주변에서 이렇게 말해주는 이들이 있어 그 시간을 참고 견딜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계약을 맺으면, 출판사와 작가의 노력으로 책이라는 소중한 아이가 탄생한다. 이상한 아이가 태어난다고 무를 수는 없는 일이니 나와 결이 맞는 곳인지, 오랫동안 출판을 이어나갈 곳인지, 어떤 방식으로 출판을 해왔는지 고려하고 계약을 맺으시길 바란다.
나는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이번 투고와 계약 과정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이 글을 쓰면서 출간 제안이 왔던 세 출판사의 메일을 곱씹어 보면서 '만약 내가 출판사를 한다면?'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투고 메일을 보낼 때 차별성과 정성이 담긴 내용이 출판사 눈에 띄듯, 출판사가 작가에게 회신을 할 때에도 정성과 명확성이 들어간다면 신뢰 관계가 두터워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출판사를 할 때, 출간하고 싶은 원고가 있다면 어떻게 회신할 것인가 상상해 봤다. 아마도 파워 J인 나는 회신 메일 형식을 미리 마련해 둘 것 같다. 이렇게. (그러니 앞으로 많은 투고 부탁드립...ㅎㅎ)
1. 투고에 대한 감사 인사
2. 원고에 대한 간단 피드백
3. 계약 조건
4. 진행 일정
사실 작가로서 계약하기 전 가장 궁금한 점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의 출판사와 계약 전, 아래 내용을 물어보기도 했다.
1. 계약금(선인세), 초판 발행 부수, 인세 지급 방법
2. 원고 진행 일정
3. 저자 증정본 권수, 저자 구매 가격
4. 출판사 마케팅 방법 : SNS, 광고, 서평 이벤트, 북토크 유무 등
우리의 글이 아이라고 생한다면, 어떤 선택이든 신중할 수밖에 없다. 아이의 좋은 점을 봐주고, 고쳐야 할 곳은 명확히 알려주며 최대한 정성 들여 이쁜 모습으로 꾸며주는 곳에 보내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느낌상 최종 계약한 출판사가 그런 곳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계약을 결정을 했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 거듭된 투고 끝에 위의 세 출판사가 아닌 다른 출판사와 좋은 조건으로 계약했다. ^^)
우리를 선택한 출판사의 마음도 같을 것이다. 편집 과정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1회성 출간이 아닌 지속적인 글쓰기 활동의 의지가 보이며, 홍보와 마케팅을 자신의 일처럼 해내는 진심 가득한 작가를 만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계약하러 갈 때, 출판사의 책 두 권을 가지고 갔다. 한 권은 다 읽고 갔는데, 책 느낌이 좋았다. 문장도 깔끔하고 디자인도 따뜻했다. 대표님과 만나 그 책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뒷 이야기도 듣는데 대표님이 책에 쏟은 애정이 느껴졌다. 넌지시 우리 책도 이런 느낌으로 디자인되길 원한다고 말씀드렸다. 대표님은 '이런 느낌'이라는 말을 디자이너가 제일 싫어한다고 말해 다 같이 웃었지만, 가져간 책 덕에 분위기가 훨씬 좋아졌다.
서로의 진심이 통했던 순간이길 기대하며, 훗날 우리의 선택을 추억했을 때 '잘했다'라고 말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 앞으로도 모든 선택의 순간에 조급해하지 않고, 주변의 조언을 들으며 최선의 선택을 내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