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치의 따뜻함 22
어느덧 교직 생활 40년이 다 되어가는 나에게 아내는 여전히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사람을 너무 쉽게 믿어요.
너무 빨리 마음 열고, 너무 많은 걸 줘버리잖아요.
그러다 결국 상처받는 건 늘 당신이에요."
아내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걱정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잘 되지 않는다. 오랜 습관처럼 나는 또 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만다. 그래도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그저 고맙다. 사람이 가장 무서울 때는 변할 때다. 언제나 함께할 수 있을 것 같던 사람이 한순간에 낯선 사람처럼 돌아설 때. 나는 그 순간을 몇 번 겪고 나서야 ‘관계에도 온도차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뜨겁게 다가오고, 어떤 사람은 서늘하게 거리를 둔다. 처음엔 그 온도가 따뜻해서 좋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차가워져 놀라기도 한다. 좋을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연락을 주고받던 사람들. 내가 무언가를 해줄 수 있을 때는 먼저 다가와 나를 찾던 이들. 그러나 내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순간, 그들은 마치 처음부터 나를 몰랐던 사람처럼 등을 돌리기도 했다.
누군가는 말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 뭐 그런 걸로 상처를 받아?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경험치와 비례하지 않는다. 진심은 언제나 상처받는 쪽에 있다. 나는 그때 처음 그 사실을 배웠다. 그래서 조금은 조심스러워졌다. 사람을 쉽게 믿지 않게 되었고, 덜 다치려면 거리를 둘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관계에도 경계가 필요하다고 여겼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는 않았다. 누군가 다정하게 다가오면, 나는 또 문을 열고, 기대하고, 결국 실망하기도 했다. 직장에서는 그 복잡함이 더 크다.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 반복되는 대화 속에서 마음의 거리를 어떻게 두어야 할까. 가까이 다가가되, 부담스럽지 않게 하는 것. 말처럼 간단하지는 않다.
카페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던 동료도 요즘은 카톡을 읽고 답장이 없다. 특별한 일이 없었기에 더 신경이 쓰인다. 혹시 내가 모르게 서운하게 했을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다.
나와는 다른 리듬, 다른 온도를 가진 사람일 뿐일 수도 있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 삶의 균형을 중시한다. 가까운 관계도 지나치면 지치고, 적당한 거리가 오히려 건강하다. 자동차 운전에서 차간 거리를 무시하면 사고가 나듯, 인간관계에도 적절한 마음의 거리가 필요하다. 너무 가깝거나 너무 멀면 오해와 충돌이 생기고, 상처가 깊어지기도 한다. 그 거리 안에서 꾸준히 진심을 나누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예전에 함께했던 동료가 보내온 짧은 안부 메시지 한 줄은, 마음 한켠을 따뜻하게 덮어준다. 인사는 단순한 말이 아니다. 그 사람을 향한 관심이고, 시공간을 넘어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다리다. 함께 근무하다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건네는 작은 안부 인사 하나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여러 번 느껴왔다.
환경이 바뀌면 사람도 변하고 관계도 변한다. 그 속에서 한결같이 머무는 것이 때로는 어리석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가 줄 수 있는 진심을, 상대의 반응과 상관없이 나만의 방식대로 꾸준히 전하고 싶다.
쉽게 뜨거워지지도, 쉽게 식지도 않는 묵직한 따뜻함.
필요할 때만 찾아오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언제 봐도 똑같이 웃어주는 사람.
상처받고 거리를 두더라도,
내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만큼은
마음만은 한결같이, 그렇게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