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치의 따뜻함 21
가을의 중턱에서 창틀 사이로 스며드는 따사로운 햇살은 하루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해준다. 다홍빛 잎사귀들이 햇살을 머금고 반짝이는 풍경은 마음을 푸근하게 하고, 무더운 여름 내내 쌓였던 긴장감도 조금씩 풀어준다. 그러나 여전히 바쁘고 복잡한 일들이 나를 몰아치는 가운데, 몸과 마음은 서서히 소진되고 있음을 느낀다. 이런 때일수록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바로 ‘내 마음을 돌보는 일’이 아닐까.
요즘 나는 퇴근 후 시간이 날 때마다 학교 뒷산인 매봉산을 오른다. 해발 237미터의 낮고 순한 산이지만, 그 산은 매번 나에게 큰 위로와 배움을 준다.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처음엔 가파른 계단이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평평한 능선이 펼쳐진다. 힘든 구간을 지나야만 만날 수 있는 그 평안한 길은 마치 우리의 삶을 닮은 것 같다. 그날도 나는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올라가는 초입에서 발길을 멈추게 한 작은 디딤돌이 있었다. 큰 바윗돌 위에 놓인 두 개의 작은 돌. 그 디딤돌을 밟고 올라서면서 문득 생각에 잠겼다.
이 작은 돌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디딤돌이 되었을까?
아무런 대가 없이 놓여진 이 작은 배려 하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다는 사실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지 않은가. 우리가 하는 작은 배려, 짧은 말 한마디, 고운 눈빛 하나가 누군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하는 모든 ‘작은 일들’은 결국 누군가의 길 위에 놓인 소중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산길에서 때때로 두 갈래 길을 마주할 때가 있다. 나는 일부러 익숙한 길 대신 새로운 길을 선택한다. 새로운 길을 가면 빨갛게 익은 망개 열매를 보고, 평소 지나쳤던 풍경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늘 하던 방식이 중요하지만, 때로는 새로운 시도와 변화가 필요하다. 그 작은 용기 있는 변화가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하고, 더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다르게 걷는 용기’가 때로는 우리의 성장을 이끌기도 한다.
정상에 올랐을 때의 그 탁 트인 전망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지나온 길이 고되었기에 그 기쁨이 더욱 값지게 느껴졌다. 물론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보다 수월하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다. 풍경에 취해 발을 헛디딜 수 있고, 놓치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 산을 오르며 배우는 중요한 교훈은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의 여유는 필요하지만, 우리의 중심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길을 걷다 마주친 두 가지로 갈라진 소나무와 서로 어우러진 야생화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자연의 모습은 요즘 우리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각자 다르지만, 그 차이가 서로를 보완하며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공간.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의 모습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바쁜 일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타인을 배려하며 서로를 도와주고 살피는 디딤돌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길을 걷다 보면 돌부리에 걸리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내가 그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누군가의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매일 맞닥뜨리는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은 순간도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에게 작은 디딤돌이 되어주며 살아가야 한다.
이 가을, 잠시 시간을 내어 근처의 산을 올라보길 권한다.
크지 않아도, 높지 않아도 괜찮다. 그 시간을 보내며 보고, 느끼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보길 바란다.
그 시간이 우리 안에 숨겨진 힘을 다시 일깨워줄 것이다.
어느 가을 날, 디딤돌을 밟고 산을 오르며,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더 많은 사람들의 길을 돕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