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치의 따뜻함 23
얼마 전, 아내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야 할 일이 있었다. 몇 번을 걸어도 받지 않으니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이 밀려오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안 받는 거지?” 하는 서운함과 답답함이 함께 올라왔다. 결국 어렵게 전화가 연결되었고, 나는 이유를 묻기도 전에 화부터 내고 말았다. 그런데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충분히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순간 마음이 짠해지며 미안함이 밀려왔다.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런 순간을 마주한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친구 사이에서. 어느 날은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왜 저런 말을 했을까?”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지?”
알 수 없는 의도에 마음이 불편해지고, 감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문득 이 말을 떠올린다.
당신이 그랬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요.
짧지만 마음을 풀어주는 한 문장이다. 판단보다 이해를, 단정보다 기다림을 택하는 말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말하지 못한 이유가 있고, 드러내지 못한 속사정이 있다. 다 알 수는 없어도, 이 말을 마음에 품으면 마음이 조금 느슨해지고 시선이 부드러워진다. 우리는 가족, 친구, 동료, 이웃 등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 속에서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 말이 어긋날 수도 있다. 그럴 때 이 한마디는 우리를 한 발 물러서게 하고,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에 따뜻함을 더해준다.
이 말은 배우 최수종이 부부 갈등을 줄이기 위해 자주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이 말을 “부부를 19글자로 표현한 문장”이라고 소개하며, 관계의 본질은 배려와 존중, 그리고 신뢰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 문장은 부부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삶의 태도다.
일상 속 장면을 떠올려 보자. 누군가 약속에 늦었을 때, “왜 늦었지?”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괜찮아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라는 말이 이어진다. 연락이 닿지 않을 때도 “왜 답이 없지?” 대신 “아, 바빴나 보다.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누군가 말투가 까칠하게 들릴 때는 “왜 저렇게 날카롭지?” 대신 “오늘 무슨 힘든 일이 있었나 보다.” 이 한마디는 단순히 ‘이해심 많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한 표현’이 아니다. 상대의 사정을 먼저 헤아리려는 태도이며, 관계 속 맥락을 존중하는 문화의 시작이다.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친구 사이에서도 이 말을 떠올릴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관계는 훨씬 따뜻해질 수밖에 없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도 여유가 생기고, 서로를 향한 믿음도 더 단단해진다.
요즘 같은 세상에는 정답보다 따뜻함이 더 필요하다.
나 또한 이 말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다 보니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상대의 말 너머에 있는 사정을 더 헤아리게 되었고, 관계는 더 단단해지고 부드러워졌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조금 더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해야 하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조금 너그럽게, 조금 느긋하게.
서로의 걸음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간다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말을 마음에 조용히 새긴다.
당신이 그랬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