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1분 컷 원룸
2년간의 전셋집을 정리하고, 학교 앞 원룸에서 드디어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학교 후문을 지나다닐 때마다 건물이 철근부터 서서히 올라가는 걸 지켜보면서 마침내 완공이 된 걸 보고 '이 집이다!'라고 마음속으로 찜해두었다. 그리고 아빠의 허락하에 부동산도 통하지 않고, 직접 건물주인에게 연락해서 월세 계약을 하게 되었다. 신축건물이라 바깥벽에서도 번쩍번쩍 광이 났고, 이름 또한 멋들어진 '그레이스'이었다.
시멘트 먼지가 가시기도 전에 제일 먼저 입주를 했다. 아직 아무도 살지 않는 건물이라서 내가 원하는 방을 선택해서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나는 여러 방을 들여다보고 옥탑방을 제외하고 풍경이 좋은 맨 꼭대기층을 골랐다.
아빠가 이사를 도와주고 간 다음날 혼자 잠을 자다가 새벽에 시끄러운 소리에 깼는데, 겁도 없이 혼자 사는 것에 마냥 설렜던 나는 그 소리를 그냥 '아 인부 아저씨들이 아직 공사를 덜 끝냈나 보다..'하고 안심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한테 새벽에 시끄러워서 잠이 깼다고 통화를 했는데, 나중에 주인아저씨를 통해서 알고 보니 그 소리는 공사 소리가 아닌 도둑이 자재를 훔치는 소리였다는 것이다. 신축건물에서는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더욱이 공용현관번호키도 아직 설치가 안되었던 상태였다. 아무도 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도둑이 드는 그런 무방비한 상태 속에서 난 쿨쿨 잘 잤던 것이다. 내가 잠이 많고 불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인기척이 없어서 다행이지, 지금 생각해보면 위험했던 상황이다. 엄마는 아직도 그때 일을 종종 말하면서 나보다 더 놀란다.
후문이 엎어지면 닿는 거리였는데도 지각을 참 많이 했다. 공강 시간에도 집에서 한숨 자고 저녁 수업을 들으러 나오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교문에 경비아저씨가 항상 계셔서 어두운 밤에도 안심하고 지냈다. 창문으로 밖을 보면 후문 담벼락이 보였는데, 봄이 시작할 때 입주를 해서 노란 개나리가 항상 보여서 아침마다 기분이 좋았다. 이때부터였을까. 나는 한 집에 꽂히면, 그 집의 모든 게 좋아 보이는 집 금사빠 기질이 있다.
그때 한창 많이 생겨났던 기본 원룸이었는데, 현관 앞 부엌과 방이 미닫이문으로 분리가 되어 있었고, 냉장고, 옷장, 책장, 책상, 티브이가 옵션이었다. 단점이라면 아래층 티브이 소리가 들리는 것과 옥상에서 발소리가 크게 들렸던 것만 빼고는 꽤 만족스러웠다. 도둑사건 이후로 현관 cctv를 달아달라고 말했더니 주인아저씨가 흔쾌히 최신 cctv모니터를 달아주셨다.
그렇게 고르고 고른 첫 원룸으로 자취방 이사를 하고 정 붙이면서 오래 살 생각이었는데, 6개월 만에 작별인사를 하게 되었다. 3학년 여름이 시작되기 전, 프랑스 교환학생에 합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