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내면 진다! 가위바위보

하루치의 따뜻함 24

by 전태영

1학기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도덕 수업 시간. 나는 아이들에게 한 학기 동안 배운 ‘자기 성찰’을 주제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적어보라고 했다. 그동안의 경험을 떠올리고, 스스로를 돌아본 후 앞으로의 다짐까지 적어보자는 활동이었다. 학습지를 나눠주자 아이들은 금세 집중했다. 작은 손으로 정성스럽게, 또박또박 글씨를 써 내려가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나도 모르게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이토록 진지한 태도로 자신을 돌아보는 아이들이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글쓰기가 끝난 뒤 발표를 원하는 친구들을 받았다. 맨 먼저 손을 든 건 A 학생이었다. 발표를 하는 동안 태도도, 눈빛도 단연 돋보였다.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도 끝까지 귀 기울이며 듣는 모습이 흐뭇했다. 그렇게 몇몇 아이들의 발표가 끝났을 즈음, 한 학생이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들어 보였다.


선생님, 이 책! 저자 선생님 맞죠?


그 책은 바로 내가 작년에 쓴 『아빠가 외롭지 않게, 딸이 힘들지 않게』였다. 아마 도서관에서 빌려온 모양이었다. 내가 맞다고 하자 아이들은 금세 들썩였다. 한 친구가 책을 갖고 싶다며 외치자, 여기저기서 “나도! 나도!” 하는 소리가 쏟아졌다. 그때 문득 내 사무실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 한 권이 떠올랐다. 그 한 권을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시작됐다. 이 학급에 27명 중 20명이 갖고 싶다고 손을 든 것이다. 이 책을 가질 확률은 1/20이다. 누구 한 명을 콕 집어줄 수 없었다. 왜냐하면 19명이 선생님인 나를 원망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떠오른 것이 바로 ‘안내면 진다 가위바위보’ 게임을 해서 마지막 승자가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아무도 불평이 없을 테니까.


그럼, 공평하게 가위바위보로 결정하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게임이 시작되었다.


“안내면 진다 가위바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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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은 금세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남은 아이들이 줄어들 때마다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이들은 함성을 지르며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웃고, 환호하고, 때론 탄식하는 아이들. 손에 땀을 쥐는 긴장 속에서 탈락자가 하나둘 줄어들고, 마침내 두 명이 남았다. 한 명은 남학생,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바로 A 학생이었다.


그 순간, 가장 먼저 갖고 싶다고 했던 A 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안 내면 진다, 가위바위보!”

이겼다. 최후의 승자는 바로 A 학생이었다. 놀라웠다. 스무 명 중 한 명의 확률, 그 벅찬 경쟁 속에서 그렇게도 책을 갖고 싶어 하던 아이가 승리했다. 어쩌면 아이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피그말리온 효과가 떠올랐다. 그리스 신화 속 조각가 피그말리온이 상아로 빚은 조각상을 사랑하게 되고, 그 간절한 사랑을 본 아프로디테 여신이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여인으로 만든 이야기. 믿음과 기대, 그리고 간절함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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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A 학생에게 책을 건네며 책 표지 안쪽에 정성껏 사인을 해주었다. 책을 받아 든 학생은 너무나 행복해하였다. 책을 만지작거리며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그날, 나도 아이도, 참으로 행복한 하루였다.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 남을 선물을 줄 수 있는 하루, 그리고 그 행복이 나의 기쁨이 되는 하루.

교실 가득 울리던 웃음소리와 설렘의 떨림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아마도 그 아이는 책을 볼 때마다 그날의 기쁨을 떠올릴 것이고,

나는 교사로서의 보람을 오래도록 간직하게 될 것이다.

오늘 수업은 아이들과 마음이 맞닿아 하나가 된, 참으로 흥미진진하고도 깊은 울림이 있는 시간이었다.


이런 날이 있기에, 교사의 길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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